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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말고 진보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목수정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4월
평점 :
그를 생각하면 먼저 한없는 자유가 느껴진다. 멈출 수 없었던 그의 자유의지는 언제나, 끝내 홀로가 아닌 ‘우리 모두’를 향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프랑스를 떠나 전 세계인들이 그리도 아름다운 추모를 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노 투사 스테판 에셀. 어쩌면 너무 쉽게 좌절하고 너무 맥없이 포기해버린 우리를 향해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호소했다.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에 대한 믿음을 품자!”고.
솔직히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분명 차원이 다른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지난 정권 5년의 시간을 ‘속물의 시대’라 부를 수 있다면 이제 시작되는 5년은 과연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짐승과도 같은 생존, 거기에 탐욕이라는 검은 털 가진 짐승만의 추함까지 더해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잘 살기만 하면 된다는 이기심. 그 결과 태어난 것이 MB정권이었고, 또한 5년의 세월이었다.
하지만 과연 이 아귀다툼으로 범벅이 된 5년 동안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원하는 부를 얻었나? 그 잘난 돈을 얼마나 벌었는가? 그리고 이제 다시 맞이한 시간들은 과연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1년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 아쉽게도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지난 1970년대의 암울했던 시대를 떠오르게 할 뿐이다. 지난 시기에 이어 또 다시 고통과 눈물 속에 당장 눈앞의 시간을 버텨야 할 이들의 처절한 외침이 차디찬 바람 앞에 허망하고, 또 무참하다.
그렇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렇지도 않은 척, 눈물조차 몰래 숨기고 그렇게 죽은 듯 살아가야 할까. 2013년 2월 27일, 95세의 나이로 타계한 스테판 에셀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이 책에서, 그는 진보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불꽃같은 신념으로 자신의 지난 삶을 숨김없이 고백한다. 침묵하고 있던, 잠자고 있던 우리들의 양심을 깨우는 잠언들을 통해….
난 매우 겁이 많다. 애써 숨기고 싶지도 않다. 숨겨지지도 않고. 겉으로는 짐짓 강한 척 애쓰지만, 불의에 쉽게 주눅 들고 아파한다. 그리고 침묵하는 경우도 수없이 많다. 난 결국 그런 한심한 놈에 불과하다.
때문에 스테판 에셀의 삶은 나에게 더욱 더 빛나고 또한 아름답다.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상식과 정의가 짓밟히는 시대를 향해 ‘옳지 않다!’고 외쳤고, 프랑스뿐만이 아닌 전 세계인들에게 정치적 무관심에서 깨어날 것을 호소했다. 그의 호소가 담긴 작은 책자 하나가 소리 없이 세계를 강타했고, 어느 새 그의 호소처럼 ‘분노한’ 이들이 거리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의 행동에서, 외침에서, 작지 않은 혁명이 만들어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옮긴이의 말처럼 체 게바라도, 마르크스도, 부르디외도 아니었다. ‘그저 행복에 대한 취향과 정의에 대한 각별한 신념을 가진, 콧구멍에서 늘 흥이 넘쳐나는 한 은퇴한 외교관’이었을 뿐이다. 사람들은 그의 말에 열광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삶이 보여주는 무한한 긍정의 에너지와 또한 지극히 정당한 분노에 매혹당한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정당한 분노에는 국경도, 인종도, 나이마저도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직접 보여줬다.
억장이 무너지고 마냥 쓰러지고만 싶은 시대다. 누구하나 가슴 아프지 않은 이가 없고, 입을 가진 모든 이들은 더 이상 희망을 찾지 못하겠다고 울부짖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다고 여기에서 한바탕 울어버리고 끝낼 순 없다. 나의 삶은, 우리의 삶은 그리 간단하지도, 단순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독서의 미덕은 스테판 에셀과 같은 스승을 만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저 멀리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서 살아가던 그를 마치 내 이웃처럼, 이 땅의 한 가족처럼 느끼게 된 것도 온전히 활자의 힘일 것이다. 하지만 그깟 거리, 그깟 국적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세상을, 온전히는 아니더라도 같은 눈과 마음으로 바라보고, 함께 분노할 수 있는 적절한 감수성과 열정을 공유하고 있다면 말이다.
제1회 리영희상 수상자로 권은희 송파서 수사과정이 선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비단 이 상이 언론인에게만 수상의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반가움과 고마움 속에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켜나감에 있어 왜 이리 언론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지, 하긴 이미 그들은 더 이상 언론인이 아닐 수도 있겠다.
책을 읽으며 그의 삶과 열정과 의지를 다시 한 번 느낀다. 그리고 짐짓 모른 척 그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따르려 한다. “좋은 인생은 우리가 쌓아온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믿음을 갖는 인생”이라는 말을.
언제 우리가 당연하게 승리한 적이 있었던가. 다시다. 다시 신발 끈을 단단히 조여매고, 이제 다시다.
“우리는 이 비열한 도살장에서
유일한 무기로 여겼던 민주주의가 승리하게 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절망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바로 그때, 나는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에 대한 믿음을 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