역사를 보는 눈 - 개정판 세상을 읽는 눈
호리고메 요조 지음, 박시종 엮음 / 개마고원 / 2003년 5월
평점 :
절판


무척 오래전에 읽었던 책이다. 아마 대학 새내기 시절에 읽은 책이 아닌가 싶다. 가끔 하는 책장 정리 중 발견한 책이다.

 

역사에 대해 누구는 흥미 없다 말하고, 누구는 흠뻑 빠져 산다. 또 어떤 역사서는 소설보다 더 큰 재미를 주기도 하고, 어떤 책은, 특히 교과서는 그야말로 사람을 최면에 빠지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누구나 역사를 만들어가고, 그 역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재미가 있건 없건 간에 모두가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때문에 역사를 바라보는 눈은 중요치 않을 수 없다. 내가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역사를 과연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는 우리 삶을 규정지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책은 일본 NHK 방송에서 방영된 교양특집 시리즈를 글로 옮긴 것이다. 시청자에게 보다 쉽게 역사에 접근토록 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동안 일본에서 꾸준히 팔린 스테디셀러라고 하니 방송의 의도가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역사는 딱딱하고 재미없다는 인식이 있다. 이는 물론 우리 교육의 탓이 절대적으로 크다. 년도 외우고, 왕의 이름들이나 외워 시험을 치렀던 세대들에게 역사가 과연 얼마나 재미있을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야말로 역사의 격동기를 몸소 체험하며 살아왔다. 특히 한반도는 서구의 제국주의 침략과 그 후발주자인 일본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았고, 동서 진영의 이데올로기 갈등의 최전선이 되었다. 동족끼리 살육해야 했던 끔찍한 역사를 안고 있고, 이는 분단의 고착화와 남북 모두의 비정상적 발전을 가져왔다.

 

직접 체험하고 확인할 수 없는 북쪽을 제외하고, 남쪽만의 역사 역시 짧은 시간동안 급격한 변화를 이뤄왔다. 장기독재의 연장과 그 속에서 무수히 많은 민중들의 피땀으로 민주주의를 일궈냈다.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우리는 과거 상상도 하지 못할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모든 것을 넓은 눈으로, 그리고 동시에 세밀함으로 관찰하고 성찰할 수 있는 눈이 바로 역사를 올바로 직시하는 능력일 것이다. 역사는 누군가의 의해 이끌려가는 것이 아닌, 바로 우리들이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안목이 커질수록 우리의 행동 역시 보다 신중해질 것이다.

 

역사의 진보를 믿어왔다. 물론 지금도 믿고 있다. 기가 막히고 땅이 꺼질 듯한 절망을 안겨 주는 일들이 끊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역사의 진보를 믿는다. 만약 역사가 충분히 반동적이라 해도, 역사가 진보함을 믿는다면, 여전히 희망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판도라의 상자 속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희망이란 것을 끝끝내 믿고 싶다.

 

올해 치러질 대선에서 역사는 다시 한 번 급격한 변화를 겪을 것이다. 그 어떤 결과가 온다 해도 그것은 온전히 이 땅을 살아가는, 이 역사를 만들어가는 우리들의 몫이다. 그 안에서 또 다른 진보를 위해 비틀거리며 갈 수밖에 없다.

 

프랑스에서 17년 만에 좌파 대통령이 탄생했다. 자유와 정의를 부르짖던 프랑스를 독재 국가처럼 만들어 놓은 사르코지는 이제 역사의 뒷길로 퇴장할 것이다. 프랑스가 과연 어떤 길을 향해 나아갈지 관심이 쏠린다.

 

그렇다면 이제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지난 과거에 대한, 역사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미래를 다시금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진정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고 나 역시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하지만 온전히 내 의지로 흘러갈 것을 믿는다.

