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사회 - 대한민국은 지금 절벽에 서 있다
고재학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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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인간성이 상실돼 자신을 파괴한다. 낭떠러지 밑으로 밀려나지 않으려 다들 죽기 살기로 돈벌이에 매달리고 자녀에게도 공부와 성공만을 강요한다. 이는 결국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에 극심한 경쟁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약탈적 착취 행위가 만연하는 가장 큰 이유다.”

 

이건 뭐, 도저히 새빨간 색 말고는 표현할 색이 없다. 우울 그 자체이니 보라색으로 칠해야 했나. 뭐 아무튼 지금 심정으로는 극히 우울한 레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을 표현하거나 묘사할 수 있는 단어들은 죄다 급성우울증후군을 불러일으킬 것들뿐이기 때문이다.

 

좀 지겹지만, 다시 한 번 복기하자면 세계 최고의 자살률(자그마치 하루 평균 42명이다), 중산층 붕괴, 600만 명의 비정규직(여기에서 또 자본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에서 비정규직은 당연한 모습이라고 떠드는 분 계시겠다. 여기까지 읽느라 고생하셨다. 그만 접고 다른 고색창연한 글들을 읽으시라), 100만 명의 청년백수, 1천조 원을 웃도는 가계 부채 등이다. 지겹도록 눈물겹겠지만 현실이다.

 

살짝 다른 이야기 하나. 얼마 전 탈북 출신 기자를 만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이 얘기 저 얘기 떠든 적이 있다. 그 때 기자의 말 중 유난히 인상적이었던 구절, 아니 증언이 있었다. 대충 옮겨 보자면,

 

지금 북한 역시 빈부 격차의 확대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늘어나고 있다. 때문에 가난한 계층(맙소사, 위대한 공산주의 국가 북한에서 계층이라굽쇼!)의 젊은이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도 같은 존재이다. 사소한 시비가 붙어도 큰 싸움으로 번지고, 사람이 죽어 나가는 일도 다반사다. 이런 북한의 현실을 모른 채 마냥 통일은 대박이라고 떠들면 곤란하다. 남한은 이런 폭탄을 온전히 껴안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준비는 무슨! 우리가 안고 있는 폭탄만도 지구를 수 백 번 가루로 만들 수 있을 만큼 많은 걸! 원래 착하지도 않은 우리가 뭔 놈의 남의 폭탄까지 사랑으로 안을 수 있냐고! 라고 말하면 정말 매정하고도, 반민족적이자, 싸가지 없는, 한 마디로 참 나쁜 놈 되시겠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인정하자. 현실은 현실이다.

 

내가 만난 기자는 탈북 하여 한국에서 살게 된지 이미 10년이 훌쩍 넘은 이였다. 그런데 어떻게 지금의 북한을 매직(Magic) 종편처럼 잘 아느냐고?(종편은 마술사다. 자강도, 양강도에서 평생을 살다 탈북 하여 한국으로 온 이들도 종편에 출연하면 평양 엘리트들의 시시콜콜한 뒷얘기, 보위부 최고위 간부의 사생활, 심지어 북한 최고지도자의 개인 생활까지 꿰뚫는 예지력과 통찰력을 보여준다. 급기야 그들이 했다는 대화까지 인용한다. 마술이 아니면 도대체 무언가!). 최근 탈북 하여 들어오는 이들에게 전해 듣고, 또 최근 탈북한 젊은이들이 보여주는 증오와 박탈감 등을 직접 확인했다는 것이다.

 

살짝 다른 이야기가, 살짝 길어졌다. 비교적 최근 시장경제가 침투(보수진영 학자나 언론들이 즐겨 사용하는 단어다. 침투래. 누가 새벽녘, 원산항으로 밀입북해 시장경제 1.5리터짜리 스무 개들이 20박스를 몰래 던져놓고 나오기라도 했나?)되었고, 빈부격차가 아무리 크다 한들, 우리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북한이 이 정도이다. 그래! 이 말이 하고 싶었던 거다. 다들 고만고만하게 살면, 힘들어도 그리 큰 박탈감이나 억울함을 느낄 가능성이 적다. 하지만 극심한 소득격차와 이로 인한 불평등, 소외의식, 불공정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사회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언제든 사회 전체를 날려버릴 수 있을 만큼 위험한 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꼴이 된다. 인간의 분노는 아주 작은 화학작용 하나로도 터질 수 있으니 말이다.

