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분 인생 - 진짜 나답게 살기 위한 우석훈의 액션大로망
우석훈 지음 / 상상너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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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C급 경제학자라 말하는 우석훈 선생. 그의 글로 그동안 배운 게 참 많은 나 역시 C급 기자인 것인가!^^ 뭐, 전혀 억울한 마음은 없다. 지금과 같은 후안무치의 시대의 과연 A급을 자처하는 ‘1등급 인간들’에게 그리 배울 것이나 존경할 만한 점들이 없기 때문이다.

 

책은 에세이다. 그가 살아온 과정, 느껴온 과정, 사랑해온 것들, 싫어하는 것들 그리고 생각하고 추구했던 신념과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스스로 말도 잘 하지 못하고, 글도 재미있게 쓰지 못한다고 겸손을 떠셨는데, 내가 보기엔 겸손도 지나치면 재수 없다. 그는 말도 잘하고 글도 재미지게 쓴다.

 

그는 경제학자다. 경제학자는 세상을 돈을 중심으로 바라본다. 그 역시 마찬가지라 말한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세상이 돈만으로 구성된 것도 아니고, 사람들의 일상성을 구성하는 많은 동기들이 꼭 돈이나 경제적 이유인 것만은 아니라고 믿고 산다. 아울러 선진국이 되면, 사람들의 행위의 절반 정도는 돈이 설명하지만 나머지 절반 혹은 그 이상은 돈과는 상관없는, 보람이나 가치 혹은 미학적이거나 예술적 이유로 더 많이 설명된다고 믿는다. 동감이다.

 

그는 소위 남들이 보기에 잘나가는 위치에 올랐을 때 가장 불행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이른 바 높은 자리에 있는 이들일 때 가장 외로웠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가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내려놓은 채, 평범하지만 열심히 정직하게 땀흘리며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당연하지. 그걸 꼭 마흔이 넘어서야 아셨나.

 

그의 표현대로라면 우리 가카 - ‘이 희한한 사나이는 반도에 사는 우리 모두를, 좌파든 우파든, 진보든 보수든, 좀 너저분하게 만들어버렸다 - 덕분에, 우리 모두가 조금은 정신줄을 놓았고, 또 놓고 살고 있다. 그가 상징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추악한 욕망이 그대로 바로 우리들 자신이었음을 알아차렸을 때의 그 낭패감. 우리는 모두 그런 낭패감 속에 5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는 유쾌하다. 정말 유쾌할 수 없는 세상에도 그 유쾌함을 놓지 말자고 말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고, 누군가를 돕기 위해 노력하자고 말한다. 그러면 비로소 정말 행복해진다고.

 

내가 보기에 그는 상당히 까칠한 사람이다. 글 마다 동감되는 부분이 적지 않은 것을 보면 분명 그렇다. 그는 매우 까칠한 양반일 것이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천사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의 등에 칼을 내리꽂는 인간들이 미쳐 날뛰는 세상에서, 까칠하지만 강자를 위해 굴종하지 않고, 이웃들과 함께 상식을 믿으며, 불의와 몰상식에 짜증을 내는 이들은 아름답다. 암암.

 

돈이 모든 것의 우선이 되면 세상은 정말 간단하다. 하지만 그만큼 정말 재미없을 것이다. 말이 재미없는 것이지, 지옥과 같은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 점점 천국과 멀어져 보이는 이유다. 지옥에서 도덕과 가치와 상식과 아름다움은 개에게도 주지 않을 것 아닌가.

 

이 모든 일들이 오직 위대한 가카 때문이라고 핑계댈 수는 없다. 우리 모두가 MB와 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조금 더 대놓고 본능을 발산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을 뿐이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성찰할 필요가 있다. 과연 우리는 왜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인지.

 

그의 글들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발랄하다. 확실히 어린 친구들과 어울리고, 예술을 사랑하시다보니 글까지 젊다. 부럽다. 난 내 글이 어이없게 늙었다고 생각할 때가 많은데. 하지만 재기발랄함 속에 감추어진 날카로움, 해박한 지식, 유연한 발상과 확고한 신념, 똑바로 땅에 뿌리박은 철학은 숨길 수 없다. 역시 그동안 그가 고민해온 시간이 적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세상에 공짜가 어딨나.

