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레퀴엠 버티고 시리즈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윤철희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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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 콜 시리즈를 처음 읽었다. 시리즈 중 여덟 번째 작품이다. 첫 작품이 <몽키스 레인코트>라고 하는데 아직 읽지 않았다. 아마 이 시리즈가 순서대로 나왔다면 첫 권부터 읽었을 테지만 현재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출판사에서 다른 작품이 몇 권 나왔다. 다행이 두 권은 읽었다. 이 시리즈는 현재까지 모두 열세 권이 나왔다고 한다. 예전에 마이클 코넬리의 시리즈가 나오길 바랐는데 그대로 된 것을 감안하면 아주 가능성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단순한 나의 희망이다. 그리고 엘비스 콜의 동료인 조 파이크 시리즈도 있다고 하니 기다리는 즐거움이 두 배다. 이것 역시 나올 때 이야기지만.

 

솔직히 말해 이야기의 전개나 설정은 그렇게 신선하지 않다. 오히려 낯익다고 해야 하나. 이렇게 된 것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가 경찰 드라마 작가였다는 것도 하나일 것이고, 이런 작품들이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친숙한 설정과 전개로 익숙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충격적인 반전을 이용해서 독자와의 두뇌싸움을 벌이지 않는다. 꼬고 비트는 설정도 특별히 없다. 있다면 강한 캐릭터를 가진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과 현실적인 수사와 경찰 내부의 문제 등이다. 작가는 이렇게 흔한 혹은 빤한 재료를 가지고 등장인물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좋은 작가들이 자주 보여주는 능력이다.

 

엘비스 콜은 탐정이다. 세계 최고를 외치고, 스스로 유머 감각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속된 말로 자뻑과 유머의 경계를 오고 간다. 이런 외형적인 모습은 그의 진실된 능력을 숨기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물론 그를 아는 사람들은 늘 숨겨진 모습을 경계하라고 말하지만. 소설의 도입부는 화산재가 날리는 도시의 풍경을 보여주지만 진짜 재미는 애인인 루시의 이삿짐에서 생긴다. 여친의 소파를 여러번 옮기면서 과장된 표현을 사용한다. 처음에는 당연히 뭐지? 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동료 조 파이크에게서 전화가 온다. 아는 사람의 딸 카렌 가르시아가 사라졌다는 내용이다. 납치, 혹은 유괴가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실제는 다 큰 성인 여성이다.

 

자수성가한 거부 프랭크는 경찰에게 연락해서 딸의 실종을 말했지만 어른 여성이 사라진 것 가지고 바로 수사에 바로 착수하지 않는다. 이에 불만을 품은 그가 탐정 일을 하는 조에게 연락한 것이다. 조는 그가 사위로 삼고 싶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수사는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카렌의 시체 발견으로 상황이 바뀐다. 이제는 누가 죽였는지 살인자를 찾아야 한다. 도시의 강력한 후원자인 프랭크는 엘비스 콜과 조 파이크가 수사 과정에 참여하길 바란다. 신고 후 바로 수사에 들어가지 않는 탓에 경찰이 또 무언가를 숨길 수 있거나 그 내용을 전달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의 거대한 부는 이제 경찰 수뇌부를 움직이게 만든다.

 

조는 경찰 살인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실제 그의 동료가 수사 중에 죽었다. 이번 이야기에서 조 파이크의 과거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면서 그 범위를 확장한다. 선글라스 뒤편에 아주 파란 눈동자를 숨기고 다니는 이유도 같이 나온다. 그의 이야기를 보다 보면 한 사람의 성장기에 가정이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미치는지, 그 영향력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개인은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알 수 있디. 조의 경우는 좋은 쪽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아주 무서운 육체적 정신적 능력을 보여준다. 어떻게 폭발할지 알 수 없는 그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그리면서 읽는 재미도 상당하다.