 

오랜 언론인 경력을 가지고 있는 저자는, 경륜에서 우러나오는 날카로운 시각과 숙성된 감성으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한 두 개도 아닌 무려 아홉 개의 핵폭탄을 보여준다. 오해마시라, 저자가 오버하거나 발명해낸 것들이 아니다. 엄연히 현실로 존재하며 우리를 한 방에 말살해버릴 수 있는 리얼핵폭탄이다. 이것들을 정중히 호명해보자. 인구, 일자리, 재벌, 교육, 취업, 임금, 금융, 창업, 주거. 저자는 이것들의 꼬리에 공통적으로 절벽을 붙인다. 그렇다. 우리는 한 번 삐끗하면 다시는 오를 수 없는 아홉 가지의 절벽 사이를 헤치며 살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좀 살아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절실히 느끼겠지만, 친절히 개당 한 문장으로 표현해보자. 문장력 증진을 위해!

 

인구: 살기 참 더럽게 힘들어 아이는커녕 결혼도 포기하는 젊은이와 상대적으로 늘어만 가는 노년층

 

일자리: 에혀, 이건 말해 뭣하나. ‘해고는 살인이라는 말로 끝.

 

재벌: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이어지는 죽음엔 침묵하던 언론이 이건희 삼성 회장의 입원과 병세 완화를 실시간 속보로 날린다.

 

교육: 초등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나는 꿈이 없다고 말하는 사회.

 

취업: 88만원 세대라도 되었으면 좋겠다는 청춘들의 소리 없는 눈물.

 

임금: 해마다 최저임금을 둘러싸고 전경련을 비롯한 재벌들의 눈뜨고는 못 보는 온갖 생쑈. 최저임금을 올리면 경제가 내일이라도 망할 것처럼 떠들지. 그네들이 말하는 경제에는 임금노동자의 삶과 국민들의 살림살이 따위는 애초 고려사항이 아니다.

 

금융: 가계부채 천국이 된 대한민국. 지겨운 대출광고가 없다면 종편도, 케이블 방송도 이미 망했다. 대부업체가 지배하는 대한민국.

 

창업: 서태지와 아이들이 뛰어난 예지력으로 말씀하셨지. “죽음의 늪

 

주거: 유병언 세모그룹 전 회장이 소유한 토지의 면적은 여의도의 6.5. 경기도 안성에서만 사들인 아파트가 216세대. 그럼 보통 국민은? 28살에 직장생활을 시작한 대한민국 평균 월급쟁이가 서울에서 33평형 아파트를 장만하려면 숨만 쉬고 살아도 57, 서울 강남권 아파트를 사려면 72세가 될 때까지 오로지 숨만 쉬어야 한다! 근데 빌어먹을. 당최 정년이 몇 년까지인 건 알고 떠드는 거냐!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다. 아름다운 대한민국에서 정작, 살아가고 있는 이들은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는 고사하고, 생존에 필수적인 것들조차 아귀다툼으로 누군가에게 빼앗아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언뜻 봐도 이는 지옥이다. 이미 다들 눈치를 채셨겠지만 우리는 지옥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탄지 오래다. 그리고 그 길에 에스오일이나 현대 오일뱅크가 있는 휴게소 따위는 없다.

 

그럼 뭔가. 도대체 무엇이 이 지긋지긋하고 살 떨리는 절벽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인가. 저자는 아홉 가지의 저주를 풀 수 있는, 역시 아홉 가지의 주문을 소개하고 있다. 물론 주문이라고 해서 허무맹랑하고 유치뽕짝이거나 미션 임파서블은 아니다. 오히려 지극히 당연해서 숙연해지는 주문이다

 

바로 공생이다. 공멸을 피하는 방법은 단 하나, 다 같이 살아가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이 무슨 허무한 소리냐고 하실 분들 분명 계시겠다. 하지만 이미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습이다. 어디에 가도 1명이 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등의 개소리는 하지 않는다. 그런 극악무도한 이야기가 어디 있나. 나머지는 9,999명은 잉여인간인가!

 

절벽 끝에서 이제 떨어질 순간만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저 하늘에서 동아줄을 내려 주시진 않는다. 결코! 다만 다른 누군가가 손길을 내밀 수 있을 뿐이다. 그렇게 손길이 이어지고 또 이어지며 우리는 결코 이 정글 같은 시스템에 구속당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질 수 있다면, 절벽사회는 어느 새 따뜻한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빙 둘러앉아 소박한 밥을 나눌 수 있는 원형사회로 변해 있을 것이다.