 

그의 글은 솔직하다. 욕먹을 인간들은 욕하고, 반대는 칭찬한다. 자신도 잘난 게 없음을 밝힌다. 잘난 척 할 때는 좀 하는 것 같다만.^^ 하지만 전혀 거부감이 없다. 무엇보다 키득거리며 읽다가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때론 ‘아, 쪽팔려…. 나도 이런 적이 있지’하며 반성까지 유도한다.

 

오랜만에 아주 즐겁게 책장을 넘긴 것 같다. 특히 이런 에세이를 경건함이 아닌 발랄함으로 읽는 것은 참 오랜만이다. 유쾌한 독서는 언제나 감사할 따름.

 

최근 한미FTA에 대한 책을 낸 것으로 안다. 참 부지런한 양반인 것은 인정해야 겠다. 《나는 꼽사리다》하랴, 강연하랴, 글쓰랴. 역시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C급 경제학자가 살아가기는 힘든 것인가.

 

앞으로도 그를 응원한다. 지인 중 그를 개인적으로 몇 번 알게 되었다는 이는, “글과 그 사람의 행동이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라며 약간의 비판을 가했지만, 뭐 상관없다. 윤리 교과서 쓴 양반들이 하나같이 윤리적이고, 종교서적 쓰는 양반들이 모두 성자는 절대! 아니니까. 다만 그의 글을 통해 내가 반성하고 내가 웃고 내가 즐거우면 된다. 그 사람이 정말 몰지각하고 불의한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들통나겠지. 뭐,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그는 고양이를 사랑한다. 매우. 그리고 고양이의 야성을 사랑한다. 그 길들여지지 않음을 사랑한다. 그가 지식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신념 역시 고양이와 같다. 길들여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 지식인들이 ‘한 조각씩 던져주는 고기조각에 길들어져 사는 강아지보다는 언제나 야성으로 남는 고양이에게 배워야 한다’는 주장엔 100% 공감이다.

 

책을 덮으며 생각해본다. 난 고양이였나, 강아지였나. 고기 조각 하나에 가슴 설레는 멍청한 강아지는 아니었을까.(물론 애완동물로써 강아지를 절대 무시하거나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강아지 귀엽다!) 지식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절대 바보로 살고 싶지는 않은, 나는 정말 바보로 살고 있지는 않나.

 

그의 글을 가끔은 벼락같이 명심하며 살아야겠다. ‘Eye of The Tiger’까지는 안 되더라도, 야성을 잃지는 말자~! 잘 읽었다.

 

“성대를 끊고, 손발톱을 다 끊어도 고기조각만 때맞춰 던져주면 꼬리를 살랑살랑거리는 강아지를 바라보면 나는 화가 난다. 속에서 불같은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고양이는 길드는 것을 거부한다. 나는 그런 고양이가 좋다. 강아지 같이 살기 보다는 다소 모자라고, 때론 불쌍한 고양이 편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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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냐 추녀냐 - 문화 마찰의 최전선인 통역 현장 이야기 지식여행자 3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마음산책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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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 후 복학한 뒤, 열심히 학점 따기에 매진하고 있을 무렵, 고르바초프가 학교에서 강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강연장으로 달려간 기억이 있다. 이미 강연장은 사람들로 바글바글. 당시 고르비는 세계 순회 강연을 다니며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었고, 아마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그런 그를 ‘역시 개혁과 개방의 선구자답군!’하고 감탄하진 않았던 것 같다. 한국이나 일본처럼 허세부리기 좋아하는 나라들이나 고르비처럼 ‘같이 사진 찍기 좋은 사람’ 모시기에 바빴을 따름이지.

 

아무튼 그는 30분 정도의 강연을 했다. 후에 요네하라 씨의 글을 보면 고르비가 현역에 있을 때는 어마어마한 장시간 강연으로 유명했다고 하는데, 이미 그때는 끈 떨어진 권력자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혹은 다른 스케줄이 또 있는지 달랑 30분을 이야기하고 말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일화가 있다. 동시통역 하시는 분의 매우 불성실해 보이는 통역! 고르비는 나름 긴 호흡으로 말을 했는데, 정작 우리에게 전달되는 문장은 몇 개 되지 않았다. 그것도 상당히 진부하고도 빤한 표현들.

