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대한 불편한 진실 (반양장)
윤대규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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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아프다는 것을 모른 채 살아간다는 것, 스스로 비정상임을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처럼 위험하고 무모한 것이 또 있을까. 자신의 몸이 크게 다쳐 피를 철철 흘리고 있음에도, 고통을 느끼는 감각의 상실로 인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결국 죽음은 명백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우리의 분단 역사가 바로 그러한 모습이다. 분단 이후 6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니 그런 무참한 세월이 흘렀기에, 더 이상 우리는 분단을 ‘아파하거나’ ‘자각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남과 북이 갈라져 살아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고, 또한 그것이 오히려 통일보다 속 편하고 행복한 길이라는 착각마저 하고 살아간다.

 

책은 저자의 이야기처럼 북한에 대한 새로운 정보나, 혹은 통일을 이룰 수 있는 기가 막힌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제목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이 우리가 애써 모른 척하며, 혹은 억지로 기억하지 않으려 했던 이야기들을 꺼낼 뿐이다. 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이 사회가 처한 엄중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다.

 

나름대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왔다고 자부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전히 국민들을 갈라놓고, 서로를 증오하게 만드는 이슈가 있다. 바로 분단 문제, 북한 문제다. 새누리당조차도 입으로는 복지를 떠들고, 경제민주화를 떠드는 지금, 진보와(물론 민주당이 진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없겠지만) 보수를 구분 짓는 단 하나의 이슈는 다름 아닌 북한 문제다. 솔직히 인정하자.

 

지난 대선부터 이어진 NLL공방, 지금의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사태, 그리고 여전히 공방이 이어지고 있는 천안함 사건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은 반으로 쪼개져 서로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혹은 서로 대한민국의 국민이 될 자격이 없다고 공격하고 매도한다. 그렇다면 그 둘 중에 정말 정답은 어느 것일까. 둘 중 무조건 하나를 선택해야만 할까.

 

여기에서 얼마 전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매우 의미 있게 다가온다. 국민들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상당한 점수를 주었다. 기실 박근혜 정부가 막 출범한 직후였기 때문에, 대북정책을 제대로 펼칠 시간이 없었음에도, 또한 국민들이 실질적으로 느낄만한 성과가 초라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높은 평가가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 짧은 생각으로는 이것은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국민들의 바람이 담긴 것이라 본다. 제발, 전임 정부처럼 무기력하고 오만하고 시대착오적인 대북정책을 펼치지 말라는 충고, 혹은 명령인 것이다. 다시 열거하기조차 지겹지만 전임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제대로 된 남북관계의 진전이나 성과가 무엇이 있었나. 오히려 보수들이 목숨 바쳐 지켜야 할 안보만 악화되고, 아무런 죄도 없는 우리 국민들이 희생되어야 하지 않았나. 더구나 북한의 핵 개발 능력은 더욱 업그레이드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국민들의 메시지를 어쩌면 현 정부는 잘못 받아들인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드는 지금이다. 이산가족 상봉의 무산 이후 남과 북은 서로를 비난하고 조롱하며 무의미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그 사이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우리 국민들이 진정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신중히 바라볼 여지도 사라지고 있다.

 

3대 세습을 찬성하느냐, 북한의 핵 개발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는 단순무식한 강요를 하며 보수는 상대방을 종북 아니면 우리 편으로 규정한다. 이는 진보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에 대한 인식, 혹은 북한인권이나 탈북자에 대한 인식 등을 잣대로 그들은 수구 꼴통과 우리 편을 나눈다. 이게 과연 현명하고, 또한 정답일까. 내가 보기엔 둘 다 아닌 것 같다.

 

이러한 갈라진, 그것도 엉성하고 편협하고 자기 이해에 매몰된 진영 논리에 의해,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 역시 평가되어 왔다. 또한 대부분의 정권이 대북정책을 장기적 안목으로 추진하지 못하고, 상황에 따라 ‘맞춤형’으로 대응해왔다. 신중하고 현명한 정책이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다음과 같은 저자의 지적은 지극히 타당하다.