 

우울한 7월이다. 월드컵 대표선수단을 애국자라 부르는 이들도 있다. 우리 국민이 지금 월드컵에 정신 팔려 있을 때가 아님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왔다는 소리다. 궁극의 역발상!

 

사의 표명한 총리를 쓸 만한후보가 없다고, 다시 주저앉히는, 역시 궁극의 대국민 삐짐쇼를 보여주신 분이, 이젠 대국의 큰 형님을 모셔와 동족 비난하기를 대대적으로 감행하고 계시다. 역지사지라고 과연 북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국민들은 힘들다고 아우성을 치는데, 공허하게 북핵 절대 불용을 외치며, 모처럼 찾아온 소중한 외교적 기회를 오버헤드킥으로 날려버리는 정부. 진도 앞바다에는 여전히 사랑하는 이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의 피눈물이 멈추지 않고 있는데, 뒤늦게 밝혀지는 온갖 끔찍한 공권력의 무능과 직무유기. 범죄.

 

맞다. 액면가 그대로의 대한민국은 당장 내일 망해도 전혀 억울할 게 없다. 하지만 늘 희망은 사람에게서 나왔고, 사람에게 있다. <절벽사회>는 우리가 서 있는 절벽의 맨 얼굴을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이를 넘을 수 있는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소중한 가치들을 함께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 이 책은 적어도 누구처럼 먹튀는 아니다. 일독을 슬그머니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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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 도시생활자의 백서
하승우.유해정 지음 / 북하우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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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64지방선거에서 내 나름대로 정리한 체크 포인트. 우선, 그리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생애 최초로 집단 표 앵벌이(!)’ 정치인들의 출몰을 목격할 수 있었다는 점. 급하긴 엄청 급했던 게지. 또한 역시 옛말 틀린 게 하나 없다고 수신제가가 먼저 이뤄지지 않으면, 이번처럼 캔디 어택으로 한 방에 훅 가거나, 똘똘한 아들 덕택에 을 흘려야 한다는 점. 참 많은 이들의 오열 코스프레를 감상해야만 했던 선거였다. , 고승덕 후보의 숨겨진 헤비 메틀 스피릿을 발견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겠다. 그의 불후의 명곡 <애비 메탈>은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름대로 중요하게 느낀 점 하나. 정치에 대해 불신을 가지고, 무관심해지면 질수록 결국 그 놈이 그 놈’ ‘다 도둑놈들이라는 정치인 중 제일 큰 도둑놈이 우리를 지배하게 된다는 점이다. 사전투표제를 처음으로 도입했음에도 예상보다 투표율이 저조했다는 점은, 향후 정치권과 우리 모두가 고민하고 반성해야 할 부분. 물론 진보 교육감들의 대거 당선으로 작은 희망의 불씨를 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았지만 

 

사실, ‘까놓고 이야기하자면, 아니 그냥 까놓지 않고 말해도 모두가 알고 있듯, 우리 국민들은 정치에 절대 무관심하지 않다. 오히려 인간적으로, 정치 과잉상태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다. 매일 매일 정치인들과 그들이 벌이는 어처구니 상실 퍼포먼스에 관심을 가지고 분석 및 평가하고, 씹고, 까지 않는가! 내 미천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어딜 가도 우리나라 택시 기사님들과 같은 정치적 내공과 탁월한 분석력, 강한 이념적 열정, 깨알 같은 정치비화 지식을 갖춘 이들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 장담한다! 코리언은 분명 정치적 동물인 것이다. 정치가 없다면, 아마도 전국의 모든 주점들은 문을 닫아야만 할 것이다. 역사상 유일무이한 우주 최강 안주가 사라질 테니 

 

