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나우웬은 남아메리카에 머무는 동안 "아무도 내게 기도하면 달라진다는 사실을 증명해보일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기도하지 않으면 쉽게 화를 내고, 마음이 무거우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자주 놓쳐서 자신이 아닌 남에게 관심을 쏟을 수 없게 된다. 기도하지 않으면 선입견에 따라 행동하기 쉽다. 변덕스럽고 사소한 일에도 원한을 품는다.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앙갚음을 하고 싶은 마음에 시달린다." 물론 그는 하루에 한 시간씩 교회에 앉아 있자면 정신을 집중하기 어렵고, 안절부절못하고, 졸리고, 혼란스럽고, 지루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 되돌아보았을 때, 기도한 뒤로부터 하루가 다르게, 한 주가 다르게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루에 한 시간 정도 기도하지 않았더라면, 내 삶은 일관성을 잃어버렸을 테고, 그저 갖가지 사건 사고들이 이어지는 평범한 세월을 보냈을 것이다." (pp522-3)
의사로 일하는 동안 블룸은 온통 미래에만 신경을 썼다. 환자를 검진하면서도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손님의 수를 헤아리느라 자꾸 옆방을 흘끔거렸다. 수술이 끝나고 돌아서는 순간부터 환자에 대해서는 아주 사소한 것마저 다 잊었다. 한술 더 떠서, 방금 전까지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똑같은 질문을 두세 번씩 자신에게 던지곤 했다. 블룸은 접근 방식을 바꾸기로 작정했다. 눈앞에 앉아 있는 환자를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사람처럼 대하자고 다짐했다. '빨리 움직여야겠다'는 조급증이 들면 일부러 의자에 깊이 몸을 기대고 환자에게 몇 마디 말을 시켜서 서두르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결과는 놀라웠다. 하루에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이전보다 훨씬 늘어났던 것이다. 똑같은 질문을 되풀이 하고 같은 절차를 쓸데없이 반복하는 실수가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블룸은 너무 빨리 움직이려고 애쓰는 시간을 멈추게 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안돼!"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시간을 온전하게, 내면의 긴장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분일초가 정말 일분일초답게 흘러가는 걸 상상할 수 있는가? 우리는 5분이 30초 만에 달아나버리는 것처럼 살지만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시간을 멈추게 하는 훈련은 차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변화시켰다. 무엇보다도 과거는 돌이킬 수 없으며 미래는 어떻게 될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현재의 삶에 집중하게 됐다. 눈앞에서 흘러가고 있는 지금이 영원이라는 시간과 교차하는 지점이었던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블룸은 하던 일을 멈추고 마음을 추스렸다.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앉아 있어야겠다. 앞으로 5분 동안은 꼼짝도 않을 거야. 여기 하나님의 임재 안에, 내 존재 속에, 가구들이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머물러 있어야지. 아무 데도 가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을 거야." 조바심이 들 때마다 잠깐씩, 5분 정도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그런 식으로 짬짬이 쉬었다가 다시 분주한 일정으로 돌아가면 차분하고 평온한 마음을 지킬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후로는 차츰 시간을 늘렸다.
뜻밖에도 5분을 한가하게 쉬면, 나머지 세상도 그만큼을 기다려주었다. 과제를 처리하는 게 제아무리 급박하다 해도(보통 이런 일들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고 있었다) 3분, 5분 아니 10분 정도는 여유를 낼 수 있었다. 사실 잠깐 짬을 냈다가 다시 시작하면 오히려 더 평온하고 신속하게 과제를 끝낼 수 있었다. 결국은 그렇게 틈틈이 멈춰 섰다가는 시간을 연장해서 아침, 저녁 기도 일과를 만들었다.
블룸은 날마다 조용하고 평온한 가운데 일과를 시작했다. 하루라는 시간 자체가 이전에는 결코 존재한 적이 없었던 하나님의 선물이며 다시 시작할 기회라는 사실을 마음 깊이 새겼다. 눈을 뜰 때마다 새로운 날이 어린 시절 러시아에서 보았던 순백의 설원처럼 넓게 펼쳐졌다. "오늘은 주님이 만드신 날이다. 여기서 마음껏 즐기면 기뻐하자!" 아침에는 하나님의 사자로서 누구를 만나든지 하나님의 임재를 전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밤이 되면 그날 일어난 일들을 차근차근 돌아보며 잘됐든 잘못됐든 모든 일에 감사했다. 하루를 통째로 하나님 손에 올려드렸다.
잠깐씩 기도하는 여유는 목걸이의 진주들처럼 블룸에게는 줄줄이 늘어서서 본질적인 진실을 일깨워주는 이정표가 되었다. 산다는 건 무의미한 행동들의 연속이 아니다. 삶은 하나님 나라의 목표를 지신의 몸으로 살아내는 경기장이다. 기도는 행위인 동시에 특정한 상태를 가리키는데, 기도를 하루에 몇 차례라는 식의 제한된 순가능로 생각하면 쉽게 잊어버릴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pp537-40)
온 영혼을 바쳐 하나님을 사랑하는 기도의 상급학교에 올라가면 의심과 갈등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거기에 덜 휘둘리게 된다. 예수님은 "너희가 악해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마7:11)고 말씀하셨다. 마음속에서 무수한 반론을 불러일으킬 만한 말씀이다. 그러나 영혼을 기울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반론은 힘을 잃는다. 무엇이든 '좋은 선물'로 바꾸시는 선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순간, 기도와 관련된 갖가지 의문들은 돌연 생기를 잃는다. (p5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