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절밥 한 그릇 - 우리 시대 작가 49인이 차린 평온하고 따뜻한 마음의 밥상
성석제 외 지음 / 뜨란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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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2학년, 한 학기를 마치고 그 해 겨울 입대했다. 그리고 맞이한 군대에서의 첫 여름, 특히 군대에서 졸병의 여름은 머리꼭지에서 김이 푹푹 날만큼 무척이나 더웠다.

 

나름 요령피우지 않고 착실한 졸병 생활을 보내던 나는, 부대에서 나오는 잔반(음식 쓰레기) 처리를 맡아 하시는 농장 아저씨의 논으로 이른 바 대민 지원을 자주 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중대 최고의 권력을 쥐고 있는 행정보급관님(계급 상 중대장이 말 그대로 중대의 장이지만, 군대의 현실은 사실 조금 다르다)과 그 아저씨의 친분이 돈독하여 이뤄진 대민 지원이었다.

 

,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거창하게 커넥션이나 비리 따위로 비난할 것도 아니다. 잔반은 어차피 처리해야 했고, 논이든 그보다 더한 지옥’(!)이든 우리들은 부대 밖으로 나가고 싶어 했으니.

 

주 임무는 모내기였는데, 지원을 나간 이들 중 막내였기에 그 곳에서도 나는 요령 같은 것은 피울 재간이 없었다. 그냥 시키는 대로 논바닥에 얼굴을 들이밀고 폭폭찔러 넣기를 반복할 수밖에.

 

나의 근면함(!) 덕분에 농장 아저씨에게 훌륭한 평가를 받게 된 나는, 단지 부대 밖으로 나간다는 이유만으로 부대원 모두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여름 대민지원의 전담 요원이 되다시피 했다. 문제는 내가 이른 바 짬밥이 차 굳이 부대 밖이 그립지 않을 때에도, 즉 그 다음 해 여름에도 자주 대민지원을 나가야 했다는 것이지만. 뭐 암튼.

 

무엇보다 대민지원의 하이라이트는 일 수밖에 없었다. 점심시간, 농장 아주머니께서 직접 차려준 밥상을 받아들고, 논두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LTE급 속도로 사제 밥(!)을 먹어치웠던 기억. 풋고추와 된장, ‘사제 김치와 가끔씩 나오던 돼지보쌈, 그리고 막걸리 한 사발.

 

하늘은 몸살 나게 푸르렀고, 달게 배부른 우리들은 그토록 젊음에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이 책은 우리 시대 작가 49인이 써내려간 밥의 찬가이다. 찬찬히 읽다보면 문득 내 인생의 밥 한 끼는 언제 였던가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 밥 한 끼가 얼마나 나를 위로했던가, 아련해진다.

 

시인 김사인은 책에서 밥을 모신다고 표현했다. 밥의 소중함이 점점 잊히는 지금, 각자의 소중한 한 끼 밥상을 모셔보는것은 어떨까.

 

? 물론 내 인생의 찬란한 밥 한 그릇은 작대기 두 개 달고, 논바닥에 앉아 허겁지겁 먹어치우던, 그 여름의 밥이었다. 막걸리 한 잔 들이 키고, 대자로 누워 바라본 그 하늘의 눈부신 푸르름을 어찌 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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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 양장본
마크 해던 지음, 유은영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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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위험한 이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이기적인 행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 또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떠밀 듯 주기도 하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린 모두, 자신이 현명하다고, 또는 이 더러운 세상 속에서 오직 유일하게 정신이 말짱하다고 믿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지나친 이들은, 때문에 때때로 무모한 행동을 서슴없이 저지르기도 한다. 그렇게 불안하고 완벽하지 못한 존재가 바로 우리다.

 

어차피 삶의 해답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딱 그 수만큼 해답과 오답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결국 우리의 상황에 맞게 해답을 만들어내고, 또 오답 앞에 머뭇거린다. 때문에 겸손과 신중함이 필요하다. 해답의 강요는 또 다른 지독한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의 주인공 크리스토퍼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열다섯 소년이다. 흔히 말하는 평범함과는 거리가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두려워하고, 누군가 자신의 몸에 손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반면 수학과 물리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병으로 엄마를 잃은 크리스토퍼는 영국의 작은 마을 스윈던에서 수리공인 아빠와 단 둘이 살아간다. 무뚝뚝한 아빠는 때론 거친 말투로 크리스토퍼를 두렵게 만들기도 하지만, 남들과 조금은 다른 아들을 한없이 사랑하는, 평범한 가장일 뿐이다.