그러면 우리는 왜 이렇게 정치에 많은 관심을 갖고 살아가면서도 정작 참여에 있어서는 그 반만큼의 열정이라도 보이지 않는 것일까. 이는 물론 간단히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다. 하나의 정답도, 설명도 불가능하다. 예전부터 정치로 인해, 정치 주도 세력의 변화로 인해 자신의 개인적 삶이 단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음을 기억하는 이들의 자포자기’ ‘체념의 발로일 수도 있고, 그 반대로 정치적 변화로 인해 커다란 고통과 상처를 받았던 이들의 피해의식이 쌓인 결과일 수도 있다. 정치인은, 정치하는 것들은 죄다 도둑놈들이고 나쁜 놈이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나와는 다른 특별한 존재이기에, 함부로 할 수 없는 이들이라는 모순적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라는 포기 혹은 체념의 심리가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살며시 생각해본다. 사실 나의 한 표가 우리 마을을, 우리 구를, 우리 시와 도와 나아가 이 나라를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는 환상에 가까운 구호에 불과하다. 그러한 환상을 사실인양 주입시키며 투표를 독려하는 것은 유권자들을 너무 우습게 보는 처사다 

 

동시에 이는 환상이면서도, 또한 엄중한 사실이기도 하다. 우리의 한 표가 때로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지난 대선에서도 우리는 우리의 한 표가 가진 엄청난 힘을 목격하지 않았나. 51%가 나머지 49%의 권력마저 송두리째 앗아가는 이 극히 불공정한 시스템에서는 그 한 표가 더욱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체험했다. 그리고 지금도 뼛속 깊이 체험 중이다 

 

결국 이렇게 생각한다. 정치를, 정치라는 놈의 정체를 알아 가면 갈수록, 또한 내가 가지고 있는 권리와 책임이, 내가 살고 있는 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확히 어떤 것이고, 내가 결코 부당하게 침해받거나 무시당하면 안 되는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 나는 이 사회에서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 등을 알아 가면 갈수록, 나의 한 표가 갖는 소중함 그리고 내가 참여해야 하는 이유를 자각하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가 아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다!’ ‘나에겐 권리가 있다로 변화될 것이고, 그 때 나는 전혀 다른 시민으로 거듭나게 된다 

 

세월호의 아픔과 눈물 속에 치러진 선거에서 여당 정치세력은 뻔뻔하게 표 앵벌이에 나선 바 있다.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는, 조선시대에나 나올 법한 개소리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그런 이들에게 다시금 정치적 권력을 안겨줬다. 솔직히 절망스러운 모습들이다. 분명 누군가는 이런 모습에서 더 이상 희망은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치는 정의가 반드시 승리하는 한 편의 멋진 영화도 드라마도 아니다. 수많은 인간들이 자신의 모든 능력을 총동원하여, ‘더러운 진흙탕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서바이벌 게임이다. 고상한 정의와 진리를 가지고 떠들고만 있다고 해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때문에 우리는 상대의 몰염치와 뻔뻔함을 욕하기 보다는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승리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최선이 아닌 차악을 선출하는 것이 투표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 곧 미니 총선이라는 재보궐 선거가 치러진다. 또 어떤 황당무계한 인간들이 어처구니 상실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등장하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 만빵이다. 그들은 씹고 비난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들의 영향력과 권력 속에서 나의 정치적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시민의 권리를 수호하며, 상식과 정의를 지켜나가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은 여정이다 

 

부부이자 인생의 동지인 두 저자가 만들어낸 첫 작품인 이 책은, 그야말로 꼼꼼하고 근면하다. ‘정치란 무엇인가?’에서 부록인 권리 찾기 매뉴얼에 이르기까지 목차만 살펴봐도 그 꼼꼼함에 감탄케 된다. 책을 읽어가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 많았는지, 뜻이 맞는 다른 이들과 이렇게 많은 일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은근 뿌듯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물뚝심송의 <정치가 밥 먹여 준다>와 함께 읽으면 더 괜찮을 듯. 우리는 생각보다 똑똑하다. 그리고 정치는 생각보다 재미있다. 어차피 우리가 평생 세금이라는 이름으로 배팅하고 있는 정치판. 조금 더 재미있게 즐겨보자. 난 좀 능력이 된다는 이들은 과감히 그 판에 뛰어들어 보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그 능력이 어떠한 능력이어야 한다는 판단은 개인 각자의 몫이다. 그리고 그 판단이 당신을 도둑놈멋진 정치인중 그 어떤 것으로 결정지을 것이다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귀환을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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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그려보는 통일의 꿈 - 남북연합방
오인동 지음 / 다트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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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특정 분야를 전담 취재 하다보면 나름 ‘그 바닥’의 생리를 터득하게 된다. 그리고 그 바닥의 주요 ‘선수’들의 면면도 알게 된다. 이를테면 대외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만, 내부적으로는 많은 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나, 반대로 그리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인품이나 내공, 열정이 대단한 분들을 얼추 파악하게 된다는 말씀. 정말 강호에는 숨은 고수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나의 특정 분야는 조금 특이하다고 볼 수 있다. 이 분야가 아직도 특이한 그것으로 취급받고 있다는 자체가 어찌 보면 비극이고, 또 난센스이지만. 바로 통일운동, 남북관계, 분단해소다. 이 분야에서 활동하는 운동가, 학자, 정치인, 기업인들을 10년 넘게 만나고 소개해 왔다.