 

“우리가 역사에 대해 하나의 진지한 물음을 던지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물음으로 되돌아온다는 것,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이 역사에 대해 전체적으로 어떤 판단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반성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역사에 대한 물음이 어차피 우리의 실천적인 이상이라는 문제에까지 관련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궁극적으로 역사에 우리 자신을 내맡기는 엄숙한 행위를 하는 셈이 된다는 것, 이것이 결국 역사와 역사관에 대한 저의 결론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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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 - 지성의 근본주의 비투비21 5
마크 네오클레우스 지음, 정준영 옮김 / 이후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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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류의 진보를, 그리고 인간 이성에 대한 심각한 회의를 낳았던 홀로코스트. 그리고 나치즘, 파시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는 스스로 ‘과연 우리는 이성적인 동물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나 궁금했던 것 한 가지. 과연 나치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특별한 인간이었던가?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독재자, 정신이상자들이었을까. 그리고 그 시대 독일, 이탈리아만이 추구할 수 있었던 광기의 축제였을까.

 

독일 나치와 나치즘, 그리고 파시즘은 오랫동안 나에게 흥미로운 연구의 대상이 되어왔다. 기껏 10여 권의 책으로 이 광대한 주제를 통찰할 수 있는 능력도 여건도 되진 않지만, 그동안 히틀러와 무솔리니에 대한 내 관심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앞서 말한 궁금증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과연 그 시대 독일이었기 때문에, 히틀러와 같은 악독한 학살자가 있었기에 홀로코스트와 같은 비극이 발생할 수 있었을까 하는 부분이다.

 

회의적이었다. 수백만의 유태인을 죽음으로 몰아간 홀로코스트는 단지 독일만의, 히틀러만의 범죄는 아니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러한 인류의 존재 이유 자체를 의심하게 만드는 일들은 언제고 다시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저자의 책은 나의 이러한 의심을 보다 명확히 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파시즘이 단순히 지나간 역사의 유물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의 관계 속에 살아 있는 문제라는 점을 저자는 단언하고 있다. 파시즘 체제가 붕괴되었을 뿐이지, 파시즘이 이데올로기로서 끝장났다고 말할 순 없다는 것이다.

 

“파시즘은 근대 사회의 핵심적인 특징에 대한 대응이다. 파시즘이 살아 숨 쉰다는 사실은 결국 파시즘이 처음 등장했을 때와 동일한 소외 관계가 살아남아 계속 존재해 왔다는 것, 그때와 동일한 객관적 조건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세계사적 형태로 지속되는 자본주의 지배와 더불어 이 체계에 고유한 위기, 자유주의 헤게모니와 자유민주주의 관념, 자본주의가 낳은 사회주의운동과 공산주의운동, 다문화 사회를 사회적 적대로 갈기갈기 찢어 놓는 방대한 인종적·태적·성적 편견들, 합리화가 아직 충분히 합리적이지 못한 사회 등의 조건들이 통상적으로 포함된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해버린 자본주의, 그리고 국제금융자본의 무차별적 침략으로 지금 전 세계 99%의 시민들은 고통을 절규하고 있다. 그 고통이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되어 표출된다. 그리고 그 와중에 국수주의가 성장하고, 타민족, 외국인 혐오라는 극단적 폭력으로 이어진다.

 

히틀러는 자본주의에 반대하지 않았지만,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탄압과 반대로 많은 독일 국민들의 지지를 얻었다. 뚜렷한 실체가 없어 보이는, 그러나 우리의 생활을 이미 지배하고 있는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공포는 1930년대 독일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다.

 

민주주의, 다원주의, 다문화주의는 자본주의의 추락, 변태적 전이에 따라 함께 위축된다. 그리고 국수주의, 자국중심주의, 배타주의를 낳고 결국 파시즘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낸다. 타인종에 대한 적대감, 이민자들에 대한 이유 없는 폭력은 비단 네오 나치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이 땅에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

 

어떤 해법을 모색해야 할까. 자본주의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파시즘의 부활을 막는 것은 결국 새로운 미래, 보다 안정된 미래를 찾는 것과 통한다. 모더니티와 자본주의의 사회적, 정치적 모순 속에 탄생한 파시즘. 전쟁, 본성, 민족이라는 중심 개념으로 이성의 파괴, 계몽주의의 파괴를 불러왔으며, 사회적 해방에 대한 욕구를 인간의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 침략적 민족주의로 바꾸어버린 파시즘. 과연 우리는 파시즘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을까.