 

지금까지의 대북정책을 보면 대체로 일관된 원칙으로 수행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예상 밖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수습하는 차원의 임기응변식 위기관리 방식에 지나지 않았나 하는 비판을 벗어날 수 없다. 남북 관계는 그 현실적 특성상―그것이 최고 지도자의 의도에 의한 것이든 일선 병사의 실수에 의한 것이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계속 발생하게 되어 있다. 수많은 전문가를 동원해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든 대북정책이 예상치 못한 조그만 사건 하나로 쓸모없이 되어버린다면 얼마나 낭비인가. 아니, 그러한 대북정책은 ‘정책’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것이 아닐까.

 

북한 문제는 당연히 한반도 구성원인 남과 북이 주도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하지만 주변국의 이해관계를 무시한 대북정책, 통일논의는 동력을 상실하기 일쑤다. 때문에 냉철히 현실을 왜곡 없이 인식하고,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악의 정책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이명박 정권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아무런 철학도 비전도 현실적 목표도 없는 대북정책, 통일논의가 얼마나 허황되고 또한 위험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해 나름의 의지를 가지고 정책을 만들어 추진할 수 있는 시간은, 5년 단임제인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볼 때 1~3년 사이다. 그 시간이 지나버리면 관료들의 저항에 직면하게 되고, 공무원들은 솔직히 더 이상 일을 하지 않는다. 다음 정권에 대한 준비와 조직과 개인의 ‘살 길’을 찾을 뿐이다.

 

어처구니없게 거의 모든 주요 국가기관이 동원된 부정선거로 인해 출범하자마자 ‘정통성’의 위기를 겪고 있는 현 정부가 과연 어떠한 장기적이고 실현 가능한 대북정책을 추진할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불안한 기운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는 지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멍하니 상황을 바라볼 수만은 없다. 지금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 당장 추진해야 하는 일들을 하지 않고, 다만 이대로 시간이 흘러간다면 통일은 고사하고, 평화로운 한반도조차 담보할 수 없다. 우리가 손 놓고 있는다 해서, 북한이 그리고 다른 모든 세계가 덩달아 같이 멈춰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하고 있는 ‘관련국의 이해관계’ ‘북한 핵문제의 해법’ ‘북한 변화의 방향’ ‘대안적 정책제안’ ‘통찰력 있는 리더십’ 등은 북한에 대한 개인적 인식과 판단의 차원을 떠나 반드시 고민하고 또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다. 오랜 시간동안 북한을 연구하고, 또한 고민해 온 저자의 깊은 성찰의 결과이자, 또한 지극히 당연하지만 아무도 쉽사리 말하지 않았던 ‘불편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국제정치학, 북한학을 연구하는 이들은 물론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읽어봐야 할 책이다. 감히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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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문 펜더개스트 시리즈 5
더글러스 프레스턴.링컨 차일드 지음, 신선해 옮김 / 문학수첩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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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그러니까 2013년 10월~11월 사이 유독 ‘사회’가 들어가는 책들을 많이 읽은 것 같다. 굳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대충 기억나는 것들을 꼽아 보자면 《허기사회》《절벽사회》《팔꿈치 사회》《불안증폭 사회》등이다. 참 많구나.

 

그런데 제목을 보면 눈치를 채시겠지만, 한 결 같이 그다지 아름다운 제목들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얼마나 어처구니없게 돌아가고 있는지, 책들의 제목만 보아도 여실히 알 수 있다.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그것도 스릴러 소설의 서평에서 말이다. 앞서 지겹도록 언급한 것과 같이 당시, 그러니까 2013년 5월, 6월 백수로 열심히 사회생활(!)을 하며 주로 스릴러 소설을 읽었다. 그런데 스릴러 소설에는 반드시 악마와도 같은 잔혹하고 인정사정없는 범죄자가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은 응분의 천 벌을 받든가, 암튼 끝이 좋지 않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회에서 ‘악마’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누가 이들을 악마로 만드는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생뚱맞긴 하다. 난데없이 스릴러 소설에서 무슨 생각을 한 것이냐.

