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8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같은 학교 같은 반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온갖 폭력과 착취, 조롱 속에 시달리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이들. 우리는 왕따라는 결코 아름답지 못한 단어가 너무나 익숙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빵 셔틀이란 단어가 낯설지 않고, 대장점퍼라는 해괴한 단어마저 익숙한 지금, 과연 아이들은 어떤 삶을 학교에서, 가정에서, 이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그들에게 어른들이 말하는 우정과 정의와 질서, 상식이라는 것들이 모두 온전히 이해될 수 있을까요.

 

해마다 수백 명의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있습니다. 개미지옥과 같은 입시제도 하에서 아이들은 스스로를 착취하고, 갉아먹다 결국 모조리 소진되어, 그렇게 삶을 마칩니다. 과연 자신이 무엇 때문에 이런 지옥 같은 삶을 견뎌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은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에서 말하고 있는 이야기들은 온전히 우리의 학교, 우리의 아이들과 겹쳐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더욱 더 잔혹하게 와 닿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이것이 이제야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자, 어른들은 또 다시 호들갑을 떨고 있습니다.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그렇게 끝내 진실은 외면한 채 아이들에게 ‘폭력 없는 학교’‘폭력 없는 교실’을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투표권이 있다면 모조리 낙선했을 인간들이 국회의원이란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한, 입시지옥과 무한경쟁이라는 포악한 살상무기를 집어치우지 않는 이상, 아이들에게 폭력 없는 교실은 꿈일 뿐입니다.

 

일본의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이 과연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포악하고 악랄한 이들일까요. 오히려 우리의 교육제도와 시스템, 사회에 만연해 있는 천박한 경쟁의식과 약육강식의 논리, 돈이나 통계, 치수가 유일한 가치가 되어버린 이 더러운 시스템 자체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지 않을까요.

 

정부는 떠듭니다. 교육청도 떠듭니다. 경찰도 떠듭니다. 하지만 떠들기만 합니다. 아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건방지게 굽니다. 오직 신고하랍니다. 친구들이 간첩입니까. 테러리스트입니까. 강한 처벌만이 답이랍니다. 이런 말들을 지껄이는 어른들을 보면 아이들은 뭐라고 할까요.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스펙을 자랑하는 한국 청년들. 그러나 취업할 곳은 없고, 유혹은 많습니다. 등록금은 살인적인데, 취업은 대량학살 정도의 수준입니다. 그리고 비정규직으로 들어가 하루하루 고통과 불안 속에 생계를 꾸려야 합니다. 이런 빌어먹을 시스템을 뜯어고치지 못하고 무슨 얼어죽을 폭력 없는 행복한 학교란 말입니까.

 

애초에 학교라는 시스템이 권력의 수월한 통제와 훈육, 세뇌를 위한 것임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교육은 분명 그 이상의 해악을 끼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서로 죽여 없애야 할 적으로 규정해 버리는 학교에서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을까요.

 

이 소설은 끔찍한 왕따와 폭력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서로 힘이 되어 준 두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의 감수성과 따뜻함이 눈물겹습니다. 또한 포기하지 않음이 애절합니다. 이런 아이들의 심리를 생생하게 묘사한 저자의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단 한 숨에 읽어 내려간 책. 하지만 여전히 무겁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아이들에게 진정한 숨 쉴 공간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땅의 아이들 모두의 교육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아이들의 하루를 생각해보며 정책을 펼치길 바랍니다. 적어도 내 자식에겐 어떤 교육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고, 이 땅의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이 적용해보길 바랍니다.

 

최근 교육 쪽의 공무원들을 상대한 적이 있습니다. 한심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일선의 선생님들이 얼마나 힘드실까 절절히 느꼈습니다. 아무리 단체의 수장이 진보적이고 개혁적이면 뭐합니까. 그 아래 철밥통이 그대로인데.

 

그들에게 주는 세금이 아깝고 아까울 따름입니다. 어서 어서 그들의 정년이 오기를 바랍니다. 이 땅의 아이들을 위해 말이죠.

 

학교 폭력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든, 이 땅의 교육자들을, 교육 공무원들을, 정책 담당자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든 책이었습니다. 우울합니다.

 

이 땅의 공무원들이 참 우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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