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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 스피어
김언희 지음 / 해냄 / 2017년 7월
평점 :
낯선 작가 이름이다. 이 책을 선택한 것도 '네이버북스 미스터리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로맨스 소설에서 상당히 유명한 작가다. 인터넷 서점 평점도 좋다. 뭐 이 분야는 내가 좋아하는 분야가 아니다. 아직은. 이런 사실보다 더 눈길을 끈 것은 화엄사상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뛰어넘는 매직 스피어란 물건이었다. SF장르를 좋아하기에 이 분야를 화엄사상과 어떻게 연결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결과부터 말하면 나의 지식이 화엄사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아는 선 정도에서 멈췄다. 하지만 몇 가지 타임루프 설정은 새로웠고, 의문을 던져주었다.
프롤로그가 상당히 긴 편이다. 도입부의 장면은 그렇게 낯설지 않다. 많은 소설 등에서 본 듯하기 때문이다. “왜……왔어, 나를…… 네 생에서 지우라, 했잖아” 이 문장도 그렇게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 문장은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결코 자신의 생에서 지울 수 없는 하나의 강력한 낙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장현도는 수많은 삶을 살게 되고 성공 가능성이 아주 낮은 시도를 반복한다. 이 소설은 이 반복되는 시도와 이 시도를 할 수밖에 없는 한 남자의 사랑과 그 속에서 풀어내는 미스터리로 구성되어 있다.
도입부만 놓고 보면 가끔 날아오는 카카오페이지의 로맨스 소설과 비슷하다. 강 기자가 아이돌이었던 유명한 성형외과 의사 장현도를 만나러 오고, 그의 바뀐 기를 알아채고, 화엄일승법계도의 영묘함을 느끼는 그 상황들 말이다. 그리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일어난 기이한 사건을 뉴스에서 보고 장현도를 찾아갔다가 그가 남긴 기록을 받는다. 실제 이야기는 바로 장현도가 남긴 기록에서 시작한다. 수많이 반복되었던 그의 삶과 열정과 결코 꺾이지 않았던 의지와 사랑 이야기 말이다. 그 중심에는 공바라가 있고, 매직스피어가 있다.
장현도. 창녀의 몸에서 태어났다. 엄마는 이 임신 사실을 알고 자신의 삶을 바꾼다. 장현도는 이 사실 때문인지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전국 성정 0.1%의 엄청난 성적이다. 이런 그에게 한 여자가 영혼까지 파고든다. 공바라. 전교 일등에 잘 생기고 춤까지 잘 추는 그와 특이하지만 잘 눈에 띄지 않는 공바라를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는 동기들은 없다. 하지만 항상 가장 먼저 등교하던 그보다 먼저 와 있던 바라는 어느 순간 그의 영혼에 각인된다. 그리고 바라의 죽음은 삶의 방향을 바꾼다. 서울대 대신 감옥으로. 이 상황을 바꾼 것은 한 통의 메일이다. 그곳에서 바라의 흔적을 보고, 그녀가 남긴 유산을 받는다. 그 유산이 바로 매직 스피어다. 이 기계를 통해 그는 새로운 꿈을 꾸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반복되는 삶 속에서 그는 바라의 죽음을 멈추려고 한다. 언제나 실패다. 이 반복되는 실패 속에서 결국 찾게 되는 것은 바라와 그 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의혹이다. SF가 어느 순간 미스터리로 넘어간다. 하지만 가장 큰 설정은 타임루프다. 보통의 타임루프라면 자신만 변한 것을 알 텐데 이 소설에서는 이 변화를 바로 아는 사람이 세 명이나 등장한다. 그들은 장현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이다. 그의 김 변호사와 김 변호사를 만나게 해준 최 형사와 위조범이자 그의 제자인 천식 등이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처음에는 낯선 설정이지만 반복되는 상황을 보면 이 설정이 왜 필요한지 이해하게 된다. 그렇다고 내가 동의한다는 말은 아니다.
화엄사상과 양자물리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매직 스피어. 이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이 누군가 있고, 장현도는 이 기계를 이용한다. 불교의 이론으로 보면 공바라에 대한 집착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불교의 법문을 소설 속에 넣고, 양자물리학을 설명하면서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운 몇 가지 설정을 만든다. 이 설정이 이 소설을 지탱하는 바탕이다. 장현도의 반복되는 새로운 삶에 대한 설명이다. 한 부분만 놓고 보면 무협에서 자주 보던 장면이다. 반복되는 새로운 삶도 이미 몇 번이나 소설이나 영화로 본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낯선 장면과 설정을 잘 버무려 내어 한 인간의 사랑과 의지를 풀어내는 것은 작가의 능력이다. 뛰어난 가독성도 같이. 다른 작품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