 

일명 사이코패스라 함은 아무 이유 없이 아무 인연도 없는 이들을 살해하거나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을 말한다. 그들은 대부분 뇌에 이상이 있거나, 어린 시절 큰 충격을 받았거나, 암튼 그렇다. 그렇다면 실재 그 사람에게는 죄를 물을 수 없는 것 아닐까. 뇌에 이상이 생기거나 어린 시절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은 것이 그들의 죄는 아니니 말이다.

 

물론 그렇게 말하면 반론이 제기된다. 뇌에 이상이 있거나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이 비단 그들만은 아닌데, 그럼 그러한 경험이나 이상을 겪은 모든 이들이 사이코패스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렇지 않으니 유독 그런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응당의 벌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 라고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나는 100% 수긍할 수 없다. 거기에 중요한 무엇인가가 하나 빠진 듯 한 느낌이다. 그것은 바로 사회라는 공동체의 역할이다. 한 개인의 일탈을 온전히 그만의 잘못으로 치부할 수 있느냐는 근원적인 물음이다.

 

난 여기에서 극심한 좌절과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다. IMF 이후 정상적인 정신세계를 강제로 포기하게끔 만들어버린 사회(물론 그 이전이라고 우리가 정상이었다고 할 수는 없겠다), 그 속에서 점점 사람들이 그야말로 ‘미쳐 가는 것’을 온전히 그 사람에게만 ‘미친 놈’이라 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소위 학자와 관료, 정치인들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통계를 살펴보면 이미 우리나라는 멸종의 시기에 접어들고 있다. 왜냐고? 아이를 낳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이혼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새로이 태어나는 생명은 점점 줄어들고,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가정을 새로이 꾸미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기존의 가정마저 파괴되어가는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겠는가.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이 점차 미쳐가고 ‘제 정신’이 아니게 되는 상황이, 어쩌면 하나도 이상한 것이 아니지 않을까. 오히려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가는 이들이 ‘기인’들이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이미 모두 조금씩 미쳐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음…. 심히 우울해지는 군. 암튼 공동체의 틀이 붕괴되고 개개인이 모두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살아가는 정글 시대에서는 삶의 희망도, 그 잘난 국가의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짧은 생각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그렇게 가고 있다. 세계 경제 10위권이라는 ‘돼지’같은 생각에만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결국 멸종되고 만다.

 

《지옥의 문》에서는 우리의 히어로 펜더개스트가 자신의 동생 디오게네스의 악랄한 범죄를 막기 위해 탈옥까지 감행하며 활약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똑똑했던 동생이 왜 이리 악랄한 범죄자가 되었는지 깨닫게 된다. 악마는 결코 스스로 만들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디오게네스는 물론, 사이코패스라 부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앞서 말한 사회적 영향으로 만들어진 피해자라 부를 수는 없다. 이 녀석은 정말 나쁜 놈이다. 하지만 문득 느낀다. 가해자는 전혀 기억하지도 못하는 사소할 수도 있는 단 하나의 사건으로 피해자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건널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참 조심하며 상대방에게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사소한 행동 하나가 상대에게 큰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상처주지 말고 사랑을 전해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호라, 스릴러 소설을 통해 이런 심오한 결론을 도출해내는 나는 정녕 천재란 말이더냐.

 

이로써 펜더개스트 시리즈는 일단, 국내에 나온 것은 전부 읽었다. 후속 작이 나오면 바로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시작은 했으니 챙길 생각이다. 심리학자 김태형은 개인이 마음의 병을 얻게 되는 요인으로 70%가 사회의 책임, 30%가 개인의 책임이라고 거칠게 표현한 바 있다. 사실 70%도 유하게 준 것이라는 말과 함께.

 

제발 아주 조금이나마 사회가 개인을 보듬어줄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그럼 스릴러 소설을 읽어도 정말 맘 편히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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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윈도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 2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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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빅 슬립》이후 두 번째 만나는 챈들러의 작품. 원래 그의 말로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은 《안녕 내 사랑》이지만, 국내엔 《하이 윈도》가 먼저 소개되었고, 나 역시 이 작품부터 만날 수 있었다.