 

크리스토퍼는 어느 날 밤, 이웃집 개 웰링턴이 쇠스랑에 찔려 죽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어쩌면 사람보다 동물에게 더 편안함을 느끼곤 했던 크리스토퍼는 웰링턴의 죽음을 파헤치기로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명탐정 셜록 홈즈와 같이 두뇌 수사에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수사는 생각보다 수월치 않다. 아빠는 개의 죽음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도 캐지도 말라고 화를 내고, 웰링턴의 주인이었던 옆집 아주머니는 크리스토퍼의 접근 자체를 거부하며, 역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런 와중에도 나름 차근차근 수사를 진행하는 크리스토퍼. 하지만 차츰 진실에 다가가려 할수록, 의외의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크리스토퍼는 웰링턴의 죽음에, 다름 아닌 돌아가신 어머니의 비밀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난생처음 스윈던을 벗어나는 커다란 모험을 결심하게 된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는 크리스토퍼의 장애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려는 이들도 있지만, 차갑게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이들도 있다. 상대의 장애를 이해하려하기 보다는 외면 혹은 무시하는 것이다. 크리스토퍼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잠재력, 재능, 꿈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그저 정신이 아픈아이 정도로 치부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런 차별과 무관심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크리스토퍼는 더더욱 움츠려 들 수밖에 없다.

 

작품은 성장소설에 추리소설 적인 요소를 가미해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그리고 크리스토퍼의 눈으로 세상을 함께 바라보며, 우리가 흔히 지나치기 쉬운 문제들을 끄집어낸다. 크리스토퍼의 유머러스한 문체에 미소가 나오다가도, 슬픈 이 세상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조금은 슬퍼지기도 한다.

 

만해 한용운 선생은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라 말한 바 있다. 그렇담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무지하게 게으른 셈이 된다. 그렇게 바쁘게 뛰어다니고, 어디론가 향하지만 결국 그 뒤엔 공허함만이 남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게으르기 위해 어쩌면 더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삶은 생각하기에 따라 참 간단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수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우주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니, 꽤 복잡하고 한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때로는 어처구니없게 간단해 보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내 삶을 요약하라면, 과연 난 얼마나 오래 길게 써내려갈 수 있을까. 할 말이 그렇게 많을까.

 

소박한 꿈을 가지고,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아가던 이들이 어느 날 헤어 나올 수 없는 고통에 빠지게 되고, 세상으로부터, 타인들로부터 상처를 받게 된다. 그리고 고통보다 더한 외면, 무관심이라는 상처로 아파한다. 하지만 정녕 우리가 그렇게 타인을 아프게 하면서까지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나의 생존을 위해? 아니면 행복을 위해? 나의 우주와 의 우주를 과연 차별하고 구분 지을 권리가 있을까.

 

아픔이 많은 세상이다. 초라한 인간이 어찌 할 도리가 없는 세상이지만, 문득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하게 되고, 또한 나 혼자만이 아닌 수많은 누군가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음이 눈물겹게 고맙다. 크리스토퍼의 인생과 나의 인생 중 어느 것이 더 가치 있고 소중하다고 판단할 수 없는 것처럼, 그렇게 나도 누군가를 함부로 판단하고 함부로 결정짓지 말아야 하리라.

 

그냥 한없이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여러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이다.

 

나는 소수가 인생과 같다고 생각한다. 소수들은 매우 논리적이지만, 당신이 한평생 생각하더라도 소수가 만들어지는 규칙은 절대 알아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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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라 강귀들아
김형진 지음 / MAY(메이문화산업연구원)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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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보통은 솔직한 것이 미덕이지만, 때론 솔직함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때가 있다. 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해도 결과적으로 상대방이 상처를 받게 된다면, 당사자로서는 참 난감할 따름이다. 하지만 어쩌랴, 그 순간 솔직함이 최선이라 생각했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의 솔직한 나의 심정을 말하자면, 살짝 촌스럽다는 느낌? 표지의 삽화가 너무 노골적(!)이라, 그리고 제목 자체가 너무 강해서(첨 보았을 때는 무슨 귀신들이 등장하는 책인 줄!)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았음을 고백해야겠다. 표지를 디자인하신 분에겐 너무 너무 죄송하지만, 그래도 제 맘을 숨길 순 없었어요.

