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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국건국사 7
윤민혁 지음 / 시공사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12장 1870년 전반
13징 1870년 후반
14장 1871년 초
15장 1871년 5월
16장 1871년 6월
17장 광성보 전투
조선에도 점차 침공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첩보가 도착합니다. 한편 수운에 의지하던 운송은 이제 육운을 전담하는 회사가 생겨서 한숨 돌리게 되었습니다. 한편 해군은 선재포를 몇 받게 되어 전선에 싣고 시험방포를 하게 됩니다. 프러시아는 영미프 연합군의 조선공세를 흘림으로써 이익을 취하려는 목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조정에서는 사절을 통영으로 보내 프로시아와 접촉을 합니다. 오페르트가 있음을 안 권철상은 날카로워집니다. 오페르트는 권철상에게 진심으로 사죄를 하며 선의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프러시아의 야심(필요시 식민지화)을 몰래 알립니다. 청은 조선을 장차 속국에서 일개 성으로 전락시킬 계획을 품고 일부 정보를 흘립니다. 한편 갑식보총의 밀매건을 은밀히 추적하던 군부는 결국 대원군이 배후에 있음을 알게 되고 권철상은 대원군과 거래를 하게 됩니다. 묻어두는 대신 윤재혁 등 천주교인을 사죄 차원에서 의용병으로 징집하면서 죄를 사해주고 동시에 부족했던 군병력과 시설을 보강하는 것입니다. 윤준혁은 덕분에 행주산성포대의 연대장으로 취임하게 됩니다. 한편 일본도 사쓰마 번의 병력이 참전하기로 하였습니다. 해군으로 통합된 다른 번의 군함까지 몰고 6척의 전투함을 타고 남해안을 휩쓸 계획이죠. 그런데 권철상 등의 예상과 달리 연합군은 위력정찰을 6월에 실시하게 됩니다. 영종도를 기습한 연합군은 사상자 21명으로 조선군 600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습니다. 다시 강화도 초지진에 상륙을 하였는데 조선포병의 반격으로 이곳을 포트 브레이버리라고 명명합니다. 한편 손돌목돈대의 포대는 탄약고가 명중당하는 바람에 무너지고 맙니다. 결국 강화성을 제외하고 광성보와 대모산 일대에서 조선군 1531명이 전사하고 635명이 포로로 잡힙니다. 연합군은 319명 전사/실종, 463명 부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