 

하드보일드 장르를 뛰어넘어 일반 문학으로써의 작품성까지 인정받고 있는 챈들러는 그야말로 오랜 시간동안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려왔다. 그리고 그가 창조해낸 불멸의 캐릭터 ‘필립 말로’ 역시, 이후 탄생되는 수많은 탐정, 하드보일드 장르 주인공들의 모범으로 자리 잡았다.

 

차가운 얼굴로 담배를 입에 물고 늘 감정 없는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탐정 필립 말로. 하지만 그는 약자에 대한 따뜻한 연민의 정을 가지고 있는 ‘낡은 기사도’정신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작품의 해설을 통해 말로라는 인물에 대한 정확한 표현을 만날 수 있다. 아마 누구라도 작품을 읽은 후에는 그 표현이 얼마나 적절한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냉소적이면서 인간미가 있는 사람’ ‘혼돈되며 본질마저 뒤집히는 세계 가운데 우뚝 서서 당황스러워 하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고수하는 사람’

 

말로의 탄생 이후 챈들러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후배 작가들도 자신들의 작품에서 역시 또 다른 말로를 창조해냈고, 비열한 도시 차가운 거리에서 야수 같은 인간들과 싸워나가는 고독한 남자의 캐릭터는 영원한 로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여기 이 비열한 거리를 지나가야만 하는 한 남자가 있다. 그 자신은 비열하지도 않으며 세속에 물들지 않았으며 두려워하지도 않는 사람.’

 

챈들러의 작품은 복잡하고 모호한 플롯으로 자칫 독자들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멋진 문장 하나하나는 그러한 고통을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음이 있다. 나는 지난 작품 《빅 슬립》에서 무심결에 문장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또한 감탄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색다른, 그러나 매우 즐거운 경험이었다.

 

이번 작품에서도 필립 말로는 고독한 도시를 지키는 탐정의 면모를 다시 한 번 그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다른 작품들과 차별을 갖고 있는 것이 있는데, 이번에는 사람이 아닌 물건을 찾는다는 점이다. 바로 ‘브라셔 더블룬’라는 실제 존재하는 고가의 옛 주화이다. 이 주화의 도난을 둘러싸고 스토리가 진행되고, 결국 추악한 범죄가 드러나게 된다.

 

필립 말로의 눈빛은 지극히 차갑다. 그렇지만 그가 모든 이들에게 같은 ‘눈빛’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며 약자를 괴롭히는 이들에게 보여주는 분노와 적대감이 담긴 눈빛, 그리고 그들에게 짓밟히고 고통당하는 피해자를 바라보는 눈빛은 분명 다르다.

 

게다가 《하이 윈도》에서는 사회와 정의에 대한 말로의 신념이 그의 입을 통해 그대로 표현된다는 특징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당신네들이 스스로의 영혼을 가지기 전까지는 내 영혼도 가질 수 없을 거요. 어떤 상황에서나 당신들이 언제나 진실을 구하고, 결과야 어찌 되든 진실을 찾아내는 사람들이라고 신뢰할 수 있을 때까지는, 그때가 올 때까지는, 나는 내 양심을 따르고 나의 의뢰인을 최선을 다해서 보호할 권리가 있습니다. 당신들이 진실을 찾는 것은 고사하고 내 의뢰인에게 해를 더 끼치지 않을 거라는 것을 확신할 때 까지는요. 또는 누군가 내 입을 열게 하려고 체포할 때까지는 말이죠.”

 

또한 다음과 같은 표현도 필립 말로의 표현 스타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차양을 걷고 포치 밖으로 걸어 나갔다. 밤은 온 주위를 감싸고 있었고, 부드럽고 조용했다. 흰 달빛은 차갑고 맑았다. 우리가 꿈꾸지만 찾을 수 없는 정의처럼 말이다.