 

이 시리즈를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 보니 소설 속에서 시점의 변화가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엘비스의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이 교차하는데 이것도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다. 경찰은 엘비스 일행에게 중요한 정보를 숨기고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프랭크가 걱정한 그대로다. 하지만 이 사건이 연쇄살인범의 소행이란 것을 안 순간 분위기가 바뀐다. 적당한 만큼 숨겨야 한다. 이것이 엘비스와 조에게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그들은 더 돌아가야 하고, 사건의 핵심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둘은 능력은 천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연쇄살인범의 존재와 그 이유에 대한 부분을 그렇게 깊숙하게 파고들지 않는다. 샘의 아들이란 살인자가 특별한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인 후 더욱 그렇다. 프로파일링으로 예측한 대상자가 나타나지만 잘못된 분석이다. 프로파일링의 환상을 단숨에 깨트린다. 엘비스의 수사는 여형사 돌런과 함께 하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다. 동시에 돌런이 엘비스에게 끌린다. 감정이 뒤섞이면서 관계가 꼬인다. 사건의 수사는 더디다. 언제나 그렇듯이 수사는 천천히 하나씩 조사하는 과정에 그 윤곽이 드러난다. 과거를 연결하고, 그 연결고리를 하나씩 들여다볼 때 드러난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장면들이 나온다. 중간에 보여준 문장들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개성 강한 캐릭터의 등장인물들은 그 재미를 배가시킨다. 시간이 나면 가지고 있는 이 시리즈를 천천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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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너를 잃었는가 미드나잇 스릴러
제니 블랙허스트 지음, 박지선 옮김 / 나무의철학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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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우울증의 무서움을 안게 꽤 오래되었다. 주변 사람들의 직접적 경험보다 그들이 들은 이야기가 먼저였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조금 더 생각하고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씩 공감되었다. 이런 공감은 친구의 아내와 책을 통해 점점 깊어졌다. 그래서 언론에서 유아 살인이나 구타 등이 나오면 ‘왜 그렇게 했을까?’에 더 눈길을 준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엄마라는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 하면서 안타까움을 내뱉지만 말이다. 사실 이런 것을 머릿속에 담고 소설을 읽었다. 그녀는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하고.

 

엄마라는 말에 강요되는 수많은 의무와 책임은 육아에 전념하는 모든 엄마에게 무거운 짐이다. 아기와 행복하기만 하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기를 키워본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힘들고, 힘들고, 힘들다. 독박육아라면 더욱. 그렇다고 이 엄마들이 아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순간의 고통과 힘겨움이 잠깐 폭발했을 뿐이다. 어떤 순간에는 조금 더 많이 더 심하겠지만. 수전 웹스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생후 12주 된 아들을 죽였다는 판결을 받는다. 산후우울증이란 진단 덕분에 일반 감옥보다는 치료감호소에 수감된다. 가석방으로 풀려났고, 이름을 바꾼 후 다른 삶을 살려고 한다. 이런 그녀에게 한 장의 사진이 전달되면서 상황이 뒤바뀐다.

 

딜런. 그녀의 아들 이름이다. 그녀에게 전달된 사진 뒤에 이 이름이 적혀있다. 누군가의 악의적인 장난일까? 그리고 계속해서 그녀 주변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집에 누군가가 침입하고, 부서지고, 낙서한 흔적이 있다. 그녀의 가방에는 그녀의 사건을 다룬 신문 기사가 들어있다. 누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아들을 죽였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가 그녀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이때 그녀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기자라고 말하는 닉이다. 그녀의 절친인 캐시는 이 남자를 이상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닉이 쓴 기사를 검색한 그녀는 그의 도움을 받고 싶다. 아니 정확하게는 사실을 알고 싶다.

 

수전의 시점에서 하나의 이야기가 진행된다면 과거의 시점에서 일어난 일들이 간단하게 중간중간 삽입된다. 빌리와 잭의 이야기다. 이 둘이 어떻게 만났고, 어떤 우정을 쌓았는지 간단하게 보여준다. 수전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이 둘을 만날 수밖에 없다. 내 경우에는 과연 수전의 시간 속에 등장하는 남자 중 누가 빌리와 잭인가 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잭이 점점 더 악당으로 변했고, 이 사실이 나로 하여금 이들의 정체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현실 속에서 마크와 닉이 가장 유력했다. 그러다 이야기의 방향이 조금씩 틀어진다.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작가는 중간까지 상당히 혼란스럽게 이야기를 이끌고 나간다. 잘 읽히지만 몇 가지 의문이 생기고, 상황들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단순할 것 같았던 사건이 전혀 의외의 방향으로 전환되면서 복잡해진다. 사진 속 아이가 진짜 딜런일까 하는 의문이 생기고, 그렇다면 이런 사실을 그녀에게 전달하는 사람은 누구며 왜 이런 행동을 할까 하고. 동시에 가장 수상한 남자인 닉의 정체는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계속 이어졌다. 범인은 언제나 가장 가까운 사람인 경우가 너무 많았기에 더욱 그랬다. 그리고 닉의 외모에 빠진 수전의 모습은 조금 당혹스럽다. 단순한 호감 이상이기 때문이다. 이 감정이 또 하나의 가능성을 암시하면서 상황을 어지럽힌다.

