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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그려보는 통일의 꿈 - 남북연합방
오인동 지음 / 다트앤 / 2013년 9월
평점 :
오랫동안 특정 분야를 전담 취재 하다보면 나름 ‘그 바닥’의 생리를 터득하게 된다. 그리고 그 바닥의 주요 ‘선수’들의 면면도 알게 된다. 이를테면 대외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만, 내부적으로는 많은 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나, 반대로 그리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인품이나 내공, 열정이 대단한 분들을 얼추 파악하게 된다는 말씀. 정말 강호에는 숨은 고수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나의 특정 분야는 조금 특이하다고 볼 수 있다. 이 분야가 아직도 특이한 그것으로 취급받고 있다는 자체가 어찌 보면 비극이고, 또 난센스이지만. 바로 통일운동, 남북관계, 분단해소다. 이 분야에서 활동하는 운동가, 학자, 정치인, 기업인들을 10년 넘게 만나고 소개해 왔다.
온전히 우리의 의지가 아닌 타의에 의해 분단된 지 60년이 넘었음에도, 국민 대다수가 삶의 불편함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그리고 비정상을 정상으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사회. 물론 이를 모두 국민의 탓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다. 지금까지의 권력들이 분단을 해소하려는 노력보다는 이를 오히려 정권의 취약성을 감추는 도구로 악용했기 때문이다. 물론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다른 평가를 받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동안 참 많은 이들을 만났다. 인상 깊게 좋았던 분들도 많았고, 역시 아주 인상 깊게 혐오스러운(!) 이들도 있었다. 굳이 비율을 따지긴 싫다. 온전히 주관적인 판단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정말 많은 분들이 지긋지긋한 분단을 끝장내고, 이 땅에 온전한 평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헌신하고 있다는 사실은 꼭 강조해야겠다. 분단체제에 기생해 일신의 안위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몹쓸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이들이야말로 ‘민족 반역자’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런 민족반역자들의 권력에 맞서 지금도 통일을 외치는 이들이 존재함을 나는 매일매일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산다.
책의 저자인 오인동 박사도 ‘빛나는’ 분 중 한 분이시다. 자신이 가진 의술을 북녘 동포들을 위해 아낌없이 베풀고, 또한 자신의 현 위치(미국 국적)를 적절히 활용해 남과 북의 화해와 만남을 위해 헌신해 오셨다. 그동안 남북 모두 ‘분단 짓’을 실컷 해봤으니, 이제는 화해와 평화를 위한 ‘통일 짓’좀 하자며 목청을 돋우신다. 고령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매년 북한을 방문해 의술을 전수하고, 자신이 가져간 장비들을 몽땅 두고 몸만 돌아오신다. 그리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고, 대화하신다. 열린 마음으로 남과 북에게 통일을 이야기하신다. 부지런히 자신의 생각과 이론을 가다듬어 ‘코리아 통신’이란 이름으로 남과 북의 인사들에게 메일로 발송하신다. 자신의 주장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도 열린 마음으로 다가간다. 도대체 이게 무엇인가. 분단체제에 적응되어, 오로지 증오와 불신만을 가지고, 더 큰 숲을 보려 하지 않는 소수의 젊은이들보다 100배는 뜨거운 청춘이 아닌가!
이런 통일운동가를 만나게 된 것만 해도 큰 기쁨인데, 부족한 나의 인터뷰 기사를 무려 ‘잘 정리해 주셨다’는 평가를 해주셨고, 그렇게 오 박사님과의 인연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의 1쇄판과 개정판을 잊지 않고 보내주시는 친절도 함께 베풀어주셨다. 드린 것은 없는데, 받기만 하는 신세다.
책은 저자의 간절함과 열정, 부지런함과 냉철함이 모두 담겨 있다.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염원은 뜨거우나, 이를 위한 현실적인 방안을 이야기할 땐 누구보다 냉철하고 빈틈이 없다. 어떤 이들은 저자의 통일론에 대해 현실가능성이 없다고 단정 짓기도 하는데, 그렇게 비판하는 이들치고, 제대로 된 대안이나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말로만 통일을 떠들며, 기실 분단의 유지와 남북의 갈등을 방관하는 이들이다.
무려 놀랍고도 기쁘고도, 감사한 것은 저자를 인터뷰해 정리한 나의 기사를, 저자가 북을 방문하며 알게 된 인사에게 보여주셨다는 점이다.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한 글이라는 설명과 함께 말이다. 으아~! 나의 글이 본의 아니게 북녘 땅을 밟게 된 셈이다. 그리고 이 책에 기사를 함께 담았다. 그야말로 부끄러울 따름.
1992년 처음으로 북을 방문해 한반도 분단의 민낯을 처절히 목격한 저자는 북이 ‘고난의 행군’을 겪고 있던 1998년 다시 북을 찾게 된다. 그리고 2000년 6․15공동선언이 발표되자 남북이 이제야 ‘제대로’ 가고 있다는 마음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 이후에도 그는 미 행정부를 상대로, 남북의 당국을 상대로 끊임없이 ‘통일 짓’을 했다. 그리고 2008년 이후 해마다 북을 방문해 평양의과대학병원에서 인공관절수술을 전수하며 관절기 제작을 돕고 있다.
세계적인 정형외과 의사이자 또한 우리에겐 너무나 소중한 ‘통일 운동가’ 오인동 박사. 그의 열정은 여전히 뜨겁고, 여전히 청춘이다. 책은 그의 열정과 염원, 냉철한 이성과 뜨거운 가슴이 함께 녹아 있다. 그의 통일론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우리는 ‘통일 짓’을 곰곰이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지금처럼 늘 그렇게 건강하시고, 또한 변함없으시길 바란다. 한국을 찾으실 때마다, 늘 부족한 녀석에게 안부를 전해주시는 박사님에게, 이번엔 먼저 문안 인사를 드려야겠다. 그리고 여전히 부족한 나이지만, 그의 100분의 1만큼이라도 ‘통일 연습’ ‘통일 짓’에 동참해야겠다.
“남과 북, 모두 병든 다리를 갖고 있습니다. 다리 치료하는 이 정형외과 의사의 말입니다. 한 발로 서자니 불안정하고 자신이 없습니다. 남과 북이 한 발씩 균형을 잡고 서면 모국의 앞날이 창창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