 

하지만 역시 사람이나 그 무엇이나 겉만 보고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되는 법. 책을 읽어가며, 몇 번이나 나의 첫인상을 반성 또 반성했다는 점을 강조 한 번 해야겠다. 책은 나쁘지 않았다. 전혀.

 

최근 세월호 참사, 군대 내 폭행 사망사건 등 가슴을 후벼 파는 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니, 앵그리 맘들의 집단 엑소더스(이민)를 우려하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이 더럽고 무서운 나라에서 내 아이를 더 이상 키울 수 없다는 분노와 두려움이 겹쳐 발생하는 현상이다. , 지금 같은 나라꼴에서 엄마들을 뭐라고 할 수도 없다.

 

도대체가 대통령이 말한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었을까. 비정상을 정상적인 것으로 만들겠다는 말이 아니라, 비정상을 정상인 것처럼 둔갑시키겠다는 말이었을까?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어쩐지 후자 쪽에 강하게 무게감이 쏠린다. 당최 정상인 것이 하나도 없으니 말이다.

 

저자는 1%의 특권층, 지배계층이 나머지 99%의 민중을 어떻게 착취하고 탄압하고 있는지 조목조목 꼬집는다. 하물며 나와 같은 99.999%에 밑도는 이마저 따끔한 고통을 느낄 정도니, 1% 분들이 이 책을 읽으시면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 엄습하리라.

 

언뜻 저자가 말하는 강귀, 강남귀족이라는 표현에서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강남에 살고 있는 나름 선량한 이들은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요즘 소위 잘 산다는 이들은 강남에서 살지 않는다는(!) 반박도 가능할 것이다. 그럼 어디에 살지? 난 도통 모르겠어요.

 

이 책은 일방적으로 있는 자들’ ‘권력자들을 비판하고 있지 않다. 따지고 또 따지다보면 결국 이 사회가 이렇게 뒤틀린 데에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일정 부분 있지 않는가. 우리는 어찌되었든,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고, 우리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소수의 권력집단을 우리 손으로 선출해오고 있지 않나. 그러니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위해 힘없는 이들을 탄압하고 착취할 수 있도록 만든 책임은 결정적으로 우리에게 있는 셈이다.

 

곧 서평을 올리겠지만,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를 보면 국가를 망치는 정치인 못지않게 그들을 선출한 국민들의 죄악 역시 무지하게 무겁다고 대놓고 욕하신다. , 요즘 돌아가는 꼴을 보자면, 우리 역시 이 욕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 같다. 싸다, 욕먹어도.

 

책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을 하나하나 소개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어느 개인, 어느 슈퍼 영웅의 등장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당연하죠! 세상에 그런 영웅이나 슈퍼맨은 헐리우드에만 있는 걸요? 게다가 그런 영웅들은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라 코리아엔 관심이 없답니다.

 

비단 강귀(강남귀족)라 불리는 특권층에게만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책의 미덕일 것이다. 결국 우리 스스로 남 욕만 할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우쳐 주고 있기 때문에 책은 유치찬란(으악! 죄송해요. 너무 솔직해도 민폐야!)한 표지 디자인을 만회하고도 아주 많이 남는다.

 

많은 이들이 또 다시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돈이 없고 권력이 없는 이들에겐, 도대체가 젠장맞을 좋은 세상은 언제나 올까. 하지만 이 빌어먹을 세상 앞에 그냥 내가 뭔 힘이 있다고하며 체념하는 것 역시 자세가 나오지 않는다. 창피하다. 심히.

 

항상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말자고 생각하며 산다. 분에 넘치게 어여쁜 딸을 얻은 뒤에는 딸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자고 또 다짐한다. 뭐 말이 쉽지 현실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부끄러운 행동을 하면서도, 적어도 머리 안에서는 이러한 결심이 열심히 좌뇌와 우뇌를 왕복 중이다.

 

일터가 광화문이다. 상상이 가시죠? 세월호 특별법을 요구하며 유민이 아버님이 목숨을 걸고 단식 중이시고, 그 옆을 가수 김장훈이 지키고 있다. 젠장, 이런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보면서 난 그깟 월급 받아먹겠다고 매일 다람쥐처럼 출근한다.

