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 ㅣ 도시생활자의 백서
하승우.유해정 지음 / 북하우스 / 2010년 5월
평점 :
이번 6․4지방선거에서 내 나름대로 정리한 체크 포인트. 우선, 그리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생애 최초로 집단 ‘표 앵벌이(!)’ 정치인들의 출몰을 목격할 수 있었다는 점. 급하긴 엄청 급했던 게지. 또한 역시 옛말 틀린 게 하나 없다고 ‘수신제가’가 먼저 이뤄지지 않으면, 이번처럼 ‘캔디 어택’으로 한 방에 훅 가거나, 똘똘한 아들 덕택에 ‘즙’을 흘려야 한다는 점. 참 많은 이들의 ‘오열 코스프레’를 감상해야만 했던 선거였다. 아, 고승덕 후보의 숨겨진 ‘헤비 메틀 스피릿’을 발견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겠다. 그의 불후의 명곡 <애비 메탈>은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름대로 중요하게 느낀 점 하나. 정치에 대해 불신을 가지고, 무관심해지면 질수록 결국 ‘그 놈이 그 놈’ ‘다 도둑놈들’이라는 정치인 중 제일 ‘큰 도둑놈’이 우리를 지배하게 된다는 점이다. 사전투표제를 처음으로 도입했음에도 예상보다 투표율이 저조했다는 점은, 향후 정치권과 우리 모두가 고민하고 반성해야 할 부분. 물론 진보 교육감들의 대거 당선으로 작은 희망의 불씨를 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았지만.
사실, ‘톡’ 까놓고 이야기하자면, 아니 그냥 까놓지 않고 말해도 모두가 알고 있듯, 우리 국민들은 정치에 절대 무관심하지 않다. 오히려 인간적으로, 늘 ‘정치 과잉’ 상태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다. 매일 매일 정치인들과 그들이 벌이는 어처구니 상실 퍼포먼스에 관심을 가지고 분석 및 평가하고, 씹고, 까지 않는가! 내 미천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어딜 가도 우리나라 택시 기사님들과 같은 정치적 내공과 탁월한 분석력, 강한 이념적 열정, 깨알 같은 정치비화 지식을 갖춘 이들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 장담한다! 코리언은 분명 ‘정치적 동물’인 것이다. 정치가 없다면, 아마도 전국의 모든 주점들은 문을 닫아야만 할 것이다. 역사상 유일무이한 우주 최강 안주가 사라질 테니.
그러면 우리는 왜 이렇게 정치에 많은 관심을 갖고 살아가면서도 정작 ‘참여’에 있어서는 그 반만큼의 열정이라도 보이지 않는 것일까. 이는 물론 간단히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다. 하나의 정답도, 설명도 불가능하다. 예전부터 정치로 인해, 정치 주도 세력의 변화로 인해 자신의 개인적 삶이 단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음을 기억하는 이들의 ‘자포자기’ ‘체념’의 발로일 수도 있고, 그 반대로 정치적 변화로 인해 커다란 고통과 상처를 받았던 이들의 ‘피해의식’이 쌓인 결과일 수도 있다. 정치인은, 정치하는 것들은 죄다 도둑놈들이고 나쁜 놈이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나와는 다른 특별한 존재이기에, 함부로 할 수 없는 이들이라는 모순적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라는 포기 혹은 체념의 심리가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살며시 생각해본다. 사실 나의 한 표가 우리 마을을, 우리 구를, 우리 시와 도와 나아가 이 나라를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는 ‘환상’에 가까운 구호에 불과하다. 그러한 환상을 사실인양 주입시키며 투표를 독려하는 것은 유권자들을 너무 우습게 보는 처사다.
동시에 이는 환상이면서도, 또한 엄중한 사실이기도 하다. 우리의 한 표가 때로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지난 대선에서도 우리는 우리의 한 표가 가진 엄청난 힘을 목격하지 않았나. 51%가 나머지 49%의 권력마저 송두리째 앗아가는 이 극히 불공정한 시스템에서는 그 한 표가 더욱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체험했다. 그리고 지금도 뼛속 깊이 체험 중이다.
결국 이렇게 생각한다. 정치를, 정치라는 놈의 정체를 알아 가면 갈수록, 또한 내가 가지고 있는 권리와 책임이, 내가 살고 있는 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확히 어떤 것이고, 내가 결코 부당하게 침해받거나 무시당하면 안 되는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 나는 이 사회에서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 등을 알아 가면 갈수록, 나의 한 표가 갖는 소중함 그리고 내가 ‘참여’해야 하는 이유를 자각하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가 아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다!’ ‘나에겐 권리가 있다’로 변화될 것이고, 그 때 나는 전혀 다른 시민으로 거듭나게 된다.
세월호의 아픔과 눈물 속에 치러진 선거에서 여당 정치세력은 뻔뻔하게 표 앵벌이에 나선 바 있다.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는, 조선시대에나 나올 법한 개소리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그런 이들에게 다시금 정치적 권력을 안겨줬다. 솔직히 절망스러운 모습들이다. 분명 누군가는 이런 모습에서 더 이상 희망은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치는 정의가 반드시 승리하는 한 편의 멋진 영화도 드라마도 아니다. 수많은 인간들이 자신의 모든 능력을 총동원하여, ‘더러운 진흙탕’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서바이벌 게임이다. 고상한 정의와 진리를 가지고 떠들고만 있다고 해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때문에 우리는 상대의 몰염치와 뻔뻔함을 욕하기 보다는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승리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최선이 아닌 차악을 선출하는 것이 투표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 곧 미니 총선이라는 재보궐 선거가 치러진다. 또 어떤 황당무계한 인간들이 어처구니 상실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등장하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 만빵이다. 그들은 씹고 비난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들의 영향력과 권력 속에서 나의 정치적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시민의 권리를 수호하며, 상식과 정의를 지켜나가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은 여정이다.
부부이자 인생의 동지인 두 저자가 만들어낸 첫 작품인 이 책은, 그야말로 꼼꼼하고 근면하다. ‘정치란 무엇인가?’에서 부록인 ‘권리 찾기 매뉴얼’에 이르기까지 목차만 살펴봐도 그 꼼꼼함에 감탄케 된다. 책을 읽어가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 많았는지, 뜻이 맞는 다른 이들과 이렇게 많은 일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은근 뿌듯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물뚝심송의 <정치가 밥 먹여 준다>와 함께 읽으면 더 괜찮을 듯. 우리는 생각보다 똑똑하다. 그리고 정치는 생각보다 재미있다. 어차피 우리가 평생 ‘세금’이라는 이름으로 배팅하고 있는 정치판. 조금 더 재미있게 즐겨보자. 난 좀 능력이 된다는 이들은 과감히 그 판에 뛰어들어 보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그 능력이 ‘어떠한 능력’이어야 한다는 판단은 개인 각자의 몫이다. 그리고 그 판단이 당신을 ‘도둑놈’과 ‘멋진 정치인’ 중 그 어떤 것으로 결정지을 것이다.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귀환을 기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