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세계는 좁아진다. 현실 세계를 뒤로하고 예수님이 상징적으로 말씀하신 기도 골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실제로도 전혀 다른 영역에 진입하게 된다. 똑같이 실존하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세계다. 나는 물론이고 뒤에 남겨두고 온 세상을 모조리 변화시킬 힘이 거기에 있다. 시간을 정해서 규칙적으로 기도하면 내면세계를 방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외부세계가 침투해서 장악하지 못하게 막아준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라고 말씀하셨다. 욕망을 부추기는 장인들이 할리우드에서 빚어낸 영상들이 얼마나 끈질기게 마음을 사로잡는지 생각하면 주님 말씀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이 머무시도록 마음의 방을 샅샅이 청소하는 상상을 자주 한다. 기도에는 "마음을 새롭게"(롬12:2) 하는 과정이 포함되는데 주님을 슬프게 하고 자신을 망가뜨리는 요소들을 모두 정리하는 단계와 가장 소중한 것들을 채워주시도록 마음을 내어맡기는 단계로 구성된다. (p300)

 캘리포니아 주 웨스트몬트 대학에서 교목으로 일하는 벤 패터슨은 디스크 파열로 침대에 누워서 꼼짝도 말라는 진단을 받은 적이 있다. 독한 약을 복용하는데다 침상에서 일어날 수조차 없었으므로 책을 읽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렇게 무기력한 상태에서 패터슨은 기도에 관해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속수무책이었다. 더럭 겁이 나기도 했다. 도대체 어떻게 되려고 이러나? 어떻게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할까?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목사라고는 나 하나뿐인데 이제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교회를 위해 기도나 해보기로 했다. 주소록을 펼쳐놓고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날마다 기도했다. 거의 두 시간이 걸렸지만, 그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었으므로 그렇게 하는 게 특별히 싫지 않았다. 신앙이 깊어서가 아니라 지루하고 낙심이 돼서 기도를 시작한 셈이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나는 동안 차츰 기도 시간이 달콤하게 느껴졌다. 몸이 거의 회복되었을 무렵,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말씀드렸다. "아시다시피, 여기서 정말 멋진 시간을 보냈습니다. 주님과 더불어 보냈던 순간들 말입니다. 건강해지면 이런 여유를 가질 수 없게 된다는 게 정말 아쉽습니다."
 하나님의 시큰둥한 대답이 금방 돌아왔다. "애야, 건강해져도 아플 때만큼 시간이 넉넉하지 않니? 하루는 똑같이 스물네 시간이란다. 건강할 때는 네가 교회를 돌보는 책임자라고 생각하는 게 문제지. 몸이 아플 때는 그럴 수 없는데 말이야." (p303-4)

 일이 워낙 많이 생겨서, 마귀의 장난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기도하려고 무릎을 꿇기만 하면 전화벨이 울리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그렇게 이른 새벽에 전화를 건단 말인가? 화장실에서 물이 새는 소리가 너무 또렷해서 화들짝 달려가 꼭지를 점검한 것도 있었다. 그리고 한 시간 뒤에는 물탱크에 팔꿈치를 들이민 채 나사를 죄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날 하루는 그렇게 잡다한 일로 모두 망가지고 말았다. (p331)

 비록 몇 가지에 불과하지만, 나는 기어이 잡생각을 다스리는 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기술들을 찾아냈다. 우선 가전제품들이 정신을 산란하게 만들지 못하도록 예방 조치를 취한다. 컴퓨터가 없는 방에 자리를 잡는다. 자동 응답 장치를 작동시켜서 전화가 걸려오는 걸 막는다. 곁에는 언제나 메모지와 펜을 준비해둔다. 잡다한 생각이 떠오르면 종이에 적어서 나중에 처리할 일 파일에 끼워둔다. 한두 가지  잡념이 떠오르다 말 때도 잇지만 때로는 예닐곱 가지에 이르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나는 일들을 적어두면 계속해서 깐죽거리지 못하도록 붙잡아두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능하면 잡생각들을 기도에 끌어들인다. 아침을 먹으면서 보았던 지진 피해 영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으면 재난을 당한 가정들과 현장에서 뛰고 있는 구조대원을 위해 기도한다. (pp336-7)

 잡생각이 생기는가? 상념의 뿌리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서 바로 그것을 위해 기도하라. 진실로 소원하는 바를 위해 기도해야 산만해지지 않는다. 침몰중인 배에 타고 있는 승객들은 기도할 때 잡생각이 난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p338)

 목회자라면 누구나 그날 설교는 다른 사람보다 목사 자신에게 적용해야겠다는 교인의 한마디에 금방 실패자가 된 것처럼 착잡해져서 집으로 돌아온 경험이 한두 번쯤 있을 것이다. 어쩌면 하나님도 기도를 그렇게 보실지 모른다. CS 루이스는 이렇게 적었다. "가장 형편없어 보이는 기도가 실제로 하나님의 눈에는 제일 훌륭한 간구처럼 보일지 모른다. 경건한 느낌이 매우 적고 대단히 내키지 않아 하면서 드리는 기도 말이다. 이런 기도들은 거의 모두 감정보다 더 깊은 곳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p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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