 

이명박 정부의 패악질에 ‘파시즘’이란 단어를 붙이는 이들이 종종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명박 정권은 파쇼 정권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파시즘의 여러 가지 징후들이 포착되곤 한다. 국민을 통제하고 훈육하려는 욕망, 천박한 민족주의의 고양과 동시에 반민족적 대북 적대시 정책의 병행, 획일성과 통일성에 대한 무차별 강요 등은 분명 파시즘의 아류로 이 정권을 부각시킨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은 미국에 대한 무한대의 굴종, 복종과 함께 세계사적, 국제정치학적 안목 자체가 없는 저능한 정권이다. 이런 정권 하에서 파시즘이라는 이데올로기가 나올 수 있다는 위험성도 분명 존재하지만, 그 한계 역시 명확하기에 부정확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 정권은 파쇼 정권이 아니다. 다만 친미반민족, 천박한 자본주의 추종 집단일 뿐이다.

 

비단 파시즘은 특정 국가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어떤 집단, 사회, 개인에게도 파시즘은 존재할 수 있고, 존재하고 있다. 모든 것을 폭력과 일체감, 과대한 망상과 숭고함으로 숨겨진 욕망으로 표출하고자 하는 이들은 충분히 위험한 가능성이 있다.

 

때문에 우리는 증오하기보다 정당한 분노를 표출하는 법을 먼저 익혀야 한다. 증오는 폭력을 낳지만, 정당한 분노는 변화를 낳기 때문이다.

 

파시즘은 여전히 연구의 대상이다. 그 연구는 민주주의와 새로운 가치를 위해 보다 더 필요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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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8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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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같은 학교 같은 반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온갖 폭력과 착취, 조롱 속에 시달리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이들. 우리는 왕따라는 결코 아름답지 못한 단어가 너무나 익숙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빵 셔틀이란 단어가 낯설지 않고, 대장점퍼라는 해괴한 단어마저 익숙한 지금, 과연 아이들은 어떤 삶을 학교에서, 가정에서, 이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그들에게 어른들이 말하는 우정과 정의와 질서, 상식이라는 것들이 모두 온전히 이해될 수 있을까요.

 

해마다 수백 명의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있습니다. 개미지옥과 같은 입시제도 하에서 아이들은 스스로를 착취하고, 갉아먹다 결국 모조리 소진되어, 그렇게 삶을 마칩니다. 과연 자신이 무엇 때문에 이런 지옥 같은 삶을 견뎌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은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에서 말하고 있는 이야기들은 온전히 우리의 학교, 우리의 아이들과 겹쳐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더욱 더 잔혹하게 와 닿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이것이 이제야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자, 어른들은 또 다시 호들갑을 떨고 있습니다.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그렇게 끝내 진실은 외면한 채 아이들에게 ‘폭력 없는 학교’‘폭력 없는 교실’을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투표권이 있다면 모조리 낙선했을 인간들이 국회의원이란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한, 입시지옥과 무한경쟁이라는 포악한 살상무기를 집어치우지 않는 이상, 아이들에게 폭력 없는 교실은 꿈일 뿐입니다.

 

일본의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이 과연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포악하고 악랄한 이들일까요. 오히려 우리의 교육제도와 시스템, 사회에 만연해 있는 천박한 경쟁의식과 약육강식의 논리, 돈이나 통계, 치수가 유일한 가치가 되어버린 이 더러운 시스템 자체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지 않을까요.