 

온전히 우리의 의지가 아닌 타의에 의해 분단된 지 60년이 넘었음에도, 국민 대다수가 삶의 불편함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그리고 비정상을 정상으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사회. 물론 이를 모두 국민의 탓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다. 지금까지의 권력들이 분단을 해소하려는 노력보다는 이를 오히려 정권의 취약성을 감추는 도구로 악용했기 때문이다. 물론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다른 평가를 받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동안 참 많은 이들을 만났다. 인상 깊게 좋았던 분들도 많았고, 역시 아주 인상 깊게 혐오스러운(!) 이들도 있었다. 굳이 비율을 따지긴 싫다. 온전히 주관적인 판단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정말 많은 분들이 지긋지긋한 분단을 끝장내고, 이 땅에 온전한 평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헌신하고 있다는 사실은 꼭 강조해야겠다. 분단체제에 기생해 일신의 안위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몹쓸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이들이야말로 ‘민족 반역자’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런 민족반역자들의 권력에 맞서 지금도 통일을 외치는 이들이 존재함을 나는 매일매일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산다.

 

책의 저자인 오인동 박사도 ‘빛나는’ 분 중 한 분이시다. 자신이 가진 의술을 북녘 동포들을 위해 아낌없이 베풀고, 또한 자신의 현 위치(미국 국적)를 적절히 활용해 남과 북의 화해와 만남을 위해 헌신해 오셨다. 그동안 남북 모두 ‘분단 짓’을 실컷 해봤으니, 이제는 화해와 평화를 위한 ‘통일 짓’좀 하자며 목청을 돋우신다. 고령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매년 북한을 방문해 의술을 전수하고, 자신이 가져간 장비들을 몽땅 두고 몸만 돌아오신다. 그리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고, 대화하신다. 열린 마음으로 남과 북에게 통일을 이야기하신다. 부지런히 자신의 생각과 이론을 가다듬어 ‘코리아 통신’이란 이름으로 남과 북의 인사들에게 메일로 발송하신다. 자신의 주장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도 열린 마음으로 다가간다. 도대체 이게 무엇인가. 분단체제에 적응되어, 오로지 증오와 불신만을 가지고, 더 큰 숲을 보려 하지 않는 소수의 젊은이들보다 100배는 뜨거운 청춘이 아닌가!

 

이런 통일운동가를 만나게 된 것만 해도 큰 기쁨인데, 부족한 나의 인터뷰 기사를 무려 ‘잘 정리해 주셨다’는 평가를 해주셨고, 그렇게 오 박사님과의 인연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의 1쇄판과 개정판을 잊지 않고 보내주시는 친절도 함께 베풀어주셨다. 드린 것은 없는데, 받기만 하는 신세다.

 

책은 저자의 간절함과 열정, 부지런함과 냉철함이 모두 담겨 있다.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염원은 뜨거우나, 이를 위한 현실적인 방안을 이야기할 땐 누구보다 냉철하고 빈틈이 없다. 어떤 이들은 저자의 통일론에 대해 현실가능성이 없다고 단정 짓기도 하는데, 그렇게 비판하는 이들치고, 제대로 된 대안이나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말로만 통일을 떠들며, 기실 분단의 유지와 남북의 갈등을 방관하는 이들이다.

 

무려 놀랍고도 기쁘고도, 감사한 것은 저자를 인터뷰해 정리한 나의 기사를, 저자가 북을 방문하며 알게 된 인사에게 보여주셨다는 점이다.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한 글이라는 설명과 함께 말이다. 으아~! 나의 글이 본의 아니게 북녘 땅을 밟게 된 셈이다. 그리고 이 책에 기사를 함께 담았다. 그야말로 부끄러울 따름.