 

그래, 밥벌이의 위대함을 꿋꿋이 믿는다. 하지만 차마 아픔을 외면할 수 없는 이 거지같은 세상에서, 그래도 수많은 유민이 아빠들과 함께 살아갈 것이라는 각오 역시 간직하고 싶다.

 

정부는 될 수 있음 국민들이 멍청하고, 한심하고, 고분고분 말 잘 듣고, 세금 잘 내고 등등 그러길 바란다. 얼마나 좋아, 말 잘 들으면! 그리고 그렇게 말을 잘 듣지 않는 이들에겐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철저히 짓밟는다. 주변에서 많이 보셨죠? 특히나 전 정부와 현 정부에서 말이죠.

 

때문에 더더욱 우리는 도대체가 뭐가 이 사회를 좀먹고, 타락시키며, 많은 이웃들을 그리고 결국 나를 아프게 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문제가 뭔지 알아야 답을 찾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니 다시 한 번, 그 때문에, 이런 책은 아무리 읽어도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혹시나 그래봤자, 뭐해? 그래서 책에서 말하는 답은 현실성이 있는 거야?’라고 말하실 수도 있겠다. 우리 이젠 좀 주체적으로다가 살자. 답은 그저 주어지는 게 아니지 않는가. 그 답을 힘겹지만, 함께 찾아가는 과정에서 진정 답다운 답이 나오고, 진정 분노다운 분노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분노말이다.

 

기쁘다. 교황이 오신다. 우리 맘에도 축복이 가득하기를. 진도 팽목항에도 눈물 대신 재회의 순간이 어서 오기를, 광화문에 따뜻한 이웃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기를, 그리고 앵그리 맘들의 가슴에 어서 다시 평온이 찾아오기를 빈다. 간절히.

 

, 문득 떠올라. 서복현 기자 고생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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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스티브 도나휴 지음, 김명철 옮김 / 김영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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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시스템에 맡기면 예측 가능한 삶을 살지만, 자신의 나침반을 따르면 더욱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된다

 

누구에게나 어차피 삶은 한 번 뿐이다. 그리고 수많은 주위 환경의 영향이 물론 작용하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 삶의 주도권은 에게 있다고 믿으며, 그렇게 스스로를 세뇌시키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 물론 그것은 세뇌일 뿐, 우리는 우리 삶을 온전히 우리 마음대로 다루지 못한다. 그저 <올드보이>의 오대수(최민식)처럼 오늘도 대충 수습하며 살아갈 뿐. , 이렇게 말하니 짠하긴 하다.

 

지금까지 오래 오래 살아왔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직 마흔도 되지 않았는데, 어디서 감히 오래 살았다고 까불겠나. 추호도 그런 생각 한 적 없습니다요. 그리고 내 입장에서는 오래 살았다는 것이 그렇게 자랑할 만한 꺼리도 아니다 싶다. 진부한 말이겠지만, 오래 사는 것 보다는 어떻게 사는지가 조금은 더 중요하다고, 아직까지는 믿고 싶기 때문이다.

 

저자의 전작이자, 글로벌 베스트셀러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을 읽어보진 못했다. 그 작품에 감동을 받은 이들이 많은 것으로 봐서, 괜찮은 작품인 것 같긴 하다. 저자는 전작에서 인생을 모래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예측할 수 없어 불안하고 두려운, 그러나 장대하고 아름다운 사막으로 비유하며, 자신의 풍부한 경험과 뛰어난 문체로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고 출판사는 홍보하고 있다.

 

이번 책은 사막이 아닌 바다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바다거북의 그것과 함께 바라본다. 평생 바다 속을 누비며 여행하다, 태어난 곳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 마침내 삶을 마치는 바다거북의 일생을 통해, 역시 인생이라는 바다에 뛰어들어, 두렵지만 매혹적인 여행을 하다 삶을 마치는 우리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인생이란 여행에서 끝내 길을 잃지 않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여섯 가지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원체 컨설턴트나 유명 강사들의 이른 바 동기 부여’ ‘자기 계발도서를 읽지 않는 편이다. 예전에도 몇 번이나 말했던 것 같다. , 그냥 취향이니 양해해 주세요. 무지한 녀석에게 아무리 옆에서 경을 읽어줘 봐야 별 소득이 없다는 생각도 있고, 솔직히 말하면 그런 책들을 읽어도, 반성할 기미나 그래! 나도 해보는 거야!’ 따위의 자극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그래요. 참 대단하십니다 그려~’ 정도? 영 구제불능이다.