 

음, 고르비가 달변가라고 했던 것도 다 옛날 이야기였군.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시 청중 틈에 끼어 있던 내 옆에, 우연히 러시아어에 식견이 있는 분이 있었던 것. 그리고 그의 혼잣말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

 

“아, 정말 통역 뭐같이 하네~”

 

아하, 통역이 문제였군. 고르비는 자신의 말이 100% 우리들에게 전달되고 있다고 믿고 있었을까. 혹은 어차피 와서 돈을 받고 몇 십 분 떠들다 가는 것이니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때 처음 깨달을 수 있었다. 통역이란 직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러시아 통신》을 통해 처음 만나게 된 요네하라 마리 씨와의 두 번째 데이트는 그녀의 첫 작품인 바로 이 책이다. 일본 러시아어 통역계의 한 획을 그은 사람으로 지금도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요네하라 씨 역시 처음 ‘햇병아리’시절이 있었음을, 또한 무수히 많은 실수와 좌절을 거듭하며 통역사의 길을 걸어왔음을 보여주는 즐겁고도 유쾌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책은 통역과 번역에 대한 이야기다. 자신과 동료들이 겪었던 수많은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통번역의 중요성, 즉 서로 다른 나라의 가치관과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하지만 또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말하고 있다. 아울러 철저한 프로정신, 장인정신으로 정말 좋은 번역, 통역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그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사실 모든 갈등과 비극은 소통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서로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우리는 저마다 제멋대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한다. 그 결과가 어떤 파국으로 치달을 것인지 모르면서, 혹은 이미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한다. 상대방 역시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란 착각이 전제된 무모함이다.

 

요네하라 씨는 바로 그러한 소통의 현장에서 양측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다. 때론 미녀가 되어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확하고 바른 통역을 해야 했고, 때론 추녀가 되어 상황을 호전시키기 위해, 양측의 소통을 돕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살짝 보태기도 했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현장에서 순간순간마다 미녀와 추녀를 오갈 수밖에 없는 통역사들의 애환을 일반인들은 쉽사리 짐작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녀는 평등주의자였다. 모든 언어는 평등하고, 따라서 그 언어를 사용하는 모든 민족, 국가는 평등하다고 생각했다. 약소국의 언어가 후진적이고, 강대국의 언어만이 우수할 수 없다. 저마다의 문화, 역사를 담고 있는 언어는 모두 소중한 것이다. 때문에 세계에 현존하는 6000여개의 언어 중 90% 이상이 장차 모두 사라질 위험에 있음에 그녀는 가슴 아파 했다.

 

아울러 지나친 영어 몰입교육에 대해서도 강한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일본의 영어 편중 풍토에 그녀는 “일본도 미국 문화권 속에 있다. 그것을 절대시하지 않기 위해서 영어 이외에 다른 언어를 하나 더 배워야 한다”“미국의 역사적 시점을 무시한 언어의 규제는 성공하지 못한다. 영어 편중은 다양한 시각을 방해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영어 편중 현상이야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다. 정신분열증적인 광기에 가까운 영어 조기교육 열풍을 보고 있자면, 여기가 과연 어디인가 궁금할 정도다. 또 일본 아이돌, 가수들이 했던 것 그대로 우리 가수들도 노래에 영어가 들어가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이름들도 죄다 정체불명의 영어들이다.

 

언어의 달인, 요네하라 씨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을 경계한 것이었다. 갓난아이가 모국어가 아닌 영어부터 배우는 희한한 상황. 그것이 그 아이의 인지구조와 삶의 미래를 어떻게 규정지을지 과연 부모들은 상상이나 하고 있을까. 자신들은 자녀들을 위해 최대한의 사랑을 베풀고 있다고 믿지는 않을까.

 

언어의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것, 단조로운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쉽게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문화 마찰의 최전선’인 통역 현장에서 평생을 보낸 그녀에겐 그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였을 것이다.

 

진정한 언어의 달인, 소통의 마법사 그리고 아름다운 글을 많이 남긴 요네하라 마리. 그녀와 같은 생각을 품고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 어서 오길 바란다. 일본이나 바로 이 땅이나 전 세계 모두 말이다.