 

1992년 처음으로 북을 방문해 한반도 분단의 민낯을 처절히 목격한 저자는 북이 ‘고난의 행군’을 겪고 있던 1998년 다시 북을 찾게 된다. 그리고 2000년 6․15공동선언이 발표되자 남북이 이제야 ‘제대로’ 가고 있다는 마음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 이후에도 그는 미 행정부를 상대로, 남북의 당국을 상대로 끊임없이 ‘통일 짓’을 했다. 그리고 2008년 이후 해마다 북을 방문해 평양의과대학병원에서 인공관절수술을 전수하며 관절기 제작을 돕고 있다.

 

세계적인 정형외과 의사이자 또한 우리에겐 너무나 소중한 ‘통일 운동가’ 오인동 박사. 그의 열정은 여전히 뜨겁고, 여전히 청춘이다. 책은 그의 열정과 염원, 냉철한 이성과 뜨거운 가슴이 함께 녹아 있다. 그의 통일론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우리는 ‘통일 짓’을 곰곰이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지금처럼 늘 그렇게 건강하시고, 또한 변함없으시길 바란다. 한국을 찾으실 때마다, 늘 부족한 녀석에게 안부를 전해주시는 박사님에게, 이번엔 먼저 문안 인사를 드려야겠다. 그리고 여전히 부족한 나이지만, 그의 100분의 1만큼이라도 ‘통일 연습’ ‘통일 짓’에 동참해야겠다.

 

“남과 북, 모두 병든 다리를 갖고 있습니다. 다리 치료하는 이 정형외과 의사의 말입니다. 한 발로 서자니 불안정하고 자신이 없습니다. 남과 북이 한 발씩 균형을 잡고 서면 모국의 앞날이 창창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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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1
알베르 까뮈 지음, 이휘영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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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나약한 딱 그만큼 오만하다. 논리, 정의, 상식, 진리라는 모래성을 쌓아두고, 그것이 언제라도 무너질까 노심초사한다. 하지만 정확히, 스스로 말하는, 스스로 외치는, 진리, 논리, 상식은 도대체 무엇인가.

 

세상은 인간을 고려하지 않는다. 인간을 의식하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세상을 해석하려 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려 한다. 하지만 그런 인간의 노력으로 인해 정말 세상이 변화하는가. 혹은 변화해 왔는가. 어떤 것이 변화이고, 어떤 것이 불변인가.

 

카뮈의 반항부조리는 그가 <이방인>을 세상에 내놓은 1942,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강력하다. 뫼르소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어쩌면 영원히 지겨운 부조리와 조우해야 할 것이고, 카뮈의 말을 빌리자면 의식이 졸고 있는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지도 모른다.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명확히 인식하는 것, 그것을 카뮈는 인간의 존엄성이라 말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합리의 욕망과 이를 자연스레 부정하는 세계의 몰합리’, 카뮈에게 반항이란 이런 부조리의 모순을 해소하려 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삶을 긍정하는 태도 그 자체를 말한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지만, 최근 어느 출판사에서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라는 도발적인 카피를 내걸고, 기존 역서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며, 또 다른 <이방인>이 출판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책은 순식간에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솔직히 무지한 나로서는 과연 그 책이 기존 역서와 비교할 때, 얼마나 획기적으로 다른지, 또한 기존의 역서들이 그렇게 형편없는 수준이었는지 가늠하지 못한다. 내가 읽은 <이방인>도 그렇게 따지자면 카뮈의 <이방인>이 아닌 셈이다. 하지만 난 충분히 감동을 받았고, 온전히는 아니더라도 강렬한 태양을 느낄 수 있었다.

 

오히려 이번 소동이 나에겐 또 하나의 부조리로 다가왔다. 자본이라는 이름으로, 경쟁이라는 속박으로 빚어진 그냥 하나의 모순일 뿐이었다. 누굴 탓하고 비난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냥 그렇게 서로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그리고 도발적인 문구에 혹해 책을 사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하찮은 일은 아니었겠지만, 나에게 결국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의식의 단절, 불통은 필연적으로 인간을 소외시키고, 절망케 만든다. 나의 몸짓이 타인에게 아무런 의미도 전해주지 못할 때, 인간은 철저히 무너진다. 그리고 그러한 단절의 확장과 연속 속에, 점점 인간의 모든 행위는 무가치한 것으로 간주된다.