 

필립 말로는 언제나 외로워 보인다. 단지 그에게 사랑하는 여인이 없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비정한 도시, 속고 속이는 비열함 속에서 자신의 신념을 꿋꿋하게 지켜나가고 있는 그의 끈질김이 조금은 처량하게 보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그는 지금까지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아 왔고, 또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앞으로 우리들이 감당해야 할 삶, 시간들 속에서 더 많은 정의가 사라지고, 더 많은 상식이 무너지고, 더 많은 약자들이 고통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오늘도 우리는 ‘혼돈되며 본질마저 뒤집히는 세계 가운데’ 서 있다. 이미 떠난 이들의 이름마저 더럽히며, 그 잘난 생명을 이어가려는 이들, 아니 자신들의 하찮은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이들. 이들에겐 이미 염치나 자존심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하긴 지난 정부 이후 어쩜 우리에겐 더 이상 체면이나 자존심 따위가 허락되지 않는지도 모른다. 우린 얼마나 속물이 되었을까. 본질은 얼마나 더 뒤집혀질까.

 

이런 구차하고 무참한 시대, 필립 말로의 거친 숨소리가 그립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체면 없는 시대, 우리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남자를 통해 위로를 받으려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결은 다르지만, 필립 말로와 함께 떠오르는 또 한 명의 남자. 곧 그의 삶을 다룬 영화가 개봉한다. 과연 제대로 볼 수 있을지 벌써부터 두렵다.

 

정의를 소설 속에서나 간신히 찾을 수 있는 시대. 달빛이 그립다.

 

“토니는 잘 웃지 않지요.”

 

팔레르모가 말했다.

 

“이 땅은 잘 웃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팔레르모 씨.”

 

내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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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말고 진보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목수정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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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생각하면 먼저 한없는 자유가 느껴진다. 멈출 수 없었던 그의 자유의지는 언제나, 끝내 홀로가 아닌 ‘우리 모두’를 향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프랑스를 떠나 전 세계인들이 그리도 아름다운 추모를 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노 투사 스테판 에셀. 어쩌면 너무 쉽게 좌절하고 너무 맥없이 포기해버린 우리를 향해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호소했다.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에 대한 믿음을 품자!”고.

 

솔직히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분명 차원이 다른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지난 정권 5년의 시간을 ‘속물의 시대’라 부를 수 있다면 이제 시작되는 5년은 과연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짐승과도 같은 생존, 거기에 탐욕이라는 검은 털 가진 짐승만의 추함까지 더해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잘 살기만 하면 된다는 이기심. 그 결과 태어난 것이 MB정권이었고, 또한 5년의 세월이었다.

 

하지만 과연 이 아귀다툼으로 범벅이 된 5년 동안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원하는 부를 얻었나? 그 잘난 돈을 얼마나 벌었는가? 그리고 이제 다시 맞이한 시간들은 과연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1년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 아쉽게도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지난 1970년대의 암울했던 시대를 떠오르게 할 뿐이다. 지난 시기에 이어 또 다시 고통과 눈물 속에 당장 눈앞의 시간을 버텨야 할 이들의 처절한 외침이 차디찬 바람 앞에 허망하고, 또 무참하다.

 

그렇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렇지도 않은 척, 눈물조차 몰래 숨기고 그렇게 죽은 듯 살아가야 할까. 2013년 2월 27일, 95세의 나이로 타계한 스테판 에셀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이 책에서, 그는 진보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불꽃같은 신념으로 자신의 지난 삶을 숨김없이 고백한다. 침묵하고 있던, 잠자고 있던 우리들의 양심을 깨우는 잠언들을 통해….

 

난 매우 겁이 많다. 애써 숨기고 싶지도 않다. 숨겨지지도 않고. 겉으로는 짐짓 강한 척 애쓰지만, 불의에 쉽게 주눅 들고 아파한다. 그리고 침묵하는 경우도 수없이 많다. 난 결국 그런 한심한 놈에 불과하다.

 

때문에 스테판 에셀의 삶은 나에게 더욱 더 빛나고 또한 아름답다.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상식과 정의가 짓밟히는 시대를 향해 ‘옳지 않다!’고 외쳤고, 프랑스뿐만이 아닌 전 세계인들에게 정치적 무관심에서 깨어날 것을 호소했다. 그의 호소가 담긴 작은 책자 하나가 소리 없이 세계를 강타했고, 어느 새 그의 호소처럼 ‘분노한’ 이들이 거리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의 행동에서, 외침에서, 작지 않은 혁명이 만들어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옮긴이의 말처럼 체 게바라도, 마르크스도, 부르디외도 아니었다. ‘그저 행복에 대한 취향과 정의에 대한 각별한 신념을 가진, 콧구멍에서 늘 흥이 넘쳐나는 한 은퇴한 외교관’이었을 뿐이다. 사람들은 그의 말에 열광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삶이 보여주는 무한한 긍정의 에너지와 또한 지극히 정당한 분노에 매혹당한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정당한 분노에는 국경도, 인종도, 나이마저도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직접 보여줬다.