 

정부는 떠듭니다. 교육청도 떠듭니다. 경찰도 떠듭니다. 하지만 떠들기만 합니다. 아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건방지게 굽니다. 오직 신고하랍니다. 친구들이 간첩입니까. 테러리스트입니까. 강한 처벌만이 답이랍니다. 이런 말들을 지껄이는 어른들을 보면 아이들은 뭐라고 할까요.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스펙을 자랑하는 한국 청년들. 그러나 취업할 곳은 없고, 유혹은 많습니다. 등록금은 살인적인데, 취업은 대량학살 정도의 수준입니다. 그리고 비정규직으로 들어가 하루하루 고통과 불안 속에 생계를 꾸려야 합니다. 이런 빌어먹을 시스템을 뜯어고치지 못하고 무슨 얼어죽을 폭력 없는 행복한 학교란 말입니까.

 

애초에 학교라는 시스템이 권력의 수월한 통제와 훈육, 세뇌를 위한 것임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교육은 분명 그 이상의 해악을 끼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서로 죽여 없애야 할 적으로 규정해 버리는 학교에서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을까요.

 

이 소설은 끔찍한 왕따와 폭력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서로 힘이 되어 준 두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의 감수성과 따뜻함이 눈물겹습니다. 또한 포기하지 않음이 애절합니다. 이런 아이들의 심리를 생생하게 묘사한 저자의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단 한 숨에 읽어 내려간 책. 하지만 여전히 무겁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아이들에게 진정한 숨 쉴 공간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땅의 아이들 모두의 교육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아이들의 하루를 생각해보며 정책을 펼치길 바랍니다. 적어도 내 자식에겐 어떤 교육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고, 이 땅의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이 적용해보길 바랍니다.

 

최근 교육 쪽의 공무원들을 상대한 적이 있습니다. 한심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일선의 선생님들이 얼마나 힘드실까 절절히 느꼈습니다. 아무리 단체의 수장이 진보적이고 개혁적이면 뭐합니까. 그 아래 철밥통이 그대로인데.

 

그들에게 주는 세금이 아깝고 아까울 따름입니다. 어서 어서 그들의 정년이 오기를 바랍니다. 이 땅의 아이들을 위해 말이죠.

 

학교 폭력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든, 이 땅의 교육자들을, 교육 공무원들을, 정책 담당자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든 책이었습니다. 우울합니다.

 

이 땅의 공무원들이 참 우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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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 프롬 더 클로젯 - 가족 중에 동성애자가 있을 때
김준자 지음 / 화남출판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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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는 성에 대한 감정이나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같은 성의 사람에게 감정적으로, 성적으로, 지적으로, 영적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가며 사랑함을 뜻한다. 동성애자는 여자가 여자에게, 남자가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다. 동성애(homosexual)란 말은 1869년 페르시아의 칼 마리드 케르트베니가 처음 쓴 말로 그리스 언어인 ‘같다(homo)’와 라틴어의 ‘성(sexual)’이란 말이 합한 것이다.

 

과거보다 많이 나아지긴 했습니다. 동성애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사람들의 인식이 말이죠. 여기엔 수많은 동성애자들의 노력이 뒤따랐습니다. 엄청난 사회적 편견과 차별 속에 살아가야 했던 그들은, 그들의 당연한 권리를 얻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야만 했습니다.

 

사실상 게이를 가지고 이처럼 유치하게 굴었던 국가도 드물지 않나 생각합니다. 최근 공연을 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던 가수 레이디 가가 역시 그녀가 동성애를 옹호하는 노래를 불렀다고 기독교 단체에서 입국 반대 데모를 했다고 하더군요. 어이가 없죠. 하나님이 게이를 쳐죽이라고 한 적이 있나요? 그렇게 할 일이 없는 종교인들은 그냥 은퇴하시고, 세금 내시고 사시죠.

 

동성애는 질병도 개인의 취향도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자연의 섭리에 따라 그렇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예전 혼혈인마저 장애자로 구분한 적이 있습니다. 장애자의 범위에서 혼혈인과 사생아까지 포함시켰던 무참한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이었습니다.

