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들어라 강귀들아
김형진 지음 / MAY(메이문화산업연구원)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보통은 솔직한 것이 미덕이지만, 때론 솔직함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때가 있다. 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해도 결과적으로 상대방이 상처를 받게 된다면, 당사자로서는 참 난감할 따름이다. 하지만 어쩌랴, 그 순간 솔직함이 최선이라 생각했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의 솔직한 나의 심정을 말하자면, 음… 살짝 촌스럽다는 느낌? 표지의 삽화가 너무 노골적(!)이라, 그리고 제목 자체가 너무 강해서(첨 보았을 때는 무슨 귀신들이 등장하는 책인 줄!)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았음을 고백해야겠다. 표지를 디자인하신 분에겐 너무 너무 죄송하지만, 그래도 제 맘을 숨길 순 없었어요.
하지만 역시 사람이나 그 무엇이나 겉만 보고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되는 법. 책을 읽어가며, 몇 번이나 나의 첫인상을 반성 또 반성했다는 점을 강조 한 번 해야겠다. 책은 나쁘지 않았다. 전혀.
최근 세월호 참사, 군대 내 폭행 사망사건 등 가슴을 후벼 파는 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니, 앵그리 맘들의 집단 엑소더스(이민)를 우려하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이 더럽고 무서운 나라에서 내 아이를 더 이상 키울 수 없다는 분노와 두려움이 겹쳐 발생하는 현상이다. 뭐, 지금 같은 나라꼴에서 엄마들을 뭐라고 할 수도 없다.
도대체가 대통령이 말한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었을까. 비정상을 정상적인 것으로 만들겠다는 말이 아니라, 비정상을 정상인 것처럼 둔갑시키겠다는 말이었을까?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어쩐지 후자 쪽에 강하게 무게감이 쏠린다. 당최 정상인 것이 하나도 없으니 말이다.
저자는 1%의 특권층, 지배계층이 나머지 99%의 민중을 어떻게 착취하고 탄압하고 있는지 조목조목 꼬집는다. 하물며 나와 같은 99.999%에 밑도는 이마저 따끔한 고통을 느낄 정도니, 1% 분들이 이 책을 읽으시면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 엄습하리라.
언뜻 저자가 말하는 강귀, 즉 ‘강남귀족’이라는 표현에서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강남에 살고 있는 나름 선량한 이들은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요즘 소위 잘 산다는 이들은 강남에서 살지 않는다는(!) 반박도 가능할 것이다. 그럼 어디에 살지? 난 도통 모르겠어요.
이 책은 일방적으로 ‘있는 자들’ ‘권력자들’을 비판하고 있지 않다. 따지고 또 따지다보면 결국 이 사회가 이렇게 뒤틀린 데에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일정 부분 있지 않는가. 우리는 어찌되었든,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고, 우리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소수의 권력집단을 우리 손으로 선출해오고 있지 않나. 그러니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위해 힘없는 이들을 탄압하고 착취할 수 있도록 만든 책임은 결정적으로 우리에게 있는 셈이다.
곧 서평을 올리겠지만,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를 보면 국가를 망치는 정치인 못지않게 그들을 선출한 국민들의 죄악 역시 무지하게 무겁다고 대놓고 욕하신다. 참, 요즘 돌아가는 꼴을 보자면, 우리 역시 이 욕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 같다. 싸다, 욕먹어도.
책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을 하나하나 소개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어느 개인, 어느 슈퍼 영웅의 등장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당연하죠! 세상에 그런 영웅이나 슈퍼맨은 헐리우드에만 있는 걸요? 게다가 그런 영웅들은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라 코리아엔 관심이 없답니다.
비단 강귀(강남귀족)라 불리는 특권층에게만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책의 미덕일 것이다. 결국 우리 스스로 남 욕만 할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우쳐 주고 있기 때문에 책은 유치찬란(으악! 죄송해요. 너무 솔직해도 민폐야!)한 표지 디자인을 만회하고도 아주 많이 남는다.
많은 이들이 또 다시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돈이 없고 권력이 없는 이들에겐, 도대체가 젠장맞을 ‘좋은 세상’은 언제나 올까. 하지만 이 빌어먹을 세상 앞에 그냥 ‘내가 뭔 힘이 있다고’하며 체념하는 것 역시 자세가 나오지 않는다. 창피하다. 심히.
항상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말자고 생각하며 산다. 분에 넘치게 어여쁜 딸을 얻은 뒤에는 딸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자고 또 다짐한다. 뭐 말이 쉽지 현실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부끄러운 행동을 하면서도, 적어도 머리 안에서는 이러한 결심이 열심히 좌뇌와 우뇌를 왕복 중이다.
일터가 광화문이다. 상상이 가시죠? 세월호 특별법을 요구하며 유민이 아버님이 목숨을 걸고 단식 중이시고, 그 옆을 가수 김장훈이 지키고 있다. 젠장, 이런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보면서 난 그깟 월급 받아먹겠다고 매일 다람쥐처럼 출근한다.
그래, 밥벌이의 위대함을 꿋꿋이 믿는다. 하지만 차마 아픔을 외면할 수 없는 이 거지같은 세상에서, 그래도 수많은 유민이 아빠들과 함께 살아갈 것이라는 각오 역시 간직하고 싶다.
정부는 될 수 있음 국민들이 멍청하고, 한심하고, 고분고분 말 잘 듣고, 세금 잘 내고 등등 그러길 바란다. 얼마나 좋아, 말 잘 들으면! 그리고 그렇게 말을 잘 듣지 않는 이들에겐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철저히 짓밟는다. 주변에서 많이 보셨죠? 특히나 전 정부와 현 정부에서 말이죠.
때문에 더더욱 우리는 도대체가 뭐가 이 사회를 좀먹고, 타락시키며, 많은 이웃들을 그리고 결국 나를 아프게 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문제가 뭔지 알아야 답을 찾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니 다시 한 번, 그 때문에, 이런 책은 아무리 읽어도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혹시나 ‘그래봤자, 뭐해? 그래서 책에서 말하는 답은 현실성이 있는 거야?’라고 말하실 수도 있겠다. 우리 이젠 좀 주체적으로다가 살자. 답은 그저 주어지는 게 아니지 않는가. 그 답을 힘겹지만, 함께 찾아가는 과정에서 진정 답다운 답이 나오고, 진정 분노다운 분노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분노말이다.
기쁘다. 교황이 오신다. 우리 맘에도 축복이 가득하기를. 진도 팽목항에도 눈물 대신 재회의 순간이 어서 오기를, 광화문에 따뜻한 이웃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기를, 그리고 앵그리 맘들의 가슴에 어서 다시 평온이 찾아오기를 빈다. 간절히.
아, 문득 떠올라. 서복현 기자 고생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