 

억장이 무너지고 마냥 쓰러지고만 싶은 시대다. 누구하나 가슴 아프지 않은 이가 없고, 입을 가진 모든 이들은 더 이상 희망을 찾지 못하겠다고 울부짖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다고 여기에서 한바탕 울어버리고 끝낼 순 없다. 나의 삶은, 우리의 삶은 그리 간단하지도, 단순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독서의 미덕은 스테판 에셀과 같은 스승을 만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저 멀리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서 살아가던 그를 마치 내 이웃처럼, 이 땅의 한 가족처럼 느끼게 된 것도 온전히 활자의 힘일 것이다. 하지만 그깟 거리, 그깟 국적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세상을, 온전히는 아니더라도 같은 눈과 마음으로 바라보고, 함께 분노할 수 있는 적절한 감수성과 열정을 공유하고 있다면 말이다.

 

제1회 리영희상 수상자로 권은희 송파서 수사과정이 선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비단 이 상이 언론인에게만 수상의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반가움과 고마움 속에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켜나감에 있어 왜 이리 언론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지, 하긴 이미 그들은 더 이상 언론인이 아닐 수도 있겠다.

 

책을 읽으며 그의 삶과 열정과 의지를 다시 한 번 느낀다. 그리고 짐짓 모른 척 그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따르려 한다. “좋은 인생은 우리가 쌓아온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믿음을 갖는 인생”이라는 말을.

 

언제 우리가 당연하게 승리한 적이 있었던가. 다시다. 다시 신발 끈을 단단히 조여매고, 이제 다시다.

 

“우리는 이 비열한 도살장에서

유일한 무기로 여겼던 민주주의가 승리하게 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절망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바로 그때, 나는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에 대한 믿음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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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13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
제프리 디버 지음, 안재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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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직업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다. 당최 무슨 소리냐고? 그 유명한 제프리 디버의 스릴러를 읽고 갑자기 무슨 직업이냐고?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스피드의 극한을 보여주는 작품 앞에서 생뚱맞게도 무슨 직업타령이냐고?

 

 

못 믿겠음 당신도 한 번 읽어보쇼! 라고 말하고 싶지만, 뭐 다른 이들은 다른 생각이 들 수도 있으니, 대충 넘어가고. 암튼 나에게 이 작품의 결말 이후 첫 감상은 다름 아닌 직업이었다.

 

 

작품에는 칠꾼, 캘꾼, 양치기 등의 직업이 등장한다. 뭔 소린가 하겠지만, 칠꾼은 전문적인 킬러, 캘꾼은 특정 정보를 어떠한 수단을 동원해서든 캐내는 전문 신문자를 말한다. 그리고 양치기는 주연, 즉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증인 등을 보호하는 이들을 뜻한다.

 

 

주인공 코르트는 정부의 비밀기관에서 주요 증인이나 정보제공자를 보호하는 임무를 맡은 ‘양치기’이다. 지상 최고의 과제는 어떻게 해서든 주연을 칠꾼이나 캘꾼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를 가르친 스승 에이브를 살해한 캘꾼, ‘러빙’을 잡는 것이다. 러빙은 물리적 정보 추출 전문가라는 이름에 걸맞게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그 어떠한 잔악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 인물이다.

 

 

러빙을 잡기 위한 기회만을 노리고 있던 코르트에게 어느 날 정말 기회가 찾아온다. 워싱턴 D.C의 한 경찰관 케슬러를 타깃으로 러빙이 캘꾼으로 고용되었다는 정보를 얻은 것이다. 코르트는 이제 양치기 본연의 임무인 주연 보호와 함께 복수의 기회를 얻게 된 셈.