 

마리 씨와의 다음 데이트는 또 어떤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을까.

 

지리적으로 떨어지고 서로 다른 역사를 걸어온 나라의 사람들이 다른 문화와 발상법을 배경으로 한 각각의 언어로 표현하면서도 서로 통하는 일… 다른 민족에게 자국 언어를 강요하거나 반대로 강대국에 영합하여 자국어를 소홀히 하는 사람들은 영원히 느낄 수 없는 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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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을 생각한다
프레시안 기획, 강원택 외 27인 지음 / 삼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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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른바 보수진영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박근혜 씨가 5·16군사쿠데타를 ‘아버지의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발언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박근혜 씨에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아버지를 부정하는 순간, 자신이 가지고 있는지지층 역시 한 순간에 자신을 부정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마도 역사의 반동기로 기록될 이명박 정부 시기가 마무리되어가는 지금, 우리는 다시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있다. 향후 대한민국의 5년을 책임질, 보다 정확히 말하면 국민들의 뜻을 받들어 일할 새 지도자를 선출해야 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이 중요하지 않을까. 하지만 향후 2013년부터의 5년은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국운이 결정되는 시기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국제환경이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제 세계 절대 강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중국의 위상 앞에, 미국마저 쩔쩔 맬 정도이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다 이들이 이제 G2로써 대결적 구도를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주 무대 중 하나가 바로 동아시아이며, 한반도이다. 미중 양국의 대결구도는 한반도의 남북을 분리시켜 각자의 세력권으로 끌어들이는 노력을 더 한층 강화하고 있다.

 

그 적나라한 모습이 바로 2011년 1월 워싱턴에서 열렸던 미중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이었다. 한반도를 포함해 국제질서에 대해 미중 양국은 철저히 자국의 국익만을 위해 합의했다.

 

이러한 모습이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우리는 언제나 약소국이었고, 결국 세계의 운명을 쥐고 있는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그래도 이 정도 살아왔으니, 잘 한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냉전시대와 그 성격은 다르지만, 어쩌면 더욱 위험한 새로운 종류의 대결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추세에 남북은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특히 남쪽 이명박 정부의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아마추어적인 외교, 대북정책은 미중 양국에게 ‘한반도 구성원인 남북 정부가 한반도 위기상황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고, 오히려 더욱 부추기고 있다’고 판단케 만들었다.

 

절대 강국인 미중 양국의 틈바구니에서 남북이 힘을 모아 협력하고 생존의 길을 모색하기에도 절박한 이때, 정작 남북은 전쟁을 운운하며 날뛰고 있는 상황. 과연 그 결말이 어떻게 맺어질 것인지 두렵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래서다. 새삼 다시 김대중 대통령의 용기와 지혜가 빛나는 이유다. 그는 IMF의 참담한 시기에 대통령의 자리에 올라, 이를 이겨냈으며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전 세계에 한민족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그의 외교적 리더십 역시 빛났다. 그는 냉전질서가 붕괴하고 새로운 국제질서가 형성되는 과도기를 충분히 이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이를 남북이 서로 협력하여 새로운 동아시아질서에 끌려가는 것이 아닌, 이끌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강대국 정치에 수동적으로 끌려간 것이 아니라 그 역학관계를 이용해 능동적으로 대처했다는 소리다. 여기서 그의 지도자다운 면모가 드러난다.

 

이 책은 김대중을 찬성하는 사람, 반대하는 사람, 비난하는 입장, 인정하는 입장의 사람들이 그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밝힌 글들을 모았다. 비록 그와 반대되는 정치적 입장을 가진 이들의 글이 적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는 있지만, 기획자의 말대로 모두에게 청탁했지만, 반대의 입장에 있는 이들이 거부했다는 점 역시 밝혀야 할 듯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현대사를 관통하는 인물이다. 그의 삶 자체가 대한민국이었고, 그의 행동 자체가 한국 정치사였다. 여전히 그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을 오가는 지금, 인간 김대중, 대통령 김대중은 우리에게 무엇이었고, 그가 남긴 것은 무엇이었는지를 찬찬히 톺아볼 수 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물론 많은 이들이 동감하는 부분이지만, 남북관계의 새 역사를 이끌어냈다는 점을 무엇보다 높이 사고 싶다. 물론 이는 그 혼자만의 성과가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시작된 남북의 만남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를 일생의 신념으로 풀어낸 이 역시 김대중이었다는 점도 분명할 것이다.

