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뮬러나 마르틴 루터 같은 인물들이 그토록 놀라운 기도 응답을 받았던 비결이 뭔지 묻는 이들에게 마틴 로이드 존스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흔히 성인들이 받았던 축복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똑같이 누리고 싶어 하지만, 그들이 탁월한 신앙인이었다는 사실은 곧잘 잊어버린다. 그리고는 성인들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처럼 자신의 기도에 반응하시지 않는 까닭이 뭐냐고 묻는다. 먼저 우리가 성인들의 생활방식대로 살지 못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어야 한다. (pp406-7)

 화이트 교수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미앙고 묘지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도 독생자를 선교지에 묻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뿐이다."
 이곳 나이지리아의 흙무덤가에 선 선교사 부부에게 응답되지 않은 기도를 제 아무리 설명해봐야 답이 되니 않을 것이다. 그저 선이 악을 이기며 결국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성취될 것이라는 약속이 이미 성취되었음을 믿어야 할 뿐이다. 그 믿음에 매달리는 것만이 최고의 합리적 행위인 것이다. 아니면 최고의 믿음의 행위이거나. (p417)

 CS 루이스는 설명한다.
 기도의 핵심은 응답될 수도 있고 거절당할 수도 있다는 점에 있다. 결과를 강제할 수 없다는 말이다. 지혜가 무궁무진하신 분께서 어리석기 한량없는 피조물의 요청을 듣는다면, 경우에 따라 들어주시기도 하시고 거절하시기도 하시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언제나 응답을 받아내는 데 '성공'한다는 건 기독교의 교리가 아니다. 오히려 마술에 가까운 현상일 뿐이다.
 교장이 학생들에게 "교칙에 따라, 이러저러한 일들은 허용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여차여차한 행위는 너무나 위험해서 너그러운 원칙을 적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일들을 하고 싶으면 내 방에 찾아와서 요청을 하세요. 모든 문제들을 함께 상의할 수 있을 겁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건 전혀 불합리한 일이 아니다. (p422)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또한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괜찮았던 육신과 새로운 몸을 맞바꾼다. 은혜와 기쁨을 누리기는 했지만 악과 고통에 취약했던 삶을 버리고 약속하셨던 대로 완벽한 새 삶을 얻는다. 혼란스러운 교리와 흔들리는 믿음 대신 분명한 지식을 갖게 된다. 남은 세월 동안, 그런 교환을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 (p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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