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문 펜더개스트 시리즈 5
더글러스 프레스턴.링컨 차일드 지음, 신선해 옮김 / 문학수첩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최근, 그러니까 2013년 10월~11월 사이 유독 ‘사회’가 들어가는 책들을 많이 읽은 것 같다. 굳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대충 기억나는 것들을 꼽아 보자면 《허기사회》《절벽사회》《팔꿈치 사회》《불안증폭 사회》등이다. 참 많구나.

 

그런데 제목을 보면 눈치를 채시겠지만, 한 결 같이 그다지 아름다운 제목들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얼마나 어처구니없게 돌아가고 있는지, 책들의 제목만 보아도 여실히 알 수 있다.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그것도 스릴러 소설의 서평에서 말이다. 앞서 지겹도록 언급한 것과 같이 당시, 그러니까 2013년 5월, 6월 백수로 열심히 사회생활(!)을 하며 주로 스릴러 소설을 읽었다. 그런데 스릴러 소설에는 반드시 악마와도 같은 잔혹하고 인정사정없는 범죄자가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은 응분의 천 벌을 받든가, 암튼 끝이 좋지 않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회에서 ‘악마’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누가 이들을 악마로 만드는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생뚱맞긴 하다. 난데없이 스릴러 소설에서 무슨 생각을 한 것이냐.

 

일명 사이코패스라 함은 아무 이유 없이 아무 인연도 없는 이들을 살해하거나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을 말한다. 그들은 대부분 뇌에 이상이 있거나, 어린 시절 큰 충격을 받았거나, 암튼 그렇다. 그렇다면 실재 그 사람에게는 죄를 물을 수 없는 것 아닐까. 뇌에 이상이 생기거나 어린 시절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은 것이 그들의 죄는 아니니 말이다.

 

물론 그렇게 말하면 반론이 제기된다. 뇌에 이상이 있거나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이 비단 그들만은 아닌데, 그럼 그러한 경험이나 이상을 겪은 모든 이들이 사이코패스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렇지 않으니 유독 그런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응당의 벌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 라고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나는 100% 수긍할 수 없다. 거기에 중요한 무엇인가가 하나 빠진 듯 한 느낌이다. 그것은 바로 사회라는 공동체의 역할이다. 한 개인의 일탈을 온전히 그만의 잘못으로 치부할 수 있느냐는 근원적인 물음이다.

 

난 여기에서 극심한 좌절과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다. IMF 이후 정상적인 정신세계를 강제로 포기하게끔 만들어버린 사회(물론 그 이전이라고 우리가 정상이었다고 할 수는 없겠다), 그 속에서 점점 사람들이 그야말로 ‘미쳐 가는 것’을 온전히 그 사람에게만 ‘미친 놈’이라 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소위 학자와 관료, 정치인들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통계를 살펴보면 이미 우리나라는 멸종의 시기에 접어들고 있다. 왜냐고? 아이를 낳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이혼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새로이 태어나는 생명은 점점 줄어들고,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가정을 새로이 꾸미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기존의 가정마저 파괴되어가는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겠는가.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이 점차 미쳐가고 ‘제 정신’이 아니게 되는 상황이, 어쩌면 하나도 이상한 것이 아니지 않을까. 오히려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가는 이들이 ‘기인’들이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이미 모두 조금씩 미쳐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음…. 심히 우울해지는 군. 암튼 공동체의 틀이 붕괴되고 개개인이 모두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살아가는 정글 시대에서는 삶의 희망도, 그 잘난 국가의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짧은 생각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그렇게 가고 있다. 세계 경제 10위권이라는 ‘돼지’같은 생각에만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결국 멸종되고 만다.

 

《지옥의 문》에서는 우리의 히어로 펜더개스트가 자신의 동생 디오게네스의 악랄한 범죄를 막기 위해 탈옥까지 감행하며 활약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똑똑했던 동생이 왜 이리 악랄한 범죄자가 되었는지 깨닫게 된다. 악마는 결코 스스로 만들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디오게네스는 물론, 사이코패스라 부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앞서 말한 사회적 영향으로 만들어진 피해자라 부를 수는 없다. 이 녀석은 정말 나쁜 놈이다. 하지만 문득 느낀다. 가해자는 전혀 기억하지도 못하는 사소할 수도 있는 단 하나의 사건으로 피해자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건널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참 조심하며 상대방에게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사소한 행동 하나가 상대에게 큰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상처주지 말고 사랑을 전해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호라, 스릴러 소설을 통해 이런 심오한 결론을 도출해내는 나는 정녕 천재란 말이더냐.

 

이로써 펜더개스트 시리즈는 일단, 국내에 나온 것은 전부 읽었다. 후속 작이 나오면 바로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시작은 했으니 챙길 생각이다. 심리학자 김태형은 개인이 마음의 병을 얻게 되는 요인으로 70%가 사회의 책임, 30%가 개인의 책임이라고 거칠게 표현한 바 있다. 사실 70%도 유하게 준 것이라는 말과 함께.

 

제발 아주 조금이나마 사회가 개인을 보듬어줄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그럼 스릴러 소설을 읽어도 정말 맘 편히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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