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을 생각한다
프레시안 기획, 강원택 외 27인 지음 / 삼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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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른바 보수진영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박근혜 씨가 5·16군사쿠데타를 ‘아버지의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발언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박근혜 씨에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아버지를 부정하는 순간, 자신이 가지고 있는지지층 역시 한 순간에 자신을 부정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마도 역사의 반동기로 기록될 이명박 정부 시기가 마무리되어가는 지금, 우리는 다시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있다. 향후 대한민국의 5년을 책임질, 보다 정확히 말하면 국민들의 뜻을 받들어 일할 새 지도자를 선출해야 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이 중요하지 않을까. 하지만 향후 2013년부터의 5년은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국운이 결정되는 시기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국제환경이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제 세계 절대 강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중국의 위상 앞에, 미국마저 쩔쩔 맬 정도이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다 이들이 이제 G2로써 대결적 구도를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주 무대 중 하나가 바로 동아시아이며, 한반도이다. 미중 양국의 대결구도는 한반도의 남북을 분리시켜 각자의 세력권으로 끌어들이는 노력을 더 한층 강화하고 있다.

 

그 적나라한 모습이 바로 2011년 1월 워싱턴에서 열렸던 미중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이었다. 한반도를 포함해 국제질서에 대해 미중 양국은 철저히 자국의 국익만을 위해 합의했다.

 

이러한 모습이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우리는 언제나 약소국이었고, 결국 세계의 운명을 쥐고 있는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그래도 이 정도 살아왔으니, 잘 한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냉전시대와 그 성격은 다르지만, 어쩌면 더욱 위험한 새로운 종류의 대결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추세에 남북은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특히 남쪽 이명박 정부의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아마추어적인 외교, 대북정책은 미중 양국에게 ‘한반도 구성원인 남북 정부가 한반도 위기상황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고, 오히려 더욱 부추기고 있다’고 판단케 만들었다.

 

절대 강국인 미중 양국의 틈바구니에서 남북이 힘을 모아 협력하고 생존의 길을 모색하기에도 절박한 이때, 정작 남북은 전쟁을 운운하며 날뛰고 있는 상황. 과연 그 결말이 어떻게 맺어질 것인지 두렵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래서다. 새삼 다시 김대중 대통령의 용기와 지혜가 빛나는 이유다. 그는 IMF의 참담한 시기에 대통령의 자리에 올라, 이를 이겨냈으며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전 세계에 한민족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그의 외교적 리더십 역시 빛났다. 그는 냉전질서가 붕괴하고 새로운 국제질서가 형성되는 과도기를 충분히 이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이를 남북이 서로 협력하여 새로운 동아시아질서에 끌려가는 것이 아닌, 이끌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강대국 정치에 수동적으로 끌려간 것이 아니라 그 역학관계를 이용해 능동적으로 대처했다는 소리다. 여기서 그의 지도자다운 면모가 드러난다.

 

이 책은 김대중을 찬성하는 사람, 반대하는 사람, 비난하는 입장, 인정하는 입장의 사람들이 그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밝힌 글들을 모았다. 비록 그와 반대되는 정치적 입장을 가진 이들의 글이 적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는 있지만, 기획자의 말대로 모두에게 청탁했지만, 반대의 입장에 있는 이들이 거부했다는 점 역시 밝혀야 할 듯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현대사를 관통하는 인물이다. 그의 삶 자체가 대한민국이었고, 그의 행동 자체가 한국 정치사였다. 여전히 그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을 오가는 지금, 인간 김대중, 대통령 김대중은 우리에게 무엇이었고, 그가 남긴 것은 무엇이었는지를 찬찬히 톺아볼 수 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물론 많은 이들이 동감하는 부분이지만, 남북관계의 새 역사를 이끌어냈다는 점을 무엇보다 높이 사고 싶다. 물론 이는 그 혼자만의 성과가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시작된 남북의 만남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를 일생의 신념으로 풀어낸 이 역시 김대중이었다는 점도 분명할 것이다.

 

남북관계의 개선, 평화 그리고 통일은 옵션이 아니다. 여유가 있으면 하는 문제가 아니란 소리다. 반드시 온 민족이 신명을 바쳐 이뤄야 할 절대과제다. 통일을 굳이 왜 해야 하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지만, 우리의 생존을 위해, 우리의 온전한 하나됨은 필수적이다. 외세에 의해 찢겨진 민족이 하나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지만, 우리가 더욱 더 번영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잘 사는 세상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바로 그 일의 첫 단추를 끼운 이가 김대중이다. 그는 평생 빨갱이를 소리를 들으며 정치를 한 인물이다. 하지만 생명을 걸고 휴전선을 넘었으며, 김정일 위원장과 평화를 위한 악수를 나눴다.

 

한참 연장자인 자신을 “The Guy”라 부른 후안무치, 무개념의 부시 대통령에게 간곡히 부탁하고 또 부탁해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지킬 것은 반드시 지킨 인물이기도 했다. 한일 월드컵이 한창일 2002년 서해교전에서 북에게 단호하게 대응하면서도 동해로는 금강산 관광이 이뤄지는 상상할 수 없는 현실을 만들기도 했다. 절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한편 김대중은 민주주의를 위해 생의 마지막까지 혼신을 힘을 다하다 스러져간 투사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목놓아 통곡하며,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 부르짖은 투사였다. 우리는 그의 마지막에서 나약한 한 인간이 얼마나 큰 울림을 줄 수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에게도 많은 아쉬움과 잘못이 있다. 그 모든 것 역시 그가 안아야 할, 우리 역사가 안아야 할 과제일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가 다시 그와 같이 현명하고, 결단력이 있으며, 국민을 생각하고, 민주주의를 믿는,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대통령을 만날 수 있을지 말이다.

 

지금,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씨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저마다 자신이 적임자라고 외치고 있다. 모두들 훌륭한 인물일 것이다. 물론 다는 아니지만. 하지만 그들의 입에서 여전히 남북통일, 한반도 평화는 뒷전이다. 경제이야기, 복지 이야기가 주 화두다. 물론 중요한 문제다. 절박한 문제다.

 

하지만 과연 남북의 평화가 보장되고, 남북이 함께 협력하고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지 않는다면, 경제 발전, 복지 구현이 가능할까. 온전히 가능할까.

 

우리는 분명 김대중 이상의 리더를 만나야 한다. 그런 리더를 키워야 하고, 그런 리더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인간 김대중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혹은 여전히 비난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될 이유이기도 하다. 그가 추구했던, 혹은 그가 실패했던 것들을 기억하고, 더 나은 시대, 더 나은 삶을 가능케 하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때문에 여전히 김대중은 유효하다. 오랫동안 그럴 것이다. 이 책의 가치는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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