 

남북관계의 개선, 평화 그리고 통일은 옵션이 아니다. 여유가 있으면 하는 문제가 아니란 소리다. 반드시 온 민족이 신명을 바쳐 이뤄야 할 절대과제다. 통일을 굳이 왜 해야 하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지만, 우리의 생존을 위해, 우리의 온전한 하나됨은 필수적이다. 외세에 의해 찢겨진 민족이 하나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지만, 우리가 더욱 더 번영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잘 사는 세상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바로 그 일의 첫 단추를 끼운 이가 김대중이다. 그는 평생 빨갱이를 소리를 들으며 정치를 한 인물이다. 하지만 생명을 걸고 휴전선을 넘었으며, 김정일 위원장과 평화를 위한 악수를 나눴다.

 

한참 연장자인 자신을 “The Guy”라 부른 후안무치, 무개념의 부시 대통령에게 간곡히 부탁하고 또 부탁해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지킬 것은 반드시 지킨 인물이기도 했다. 한일 월드컵이 한창일 2002년 서해교전에서 북에게 단호하게 대응하면서도 동해로는 금강산 관광이 이뤄지는 상상할 수 없는 현실을 만들기도 했다. 절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한편 김대중은 민주주의를 위해 생의 마지막까지 혼신을 힘을 다하다 스러져간 투사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목놓아 통곡하며,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 부르짖은 투사였다. 우리는 그의 마지막에서 나약한 한 인간이 얼마나 큰 울림을 줄 수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에게도 많은 아쉬움과 잘못이 있다. 그 모든 것 역시 그가 안아야 할, 우리 역사가 안아야 할 과제일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가 다시 그와 같이 현명하고, 결단력이 있으며, 국민을 생각하고, 민주주의를 믿는,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대통령을 만날 수 있을지 말이다.

 

지금,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씨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저마다 자신이 적임자라고 외치고 있다. 모두들 훌륭한 인물일 것이다. 물론 다는 아니지만. 하지만 그들의 입에서 여전히 남북통일, 한반도 평화는 뒷전이다. 경제이야기, 복지 이야기가 주 화두다. 물론 중요한 문제다. 절박한 문제다.

 

하지만 과연 남북의 평화가 보장되고, 남북이 함께 협력하고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지 않는다면, 경제 발전, 복지 구현이 가능할까. 온전히 가능할까.

 

우리는 분명 김대중 이상의 리더를 만나야 한다. 그런 리더를 키워야 하고, 그런 리더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인간 김대중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혹은 여전히 비난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될 이유이기도 하다. 그가 추구했던, 혹은 그가 실패했던 것들을 기억하고, 더 나은 시대, 더 나은 삶을 가능케 하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때문에 여전히 김대중은 유효하다. 오랫동안 그럴 것이다. 이 책의 가치는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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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서부터 - 신자유주의 시대,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김두관 지음 / 비타베아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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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기 위해 말 그대로 대한민국을 ‘상식과 정의’가 소멸된 곳으로 만드신 MB의 꼼꼼한 국정운영이 마무리되어가고 있다. 드라마 〈추적자〉처럼 비참한 말로가 예상되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역시 우리 가카는 무언가 또 다른 꼼수를 준비하셨을 것이라는 믿음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이젠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저마다 MB정부의 5년을 혹독하게 비판하며, 이제 새로운 물결이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 국민들의 또 한 번의 선택이 남아있다.

 

지난 5년을 돌이켜보면, 물론 돌이켜보기도 심히 싫지만, 상식이라는 것, 지극히 당연한 가치라는 것이, 실은 얼마나 허약한 신기루와 같았는지 여실히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누구나 믿어왔던 가치와 상식이 하루아침에 부정되는 현실. 이 꿈과 같은 이들이 연이어 터져 나온 5년이었다.