 

그러니 동성애자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편견과 차별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땅이 원체 어이없는 것들로 사람 괴롭히기 좋아하는 동네다 보니 참 많은 이들이 소수자라는 이유로 괴롭게 살아갑니다.

 

정치인, 종교인 그리고 여타 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인간들이 먼저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동성애자보다 그들이 더 무섭고 그들이 더 위험합니다. 이 나라를 순식간에 말아드실 수 있는 가능성은 그 분들에게서 더 느껴지거든요.

 

동성애자들은 그냥 우리의 이웃입니다. 함께 살아야할 친구들입니다. 북한을 무조건 악마로 몰고 빨갱이 사냥을 여전히 신나게 하는 집단들이 있는 것처럼, 동성애자를 여전히 병에 걸린 세균덩어리, 에이즈 감염자, 정신병자로 몰아가는 인간들이 존재함이 사실입니다. 그러한 인간들을 먼저 제대로 된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정상적인 상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땅의 구성원이 해야 할 일일 것입니다.

 

이 책은 동성애자들을 위한, 그리고 그들의 이웃을 위한 안내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이 아름다운 세상을 멋지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괜한 트집 잡아서 괴롭히지 말자고요!

 

이제 그들을 그들만의 다락에서 나오게 하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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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 시골촌뜨기에서 권력의 정점에 서다
소마 마사루 지음, 이용빈 옮김, 김태호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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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쑨원이 말한 것처럼 뜻을 세우고 큰일을 이루고자 한다면 경제적인 부가 따르는 대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은 합법적으로 부를 추구하는 길이 많습니다. 비즈니스로 부를 얻는 것은 올바른 방법입니다. 큰돈을 벌면 세금을 많이 내 국가에 도움이 되고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발전시키는 데도 큰 힘이 됩니다. 그러나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이 돈을 축적한다면 ‘탐관’‘적관’이 됩니다. 이런 사람은 반드시 추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좀처럼 언론과의 인터뷰를 하지 않는 시진핑이 2000년 ‘중화여아’ 출판사 사장과 진행한 유일한 인터뷰의 한 부분이다. 비록 그가 언론을 의식한 다분히 교과서적인 발언을 한 것으로 짐작한다해도, 그의 인품이나 성격이 드러나는 글이라 할 수 있다.

 

시진핑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의 부인 펑리위안이 오히려 더 유명한 스타였다. 그녀는 인민해방군 총정치부 가무단 소속의 전속 가수였다. 전속 가수라니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기실 그녀는 엄청난 거물이다. 시청률이 매년 100% 가까이 나오는 연말 저녁 초대형 가요프로그램의 사회를 볼 정도로 국민적 스타다. 아울러 상당한 미인으로 많은 중국 남성들의 로망의 대상이었다.

 

대부분의 언론이나 연구자들은 후진타오가 이끄는 중국 지도부 4세대 이후의 차기 지도자로 리커창을 꼽았다. 그럴 만 했다. 리커창은 후진타오가 적극 후원하는 인물이고, 또한 능력 역시 검증을 받은 ‘지도자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왔다. 2007년 10월 2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후진타오는 새롭게 구성된 차기 5년의 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8명을 인솔하며 등장했다. 그리고 시진핑은 리커창보다 앞선 서열 6위로 부상했다. 리커창은 7위였다.

 

이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올해 18차 당대회에서는 시진핑과 리커창을 제외한 상무위원 7명이 모두 은퇴하게 된다. 새로운 상무위원이 진입하는 것이다. 오직 시진핑과 리커창 만이 재선되어 최고지도자의 자리에 앉게 된다.

