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비소리 미네르바의 올빼미 32
김섬 지음, 정용성 그림 / 푸른나무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3.0

 

170페이지, 19줄, 25자.

 

아랑이는 집을 나간 엄마 대신 할머니와 함께 삽니다. 할머니는 전에 상군 잠수로 활동했었지만 이젠 은퇴한 셈입니다. 어느 날 외지인들이 호텔을 짓겠다고 합니다. 부지가 마을 땅이여서 주민의 2/3가 동의하면 되는 것 같네요. 이장인 명자 아빠가 주동이 되어 동의를 받으러 다닙니다. 아이들은 뜻밖의 서울 수학여행까지 다녀오게 됩니다. 결국 2/3 이상이 동의하여 공사가 시작되고 반대를 하던 할머니는 다치기까지 합니다.

 

할머니가 반대한 이유는 그 땅이 4.3 때 주민들이 학살당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바다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고. 그런데 두 번째 것은 항상 그런 게 아니니 넘어가고, 첫번째 이유를 보면 동의절차 중에는 공개되지 않던 비밀입니다. 명자 아빠 등 몇 사람은 알고 있었던 사실이고. 젊은 축에 드는 사람은 모르던 사실이지요. 그러니 그들을 탓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명자 아빠나 아랑이 할머니의 잘못입니다. 정보의 편재가 항상 인간세상에서는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였고, 하나입니다. 그런데 글 중에서는 그들도 혼나는 사람들이 되고 맙니다. 알았더라면 일부는 반대측 의견을 제시했었겠지요.

 

사실 4.3사태에 대해서도 시각을 달리할 수 있습니다. 고대의 전쟁 때 민간인의 피해가 컸던 것은 전쟁윤리가 없었기도 하고, 누구든 무기를 들면 군인이 될 수 있었던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점차 군인과 민간인의 구분이 되자 민간인을 죽이는 것은 학살이 됩니다. 그런데, 유격전(게릴라전)은 군인과 민간인의 구분이 모호해집니다. 이 상태에서 상대방에게 '민간인은 죽이지 마시오' 라고 말하는 게 힘듭니다. 상대의 입장에서는 누구나 다 '잠재적 적'일 뿐이니까요. 원초적인 잘못은 게릴라전을 벌이는 당사자가 됩니다. 민간인도 게릴라의 상대방도 피해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학살당하는 객체로, 하나는 학살을 자행하는 주체로서 말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게릴라전 당사자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민간인 희생자만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슬쩍 진압군을 학살자로만 기술해 놓았습니다. 호텔을 짓는 것도 외지인으로 묘사됩니다. 진압군도 외지인이었죠. 이건 제주도의 특성 -오랫동안 비교적 고립된 공동체로써 생활- 때문에 이런 것 같습니다. 섬문화에서 자주 보이는 이야기입니다. 호텔은 외지인이 지었겠지만 앞장선 사람은 섬사람입니다. 자주 이 사람들도 마치 속아넘어간 피해자인 것처럼 기술되는데 그건 잘못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피해자이긴 하지만 가해자로 묘사된 외지인과 다를 바 없다는 뜻입니다. '그럴 줄 몰랐다'는 것은 역사에서 배운 바가 없다는 것과 같으므로 거짓이지요. '그렇지 않기를 바랐다'가 옳바른 표현입니다. 글이 깁니다. 정치적인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안 쓰려고 했었는데, 어쩌다 쓰게 되었습니다.

 

111028-111028/11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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