 

아울러 우리는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헛된 꿈을 투영시킬 때 벌어질 수 있는 비극이 얼마나 참혹한지를. 땅값, 집값이 오르리란 기대에 우리는 마치 모두가 강남 부자인것마냥 정치적 행동을 했고, 쓰레기 언론들의 십자포화 속에 선량한 시민들이, 가난한 이웃들이 졸지에 나라를 망치는 위험분자가 되어버리는 상황을 모른 채 지나가며 살았다.

 

피땀 흘려 만들어 놓은 남북관계는 파탄나, 대통령이란 작자의 입에서 “확실히 응징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무참한 언사가 나오고, 북한을 고립시키겠다며 으름장을 놓은 5·24조치로 정작 무너지고, 죽어나간 건 한국의 선량한 중소기업인들이었다. 북한의 김정은 제1비서는 자신의 부친을 모독한, 그의 죽음마저 정치적으로 이용한 대한민국 정부를 쉽게 용서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지극히 당연하다. 어느 누가 자신의 아버지를 더럽힌 자들과 손을 잡으려 할까.

 

권력의 충실한 개였던 월급쟁이 검찰과 경찰 그리고 돈 한 푼에 명예를 팔고, 가치를 벗어버리는 쓰레기 언론들의 활약은 5년을 더욱 더 참담하게 만들었다. 법 따위는 우리 편이 아니라는 생각이 서민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졌고, 정의와 상식이 이뤄지는 나라는 TV 드라마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자, 이렇게 5년을 보냈다. 그리고 2012년이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결국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좌절과 체념 속에 일단 나부터 잘 살고 보자는, 전투 모드를 한층 더 올려야 할까. 내 새끼, 내 가족, 내 ‘나와바리’부터 챙기고 남들은 죽어나가던 말던 그냥 모른 척 하고 살아야 할까.

 

아니면, 자기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역사의 비극을, 민주주의의 말살을, 가치의 붕괴를 여전히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독재자의 딸을 또 다시 청와대로 보내야만 할까. 5·16 군사쿠데타를 ‘5·16’이라고 무참히 표기해버리는 쓰레기 언론들을 언제까지 그냥 바라봐야만 할까.

 

때문이다. 김두관을 비롯한 문재인, 안철수, 손학규 등 정권 교체를 표방하고 대선에 뛰어든, 혹은 곧 뛰어들 이들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우리는 최선을 선택할 수는 없어도 최악을 선택하지는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한국 정치사에서 최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민주정권 10년이 있었지만, 그들 역시 대통령의 자리에 있을 때, 국민 모두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고, 그들의 정책 중, 국민의 뜻과 반하는 것들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와 같은 괴물을 탄생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지금 굳어지고 있는 박근혜 필승론은 어차피 허구다. 5·16의 무덤을 여전히 만지작거리는 이에게 국민들은 신뢰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박근혜는 이미지 정치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정치적 능력,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전혀 갖추지 못한, 그냥 ‘군홧발로 정권을 불법 탈취한 전 대통령의 딸’일 뿐이다. 솔직히 말하자. 국정운영에 대한 철학, 남북관계에 대한 철학, 노동자에 대한 생각, 경제에 대한 생각. 이 모든 것에서 박근혜는 아는 것이 없다. 자기 생각이 없는 그냥 ‘박근혜’일 뿐인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현재 대선주자, 후보들에게 관심을 쏟아야 한다.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치밀히 검증해야 한다. 방송에서 떠드는 것은 어차피 각 방송에서 원하는 부분만을 광고할, 혹은 비난할 뿐이다. 중요한 것은 나의 눈으로, 나의 생각으로, 나의 가치관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검증하는 것이다.

 

이명박이란 괴물로 인해 대통령이란 자리가 참 한심해졌고, 구차해졌지만, 여전히 대통령이란 직책은 한국은 물론 한반도 전체의 운명을 바꿔놓을 수 있는 중요한 자리다. 역설적으로 MB가 제대로 보여줬다. 한 명의 이중인격자, 황금만능주의자 때문에 대한민국은 10년 이상 뒤로 물러났다.