 

그럼, 이 책은 왜 집어 들었지? 예전 직장 동료의 서평을 읽었기 때문이다. 참 글을 맛있게 쓰는 친구였는데, 지금도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그 친구의 짧은 글 한 편을 읽고, ‘, 나도 인생을 한 번 건너가 볼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유감이지만, 지금 그 친구의 서평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매우 인상적이었다는 느낌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지구자기장의 영향을 받아 철새들은 어김없이 특정 장소로 일정하게 이동할 수 있고, 바다거북도 태어난 모래사장으로 돌아올 수 있다. 저자는 우리 인간의 내면, 존재의 중심 깊은 곳에서도 이처럼 끊임없이 강력한 신호를 보내는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을 무어라 표현하는지는 저마다 제각각이지만, 그 힘은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고유한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도록 도와준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의 존재 깊숙이 자리 잡은 이 힘은 우리에게 의도되어 있는 삶을 살도록 안내하는 운명이라고. 심히 심오하다.

 

우리는 명확한 지도를 갖고 싶어 한다. 그 지도대로 묵묵히 따라가기만 하면 흔히 말하는 성공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아니,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결국 타인이 만들어준 지도를 가지고 성공에 이르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당최 어떻게 믿냐고!!

 

때문에 저자는 우리 내면의 나침반이 있어야 하고,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신호를 수신하고, 해석하고, 거기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매일 나만의 나침반을 따라 올바른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글쎄, 이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나 같은 위인에겐 더 어려운 이야기다. 내면아, 잘 지내고 있는 거지? 나는 어리석기에, 당연히 귀도 A4용지마냥 얇고, 내면이 말하는 깊은 이야기를 듣는 것도 서툴다. 최근에는 도대체 나에게 사회성이란 게 있긴 있는 거야?’라는 심각한 고민을 하기도 했다. 당최 어울림을 어려워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으아~! 어렵다. 나침반은커녕 남들이 주는 지도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나 같은 녀석은 어떻게 인생을 폴짝 건널 수 있을까? 저자는 인간의 나침반은 머리가 아닌 심장에 있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들, 하고 싶은 일들, 세상에서 사랑을 찾고 사랑받는 방식은 인간의 나침반이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단서들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가끔 나침반을 이해하기 어렵고, 절망하기도 하고, 놓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내면의 목소리를 외면해선 안 된다. 그리고 결국은 듣게 될 것이다. 내가 진정 지금 이 자리에서 원하고, 느끼고, 하고자 하는 것이 무언지 말이다. 쉽진 않겠지만, 결국 나침반은 내 안에 있는 것이고, 나는 화려한 지도보다는 내 안의 나침반을 더 믿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때 잘 죽는 것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다. 잘 사는 것 못지않게 잘 죽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잘 죽는다는 것은, 역으로 잘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매 순간을 후회 없이 잘 살아나가는 것이 결국 좋은 마지막을 준비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

 

나 역시 저자의 이야기처럼 나만의 나침반을 가지고 인생을 무사히, , 그리고 의미 있게 건너고 싶다. 나름의 보람을 느끼며, 후회도 물론 많겠지만, 그럼에도(!) 치명적 후회 없는 그런 삶을 보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나에겐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힘들고 지친 이들과, 때론 힘들고 지친 내가 다른 누군가와 함께 인생을 건너는 것이다. 홀로 독야청청 인생을 잘 건너는 것 따위는 관심 밖의 일이다. 난 이 상식 초월, 이해 불가의 세상 속에서 나와 함께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과, 끝까지 웃으며, 끝까지 지지 않으며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그러다 죽고 싶다.

 

둥지 떠나기에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여섯 단계의 인생을 건너는 법을 따라가면, 결국 난 누군가와 갈 수밖에 없음을 느낀다. 혼자는 아무래도 쓸쓸하고, 아무래도 힘이 덜 난다. 연대가 무너진(물론 연세대는 건재하다) 이 사회에서, 그럼에도 연대는 살아있기에 오늘도 희망을 갖고, 잘 살고 잘 죽는 연습을 해야겠다.

 

조용히 책상에 앉아, 찬찬히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나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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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망치 - 2005년 일본추리작가 협회상 수상작 블랙 캣(Black Cat) 10
기시 유스케 지음, 육은숙 옮김 / 영림카디널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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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실마리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범죄현장. 더구나 범행당시 완벽한 밀실 상태였음이 밝혀지자, 사건은 미궁 속에 빠진다. 아무도 출입하지 않았는데,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그렇담 범인은 유령이라도 된 단 말인가! 두둥!