 

 

그야말로 직업정신에 무자비하게 충실한 두 남자 코르트와 러빙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추격전 속에서 서로의 빈틈을 노리고, 자신이 도대체 왜 쫓기는지조차 모르는 경찰관 케슬러와 그의 가족들은 계속되는 도망과 은신 속에 지쳐가고….

 

 

역시나 무지한 난 제프리 디버란 작가를 그의 대표작인 《링컨 라임 시리즈》로 만나보질 못했다. 그가 존경해마지 않는 이언 플레밍의 007시리즈를 기려 집필한 《카르트 블랑슈》를 통해 첫 대면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엣지》만으로도 왜 수많은 독자들이 제프리 디버의 작품에 열광하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떤 북로거님이 마이클 코넬리와 더불어 돈 안 아까운 작가라고 평가했던데, 아직 제프리 디버의 대표작인 《링컨 라임 시리즈》를 접해보진 못했지만, 그런 평가를 받아도 될 만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다.

 

 

이 작품은 지금껏 읽었던(그리 많이 읽은 것도 아니지만) 크라임 스릴러 작품 중 가장 빠른 스피드 전개를 자랑한다. 게다가 두 프로의 숨 막히는 심리전과 상대의 허를 찌르는 공격은 아주~! 상투적인 표현으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아, 원래 손에 땀이 좀 많긴 하다.

 

 

수많은 스릴러 마니아들의 평가를 믿어 의심치 않으며 《링컨 라임 시리즈》를 기회가 온다면 1편부터 꼼꼼하게 읽어보고 싶다. 그리고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도 함께 말이다. 잘 만들어진 스릴러는 도통 책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게 하는 마력이 있다. 때문에 종종 직장 생활이나 가정생활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정도의 파괴력을 가진 작품을 한 번 만나나 봤으면 하는 나름의 호기도 가지고 있으니. 자, 무엇부터?

 

 

아, 직업에 대한 이야기. 혼동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분명 가지고 있다. 세상에는 필요하지 않은 직업, 나아가 없어져야 할 직업이 분명 존재한다. 게다가 그 직업의 마스터 급 인물이 있다면, 이는 재앙일 수도 있다.

 

 

그런데 세상엔 가끔씩 그런 마스터들에게 존경과 찬사를 보내는 살짝 정신이 모자란 이들이 있다. 아무리 직업엔 귀천이 없다고 공식적으로만(!) 떠드는 세상이라지만, 그래도 쓰레기를 떠받들고 추앙하는 사이코 패스 같은 짓들은 안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참…… 세상 살기 힘들구나 하는 생각은 든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때론 남들이 모두 꺼려하고 두려워하는 일을 하는 이들. 이들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라고 생각해 본다.

 

거듭 말하지만 영화나 드라마는 현실과 다르다. 그냥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환호하고 좋아하는 것이 현명하다. 사실 나도 그러고 있으니.^^ 그런데 아주 가끔은 그런 부류의 인간들에게도 동정이 가고, 때론 인정도 하게 된다. 미친 게지.

 

 

타인에게 어떠한 식으로든 피해를 주는 것은 매우 비난받을 일이다. 더구나 자신보다 힘이 약하거나 권력이 없는 이들을 괴롭히는 경우엔 더욱 더 그렇다. 안타깝지는 이 세상엔 후자의 경우가 무척이나 많다. 그래서 지켜보기 힘들 때가 많다. 뭐, 때론 내가 밟히고 당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세상엔 정말 절박한 생존을 위해, 타인을 괴롭히며 살아가는 부류들도 존재한다. 그들 역시 마땅히 처벌받고 비난받아야 한다. 당연히 죗값도 치러야겠지. 하지만, 빌어먹을 하지만….

 

제 정신이 아닌 이 세상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것 역시 편치 못하다. 마음이.

 

 

어느 드라마에서 나온 대사가 떠오른다. “모든 범죄자가 다 같은 범죄자는 아니”라는…. 아, 암튼 신나게 읽어놓고 나중에 더 생각을 복잡하게 만든 작품이다. 에이, 나라꼴이 요 모양이니 독서도 맘대로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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