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혁명의 구조 까치글방 170
토머스 S.쿤 지음, 김명자 옮김 / 까치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3.0

 

279페이지, 25줄, 30자.

 

읽기는 읽었는데, 읽은 게 아닙니다. 대략 세 시간 정도가 걸렸는데, 이 책을 제대로 읽으려면 그 배의 시간은 필요할 것 같네요.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책의 단점은 -반대로 장점이기도 한데- 일정한 시간 내에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의 대출 정책은 1인 5권 이내, 2주간이 기본이고 연장은 안됩니다. 즉각적인 재대출은 (기회의 공평한 보장을 위하여) 제한되므로 기한내에 읽지 못하면 일단 반납하고 일정 기간이 지난 다음 다시 빌리거나, 반납하지 않고 대출기한을 넘겨서 보고 반납하는 방법이 있는데, 후자의 경우엔 그 기간만큼 추가대출이 거부되므로 추천할 만한 방법이 아닙니다. 전자의 경우엔 제가 처한 것처럼 속성으로 읽어야 하는 상황이 닥칠 수 있고요.

 

아무튼 반납해야 하는 날에야 겨우 읽을 수 있게 되어 (2주의 기간 동안 12권을 빌려왔는데 어제는 직장에서 늦게 와서 읽을 기회를 날린 셈입니다.) 다른 가족들의 일정에 맞추라는 압박 때문에 시간제한이 발생했습니다. 주마간산 격으로 읽으니 뭐가 뭔 소린지 알기 힘드네요. 패러다임이라는 단어가 중요하게 등장하는데, 우리 사회에서 이 단어가 널리 쓰인 게 십년이 안되었으니 격세지감이 듭니다. 저자의 논리와 상충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는데, 결국 한 분야에서의 발전은 혁명적인 발상으로 통하기도 하지만 그 바탕에는 일정한 수준을 넘는 기존질서에서의 경험축적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게 충족되어야 새로운 패러다임이 작용할 수 있는 것이지요. 어떤 주장은 그걸 증명하기는 힘들지만 그럴 듯하다는 생각이 선도자들에게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은 시대를 뛰어넘어 받아들여지고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겨우 증명이 되는 것일 것이고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기존의 해석법이 허용하는 최대치까지 경험이 쌓여야 기존의 해석볍이 잘못되었을 것이라는 증명이 가능해지는 게 아닐까 싶네요. 한 사람의 주장으로 모든 게 바뀌는 게 아니라 다른 이들이 동의를 해야 그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니까요. 즉, 인류에게는 언제는 다수(절대다수가 아닌 복수적 의미로의 다수)가 동의를 해야 새로운 것(법이든 지식이든)이 받아들여지는 법이니까요.

 

번역자나 저자에 대한 설명이 없습니다. 아마도 외피에 붙어있었던 것 같은데, 보통은 잘라서 붙여놓는 게 여기서는 실행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번역자가 직역을 한 게 아닐가 싶을 정도로 어색한 문장이 많아서 읽는데 방해가 되었습니다. 의역을 하라는 게 아니라 풍부한 어휘를 사용하면 직역을 하더라도 읽는 사람에게 도움이 됩니다. 일부 원리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에게 사용하듯 그대로 도입되었는데, 읽는 사람이 꼭 알 거라는 가정이 잘못일 수도 있으니 주석으로 달아두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합니다. 맥스웰의 **는 몇 가지가 나왔는데 뭔지를 모르는 사람은 계속 모르는 상태로 지나야 했습니다. 하다 못해 뉴턴의 운동법칙도 이제 기억이 안 나는 사람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결론적으로 독서시간이 부족해서 실패한 독서가 된 또 하나의 사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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