 

밀실 미스터리나 교묘한 트릭을 찾아내는 이른 바 본격추리소설이 다시금 많은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도무지 명확하거나, 뚜렷함이 없는 세상이다 보니, 많은 이들이 원인 결과가 명백한 본격 추리소설을 다시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씁쓸함도 들지만, 어찌 되었든 허무맹랑한 헐리우드 식 미스터리 물이나 추리소설에 질린 이들에겐 반가운 소식이다.

 

이 책은 2005년 일본추리작가 협회상을 받은 작품이다. 그만큼 완성도가 높다는 이야기. 완벽한 밀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풀어나가는 여성 변호사 준코와 방범 컨설턴트 에노모토 케이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작품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에노모토 케이는 매우 매력적인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분명 방범 컨설턴트라는 외형적인 직업 외에 무언가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한 이 작자(!)는 놀라운 추리력과 관찰력 그리고 직업에서 우러나온 방범 기기에 대한 뛰어난 지식으로 사건을 하나하나 풀어나간다.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은 다른 아닌 범인이다. 범인의 과거로부터 시작되는 2부는 수많은 에피소드가 이어지며 작품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범행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과연 범인이 잡힐 것인지, 무언가 실수를 하지는 않을지 조마조마해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은근히 잡히지 말기를 바랐던 나는, 나쁜 녀석?

 

간병보조 기구를 생산하는 회사의 사장이 사장실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사장실은 건물의 최상층인 12층에 위치해있다. 건물 밖에서 유리창을 닦던 청소부에 의해 발견된 사장. 낮잠을 자다 죽은 채 발견된 사장은, 그러나 뒤통수의 타박 흔적으로 보아 살해된 것으로 결론지어진다.

 

사장실의 건너편은 중역회의실이고, 복도에는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있다. 감시카메라의 영상은 경비실 비디오에 녹화된다. 하지만 범행시간 앞뒤로 누군가 사장실을 드나든 사람은 없다. 이 회사에 출입하려면 1층 경비실에 기록해야 하고, 12층은 특별히 만들어진 비밀번호를 눌러야만 엘리베이터를 통해 올라갈 수 있다. 옥상이나 이웃 건물을 통해 이 회사로 침입할 수도 없는 외장구조이다. 그럼 범인은 어떻게 12층 사장실에 침입해 범행을 저질렀을까?

 

결국 범인으로는 복도로 나오지 않고도 사장실에 드나들 수 있었던 전무가 지목된다. 전무실이 사장실에서 가장 가까웠기 때문. 하지만 전무는 당일 누군가가 탄 수면제가 든 커피를 마시고 거의 기절상태에 있었음이 밝혀진다. 전무의 변호를 맡은 준코는 전무의 범행이 아님을 느끼지만, 솔직히 그가 아니고서는 밀실 살인을 설명할 수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결국 아는 사람들의 소개로 방범 전문가 케이를 찾아간 준코는 밀실 살인사건의 비밀을 풀어준다면 수고비를 주겠다고 제안하고, 방범 전문가로서 밀실 살인이라는 말에 흥미를 느낀 케이가 사건에 관여하게 된다. 그리고 놀라운 범인의 트릭을 하나하나 파헤쳐간다.

 

450페이지가 넘는 결코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쉼 없이 읽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저자의 뛰어난 문장력과 스토리 전개 능력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또 하나 이유가 있다. 그것은 진실을 알고 싶다는 극히 당연한 본능 때문이다.

 

도대체가 무엇이 진실이고, 누가 거짓말을 하는 지 도통 점쟁이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이 세상에 똑 부러지게 밝혀지는 진실은 그 얼마나 고마운가. 비록 소설일 지라도 말이다. 젠장!

 

뜨거운 올 여름, 차분하게 머리를 쉬어가게 해주는 책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슬그머니 찾아볼 생각이다. 하도 소설을 능가하는 황당무계한 일들이 매일 벌어지는 세상이라, 굳이 진짜 소설을 읽을 필요가 없다는 분들도 계시겠다. 그래도! 우리 유사품에 속지 말고 정품을 애용해야 하지 않겠나. 격이 있는데 말이다. 에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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