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제국건국사 9
윤민혁 지음 / 시공사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24장 1871년 9월(1)
25장 1871년 9월(2)
26장 1871년 9월(3)
27장 1871년 10월(1)
28장 1871년 10월(2)
29장 1871년 10월(3)

일본 해군은 남해안을 수색하였으나 여수까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되돌아가 보급을 받으려던 일본해군은 통영 인근 한산도에서 조선해군과 마주칩니다. 경상우수영, 좌수영, 전라좌수영 함대의 협격을 받은 일본함대는 6척 모두 수장됩니다. 상륙한 일본군 4천은 아무 소득없이 진격하지만 조선은 청야전술을 펴서 대구 이하를 비워버립니다. 일본군은 대구 아래까지 진격하였다가 불안하여지자 부산으로 후퇴를 결정합니다. 그러나 삼량진에는 이미 조선군이 기다리고 있었고 일본군 뒤를 따라붙은 다른 부대가 합격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결국 일본군은 3800이 전사하고 200이 포로로 잡혔습니다. 조선군은 500의 전사자를 냈습니다. 일본해군과 육군 포로 250은 제물포로 육상 이동하여 연합군에 인도됩니다. 도착 인원은 180. 연합군 해군 포로(군산 앞에서 격침된 생존자) 70여명도 도착하여 함께 인도됩니다. 강화도민에게 식량을 제공하는 것으로도 연합군은 휘청거리게 됩니다. 일본군 포로를 넘겨받으며 남도양동군이 없어졌음을 깨닫게 된 연합군은 군을 이분하여 주력은 한강을 건너 한양으로 진격 국왕을 사로잡고, 일부는 경기 남부를 전횡하면서 헤집을 작전을 짭니다. 해군이 진입하려면 행주산성포대를 뒤엎어야 하므로 공격로가 그 쪽으로 결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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