 

이후 예상보다 조금 늦긴 했지만 시진핑은 2010년 10월 당중앙 군사위원회 부주석의 자리에 올라 명실상부한 2인자가 되었다. 그리고 올 가을에 열릴 18차 당대회에서 그는 후진타오의 후계자로 당총서기, 국가주석,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의 세 권력을 보유해 최고 권력이 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마오쩌둥의 혁명 1세대, 덩샤오핑의 2세대, 장쩌민의 3세대, 후진타오의 4세대. 그리고 이제 새로운 10년 중국을 이끌어갈 5세대의 최고 지도자가 확정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진핑은 과연 누구인가? 큰 키의 100킬로그램이 넘는 거구, 온화하고 조금은 촌스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시진핑. 그는 G2로 부상한 중국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 아울러 그가 이끄는 중국은 동북아 및 세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책은 그동안 언론이나 각종 자료들을 통해 전해진 시진핑의 모든 것을 종합해 정치인 시진핑을 분석했다. 리커창과의 권력 투쟁, 장쩌민의 비호를 받은 태자당 출신 시진핑과 후진타오의 후원을 받고 있는 공청단(중국공산주의청년단) 계열의 대표주자 리커창의 숨막히는 투쟁이 흥미롭다. 물론 조금은 과장이나 억측이 곁들여, 너무 가십위주로 글을 전개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다.

 

시진핑이 태자당이라는 것은 든든한 배경이다. 그의 아버지 시중쉰은 중국의 건국 공신 중 하나이며, 철두철미한 공산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던 중국의 혁명 원로였다. 그런 아버지 아래에서 자란 시진핑은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실재 시진핑은 공산주의 이론에 박식하며, 스스로 진정한 공산주의자임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아울러 여전히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지지 않은 장쩌민 전 주석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것도 그에겐 큰 힘이다. 중국의 권력 승계 과정, 즉 덩샤오핑식 육성법은 유능한 젊은 지도자를 찾아내 지방이나 중앙의 다양한 직책을 경험시키고 다른 유능한 라이벌들과 경합시켜 10년 이상의 세월에 걸쳐 최고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연마시키고 육성하는 것이다.

 

후진타오 역시 덩샤오핑에 의해 촉망받는 최고지도자의 길을 걷고, 시진핑 역시 장쩌민의 후원을 얻어 기반을 다지고 있는 것이다. 즉 중국의 최고지도자는 2대 전의 최고지도자에 의해 내부적으로 지명되는 것이 거의 관례화된 셈이다.

 

시진핑은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결코 문외한이 아니다. 선대로부터 이어지는 북한과의 인연은 그가 중국 최고 지도자가 되었을 때 대부 정책을 어떻게 펼칠 것인지 조금은 짐작케 한다.

 

올 가을에 열릴 중국 18차 당대회. 그 현장에서 시진핑은 이변이 없는 한 지도자로 선택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10년 동안 13억 중국을 이끌게 된다. 오로지 ‘미국 바라기’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때문에 광우병 쇠고기를 그대로 받아먹어야 하는 미국의 우울한 식민지가 되어버린 우리지만, 때문에 더더욱 중국의 권력 변화, 정책 방향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중국은 이제 미국보다 더 큰 영향력을 우리에게 행사할 수 있는 국가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시진핑을 “사려 깊지만 교활한 카리스마”라고 표현한다. 과연 그것이 어느 정도 정확한 파악인지는 알 수 없다. 이제 시진핑이 주석직에 오른 뒤 그의 행동, 정책 추진을 살펴볼 수밖에 없을 듯하다.

 

하지만 그가 살아온 과정을 살펴보면 몇 가지는 미리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지방에서 수 십 년을 민중과 함께 하며, 민중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지도자다. 아울러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혁명가문으로서의 장점도 가지고 있다. 비록 외교부문의 능력이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단순한 ‘연약한 도련님’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중국의 마지막 공산주의자로 기억될 지도 모르는 시진핑. 우리는 그를 비롯한 중국 최고 지도부에 대해, 그리고 중국의 인민들에 대해, 그들의 정치, 사회, 문화에 대해 보다 깊은 주의력이 필요하다. 여전히 분단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반도에, 어쩌면 가장 큰 파고로 다가올 수 있는 곳이 바로 중국 대륙이기 때문이다.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 정세 연구는 반드시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과제다. 이 정부에선 이미 그런 것을 상실한 것 같지만.

 

쉽게 읽히는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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