 

여기에 인간은 끊임없이 반항해왔다. 그리고 이제는 그 정도를 넘어 끊임없이 자신을 타인에 노출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스스로 자신의 모든 것을 세상에 노출시킨다. 스스로 타인에게 감시받고, 통제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것을 자유라고 믿는다.

 

뫼르소는 사형 집행 전날 밤, “세계의 다정스러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세계가 나와 다름없고 형제 같음을 느끼며 나는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외롭지 않았다.

 

수많은 아이들이 허무하게 죽어간 후 치러진 선거에서 많은 이들은 여전히, 또한 지극히 당연하게 자신의 기준에 따라 투표를 했거나 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죽음에 적지 않은 책임을 져야 할 이들에게 역시 적지 않은 표를 던졌다. 여기에서 느낀 당혹감을 모순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혹감을 느끼고 있는 내가 당혹스럽지는 않았다. 나의 당혹감, 또는 약간의 분노는 지극히 자연스러웠고, 나는 거기에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았다.

 

카뮈의 작품을 통속적인 허무주의로 평가하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은 그것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허무는 이제 이 사회에서 그리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어느 새 우리는 고독과 허무 따위에 흔들리지 않는 빈틈없는 사람들로 대접받고 있다. 역시 그 사이에 졸고 있는 의식을 깨울 생각도 하지 않는다.

 

달라지는 것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인간은 외롭다. 끊임없이 중얼거리다 보면 무언가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도 이젠 통속적이다. 세월호의 상처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도 못한 채, 우리는 그렇게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며, 사람들과 웃고 떠들고, 또한 잔인한 행동을 정당화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아름다운 부조리에 대한 우리들의 아름다운 반항이다.

 

달라지는 것이 없다고 생각될 때 분노할 수 있는 힘, 의식, 자각, 깨달음. 그 모든 것이 하찮고 버겁게 느껴질 때, 어쩜 그 때 우리는 비로소 방아쇠를 당길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뜨거운 태양을 너무 오랫동안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 마지막으로 나에게 증오의 함성으로 다가와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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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변변한 취미 하나 없는 이들이 꼭 취미가 뭐냐 물으면 독서라고 대답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내 취미는 독서다. 물론 변변한 여타 취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취미가 반드시 1인당 하나일 이유는 없다. 난 독서 외에도 나름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변변치 못한 녀석이 아니다!

 

사실 요즘처럼 취미 생활에 적잖은 돈이 들어가는 시대에, 독서만큼 수지맞는, 알뜰한 취미생활도 없지 싶다. 물론 애서가, 장서가 수준으로 내공이 오른다면, 그때는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애서가, 장서가의 수준에는 감히 범접할 수 없지만, 나 역시 유일하게 충동구매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적당히 자제하며, 현명한 독서를 한다면, 독서라는 취미는 알뜰하게 영혼을 살찌울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취미생활임이 분명하다. 과거에 비해 공공도서관도 꽤 늘었고, 한 달에 몇 권의 책 정도는 분명 사치는 아닐 것이다.

 

세상의 모든 책을 읽어주마! 라는 실현 불가능한 꿈을 이루기 위해 잠시 어리석게 행동한 적이 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책이 많이 생기게 되었고, 활자 중독 수준의 병적인 습관으로 그 책들을 모조리 읽겠다고 허풍을 떤 것이다. 하지만 지극히 당연히,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금도 고맙게도, 책을 보내주는 이들이 있다. 물론 출판사들의 입장에서는 홍보의 차원에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행하는 투자일 것이다. 제법 책을 읽는다는 녀석들에게 책을 공짜로 보내주고, 그럼 미안한 맘에서라도 책에 대해 제법 그럴듯한 평을 해줄 것이라는 계산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나는 형편없는 투자 대상임이 분명하다. 먼저, 일단 책은 발간되었을 때 집중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요즘처럼 다양한 분야의 많은 책들이 쏟아지는 시대에, 신간은 곧 구간이 되어버린다. 때문에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그 책을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배은망덕하게도 나는, 신간이라고 바로 읽고 소개할만한 근면함이 없다. 게다가 내가 구입한, 혹은 받게 된 순서대로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아주 사소한 원칙을 지키려 노력한다. 가끔 꽤 흥미로운 주제의 책이나,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순서를 어기며 독서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가끔일 뿐이다. 대부분 순서대로 차근차근 읽어나갔다. 게다가 책의 내용이 형편없다면, 거저 받았던 구입했든 좀 심하게 비난하기도 한다. 미안하게도.