 

현재 안철수 신드롬이 잠시 주춤해 보인다. 곧 대선출마를 선언하고 레이스에 뛰어들게 될테니, 그 이후의 변화도 지켜봐야 한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혹은 우려하고 있는 그의 자질, 능력을 제대로 검증해야 할 것이다. 기존 정치에 신물이 난 이들에게 안철수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대안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 더러운 현실 정치에 뛰어들 각오가 되어 있는지, 뛰어들면 잘 할 수 있는 능력과 인격을 갖추고 있는지 반드시 지켜봐야 할 것이다.

 

문재인은 능력과 인격 모두 훌륭하다. 진중하고, 사려 깊으며, 무엇이나 기분 내키는 대로 결정하는 타입이 아니다. 지극히 신중한 정치인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전에 노무현의 아픔과 작별해야 한다. 만약 그의 대통령 당선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의 걱정을 안심으로 바꿔 놓아야 한다.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가 ‘노무현의 한풀이’를 위해 대선에 나선다면, 자신과 함께 국민들을 위해 출마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

 

한편 김두관은 철저히 아래에서부터 시작한 인물이다. 이장에서 군수, 장관에서 도지사까지. 노무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실패의 경험도 많고, 또한 지방균형발전에 대한 의지도 확고하다. 아울러 남북관계에 대한 신념, 경제 민주화 및 보편적 복지, 노동 정책에 대한 신념도 있는 듯 보인다. 겸손하고 청렴하다는 평가도 대체적으로 주를 이루고 있다. 한 마디로 믿음직한 일군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 역시 과제가 남아있다. 노무현의 꿈이었던 지역감정 해소와 역설적으로 노무현이 자초한 한미FTA 등 신자유주의 체제에 맞서 어떻게 그가 말한 ‘성공한 서민정부’를 만들어 나갈 것인지 말이다. 아울러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학력 콤플렉스’가 부정적인 모습으로 표출되었던 사례들이 있었음도 기억해야 한다. 김두관은 스스로 느끼는 콤플렉스를 부단한 노력으로 극복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 두 대통령 역시 학력에서 오는 불편함을 초인적인 노력으로 극복했다. 그럼에도 기존 보수세력, 반대 세력의 비난과 조롱을 받아야만 했다. 이는 학벌이 여전히 자산가치가 되는 비정상적 사회에서 그가 극복해야 할 과제다.

 

그의 도지사 사퇴와 대선 출마 선언을 우려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도민을 배신했다는 원색적인 비난도 나온다. 물론 그가 사퇴하면 경남은 다시금 보수 진영의 아름다운 점령지가 될 수도 있다. 아마 그럴 것이다. 하지만 김두관의 꿈은 경남을 넘어 대한민국, 나아가 한반도 전체가 행복해지는 것이다. 스스로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 한반도가 행복해지는 것을 반대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난 여전히 김두관을 모른다. 그는 오랫동안 지방자치를 실현해 온 인물이다. 그가 중앙정치에서, 그리고 대한민국의 중심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지, 여전히 모른다. 하지만 그에 대해 모른다는 것은, 동시에 그 역시 우리들에게 여전히 보여줄 것이 많다는 것일 수도 있다. 이미 밑천이 드러난, 아니 더 보여줄 것이 없는 박근혜, 김문수, 정몽준 등과 비교했을 때, 더욱 기대되는 부분이다.

 

그는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을 자신의 롤 모델로 삼는다. 임기 중 전체 국민의 10%를 빈곤층에서 중산층으로 늘린 대통령. 퇴임 후 더욱 존경받고 사랑받는 정치인.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모든 정책의 최우선이라 말했던 대통령. 김두관은 그런 룰라와 같은 대통령이 되려 한다. 아마 김두관은 지지층을 배신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불필요한 적도 만들지 않았던, 룰라의 뛰어난 정치력 역시 배우고 싶을 것이다.

 

김두관은 아래에서부터, 서민과 함께 정치를 하겠다고 말한다. 아울러 그런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그의 약속을 믿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하지만 남은 시간 동안 더 많이 그를 봐야 하고, 더 많이 그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그가 정녕 꿈꾸는 세상이 무엇인지 꼼꼼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조중동 쓰레기들의 저주의 굿판이 곧 열릴 것이다. 이름조차 새롭지 않은 새누리당의 패악질도 이어질 것이다. 분열과 갈등, 증오와 무관심을 생산해내려는 시도들이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상황을 바라본다면 희망은 있다. 미쳐 날뛰는 세상을 바로 잡는 것은 결국 국민의 몫일 수밖에 없다.