 

결국 출판사의 입장에서 보자면, 초반 홍보의 면에서 난 영 쓸모없는 녀석인 것이다. 하지만 내 나름대로의 변명도 있다. 정말 좋은 책이라면, 굳이 떠들썩한 홍보가 없이도, 분명 눈이 밝은 독자들에게 인정받을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 이렇게 말한다고 나의 게으름이 덮어지진 않겠지만 말이다.

 

지식소매상 유시민의 책은 그 순서를 어겨가며 읽는 책 중 하나이다. 이 책은 구입 후 한참동안 숙성시킨 경우이지만, 일단 그가 쓴 글은 적어도, 재미없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대부분 그 믿음은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나름 책을 취미라고 부를 만큼, 어설픈 애서가 흉내를 내는 나에게, 가장 영향을 미친 책들이 무엇이냐 물으면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책을 읽으며 성장했으며, 어떤 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을까. 갑자기 물어보면, 순간 답하기 어려울 듯하다. 판에 박힌 빤한 대답도 있겠지만, 솔직히 말해야 한다면 고민 좀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참고로 난 대학 면접 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무어냐는 질문에 그리 망설이지 않고,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슬램덩크>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그다지 궁금해 하지도 않으면서 묻는 것 같아 짜증도 있었고, 솔직히 슬램덩크 만한 명작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쾌한 저자는 역시 명쾌하게 14권의 책을 청춘에게 소개한다. 하나같이 무게감으로 따진다면, 헤비급에 해당하는 책들이다. 다소 따분하면서도 공포스럽게 두꺼운 책도 있고, 내 경험에 비춰본다면 한 두 페이지를 넘기는 데 하루 이상이 걸린 무지하게 어려운 책도 있다.

 

누구에게나 기억에 남는 책이 있다. 그리고 아주 정확하게는 아니겠지만,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 구절이 있다. 그 구절은 무의식중에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때론 나도 모르는 사이 인생의 커다란 선택의 기로에서, 어떠한 선택 하나로 이끌어주기도 한다. 여기에서 다시 말해야겠다. 독서는 알뜰한 취미이자, 매우 신중하게 선택해야 할 일생의 취미이기도 하다.

 

같은 책도 누가 읽느냐에 전혀 다른 영향을 미치고, 다른 평가를 받는다. 어떤 이에겐 <자본론>세상을 전쟁과 기아로 몰고 간 광기의 책일 수도 있고, 다른 이에겐 자본주의 어둠을 밝힌, 인류 역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고전일 수 있는 까닭이다. 그것이 바로 독서의 치명적인 매력이자 힘일 것이다.

 

14권의 책은 정치인, 민주화 운동가, 방송인 유시민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들이다. 젊은 시절, 정의에 대한 뜨거운 목마름을 불러일으킨 책도 있고, 인류 역사의 진보에 대한 굳은 믿음을 전해준 책도 있다. 또한 세상을 조금은 다른 눈으로, 다른 각도로 바라보게 도와준 책도 있었다.

 

다시 나를 돌아본다. 나에게 그런 책들은 무엇이 있었을까. 나는 과연 그런 책들을 언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어떤 책이 나에게 양서이며, 어떤 책이 금서가 될 것인가. 그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여전히 어렵고, 여전히 어리석다. 하지만 유시민과 같은 친절한 선배들이 있기에 나의 독서는 앞으로도 더 즐겁고, 유쾌한 모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나 역시 나만의 삶의 지도를 만들어준 책들을 다시 한 번 찾아봐야겠다는, 그리고 그것을 소중히 갈무리해, 언젠가 신중히 책을 집어들 딸아이에게 슬며시 권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위대한 책,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은 대부분 이 세상이, 수많은 독자들이 그리고 거기에 권력이 결정하곤 한다. 물론 각각 모두 타당한 이유와 어쩔 수 없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 하나, 내 인생의 책은 바로 내가 선택한다는 점이다. 나에게 좋은 책은 오로지 내가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찰나와 같은 인생, 부디 좋은 책을 만나 행복하시라. 그리고 영혼을 더욱 풍요롭게 하시라.

 

그런데 이 책에 소개된 책들을 꼭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과연 나의 선택인가, 무의식의 강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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