 

김두관의 건투를 빈다. 아울러 민주주의의 건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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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160
메리 셸리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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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공부는 하지 않고 참 많은 영화들을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시험이 다가오면 갑자기 읽지 않던 책이 보고 싶고, TV 드라마가 갑자기 재미있어지고, 영화들도 그렇게나 보고 싶었잖아요.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 당시 보았던 수많은 영화들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습니다. 뭐 제가 기억력이 좀 좋은 편이라, 대충 제목이나 주연, 줄거리를 들으면 떠올릴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전부 기억하진 못하죠.

 

하지만 1994년 케네스 브래너 감독의 《프랑켄슈타인》은 잊을 수 없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당시 로버트 드 니로가 주연으로 열연했던 영화입니다. 그의 광기어린, 때론 나약하기만 한 괴물의 모습은 좀처럼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 책은 무려 200여 년 전에 쓰여진 고전 중 고전입니다. 모든 공포영화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괴물의 원조 격인 셈이죠. 인간이 감히 신의 영역에 도전하여, 생명을 창조하고, 그 생명이 오히려 인간을 공격하고 죽음으로 몰아넣는 설정은 지금까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전형적인 패턴입니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 상투적 스토리에 또 다시 빠져들고요. 아마 영원이 이어지지 않을까요.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정작 메리 W. 셸리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같습니다. 드라큘라나 늑대인간, 미이라의 원작자나 배경에 대해 생각보다 모르는 것과 같죠. 너무 유명하면, 오히려 그 근원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는 버릇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인간에겐 말이죠.

 

끔찍한 괴물의 원조를 창조해낸 이가 여성이라는 점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아울러 《프랑켄슈타인》이 그녀의 첫 작품이자 거의 유일한 대표작이라는 점도 재미있고요. 연인과 함께 떠난 여행에서 사람들과 장난삼아 시작한 ‘괴기소설’창작하기가 결국 문학사에 남을 고전을 만들어냈으니, 이것도 운명이었을까요.

 

하여튼 저자의 이름마저 가려버릴 정도로, 프랑켄슈타인은 20세기 대중문화의 뚜렷한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해왔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을 창조한 불운한 주인공의 이름이었음에도, 후에는 괴물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이름이 되어버렸을 정도로, 유명해진 것이죠. 원래 괴물은 이름조차 없었는데 말입니다.

 

이 책이 만약 단순한 괴기소설, 공포소설의 의미가 가지고 있었다면, 글쎄요. 지금까지 그토록 많은 영화, 소설, 연극 등으로 재창조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200년 전에 던진 메리 셸리의 질문에 여전히 인류는 답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요.

 

우리는 아직도 황우석 사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여전히 유전자 복제, 생명 복제 등의 단어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추세는 아마 더 확산되겠죠. 사회적 합의나 정서가 허락하지 않는 생명 복제가, 인류의 생명을 구원하고 경제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믿음 하에 점차 합리화되고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아닐까요.

 

하지만 과연 우리에게 그러한 권리가 있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그럼으로써 우리가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온전히 알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대의와 열정으로, 혹은 개인적 욕망과 자본의 논리에 따라 무책임하게 저질러지는 과학의 광기가, 결국 인류를 모두 ‘인간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리진 않을까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요.

 

복제 생물, 인공 생명체의 시대에 우리는 과연 무엇을 꿈꾸는 것일까요. 무책임한 결과에 따라 만들어진 생명체가 창조자에게 버림받고, 광기어린 괴물로 변해버리는 과정을 통해 《프랑켄슈타인》이 전해주고자 한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는 과연 신이 되고자 하는 것일까요? 그것이 가능할까요? 어쩌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욕망과 열정이 숨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프랑켄슈타인》은 인류의 추악한 욕망과, 뒤늦은 후회. 그리고 어찌할 수 없는 비극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프로메테우스가 되려 했던 인간의 욕망은 결국 스스로를 태워버리는 결과를 안겨줄지 모릅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선택은 결국 우리들의 몫으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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