 

한 엄마의 산후우울증으로 인한 유아살인이라는 단순한 것 같았던 모습이 새로운 사실들로 인해 점점 복잡해진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기억은 재판 과정 속에서 나온 것과 다르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보면서 충분한 설명이 빠진 것 같다. 거대한 상실과 충격이라고 하지만 치료감호소에 머무는 동안 충분히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물론 수전처럼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자료에 더 집중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밝혀진 충격적인 상황과 설명도 생략된 부분이 많아 추측과 이야기의 맥락으로 채워넣어야 한다. 구성과 재미는 충분하지만 세부적인 부분이 조금 아쉽다고 해야 하나. 다음 작품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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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혼자가 되다
이자벨 오티시에르 지음, 서준환 옮김 / 자음과모음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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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독성이 생각보다 좋다. 제목과 책 소개를 통해 예상한 장면들보다 조금 약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놀라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유명한 윌리엄 디포의 <로빈슨 크루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의 가치는 후반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혼자가 된 후 일어난 일들이 다시 인간사회로 왔을 때 벌어진 일들과 겹쳐지고 다시 돌이켜보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 이야기 속에서 전반부는 관찰자였고, 후반부는 저절로 감정이입이 조금씩 되었다.

 

소설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편과 이곳이다. ‘저편에서’는 루이스와 뤼도비크가 남미 대륙의 끝인 파타고니아와 혼 곶 사이의 무인도에 갇히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곳에서’는 루이스가 구조된 후 그녀를 둘러싼 기자의 시선과 살아남은 그녀의 고뇌와 혼돈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더 흥미로웠던 것은 역시 살아남은 후의 이야기다. 예전 같으면 살아남기 위한 과정에 더 집중했을지 모르지만 이미 많은 책이나 영화 등을 통해 이와 비슷한 설정을 보았기에 갑자기 혼자가 된 그녀가 느끼는 감정들에 더 관심이 갔다. 실제 이야기의 분량만 놓고 본다면 ‘저편에서’가 훨씬 많다.

 

‘저편에서’의 장을 보면 이 커플은 모험심 강한 평범한 사람들이다. 자신들의 모험과 경험을 남들에게 자랑할 정도의 목적으로 이 섬에 왔다. 기후 상황 등을 봤을 때 몇 번 돌아갈 기회가 있었지만 뤼도비크의 고집과 원시적인 아름다움에 취해 그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그들이 이 섬에 상륙한 것도 사실은 불법이다. 불법과 안이한 몇 가지 상황 때문에 갑자기 몰아친 폭풍에 그들이 타고 온 배가 사라진 것이다. 가까운 섬이라도 있다면 유일한 동력선인 모터보트를 타고 갔겠지만 사방 어디에도 없다. 그들은 완전히 고립되었다.

 

재미난 점은 그들이 고립된 섬이 이전에는 활발한 경제활동이 있었던 섬이란 것이다. 고래, 강치 등을 잡아 기름을 짜고, 가죽을 만드는 등의 호황 속에서 발전했던 섬이다. 그 흔적이 섬 곳곳에 남아 있다. 그들이 머문 집도 그 당시에 지어진 집이다. 물론 방치된 세월만큼 많이 파손되었지만 비바람을 피할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먹는 문제가 남는다. 물은 섬에서 구할 수 있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니 다른 음식이 전혀 없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펭귄을 잡아먹는 것이다. 상당한 양의 펭귄을 잡지만 보관 실패, 요리 기술 부족 등으로 음식이 부족하다. 강치를 잡기 위한 장면을 보면 평범한 성인 남녀가 이런 사냥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서툰지, 위험한지 잘 보여준다.

 

생존을 위해 이 두 남녀가 펼치는 행동은 아주 원시적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이전에 섬에 살던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도구가 있다. 불을 피우는 라이터도 있다. 이런 도구는 고립된 곳에 사람이 떨어져나갔을 때 아주 유익한 도구가 된다. 그렇다고 해도 문명 속에서 안락한 삶을 누린 사람들에게 사냥과 재료 손질과 음식 보관 등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극지탐험가들이 쓴 수기에 나오는 간단한 문장 하나 뒤에 숨겨진 힘겨움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둘의 갈등은 생각과 경험의 차이에서 비롯해 점점 자란다. 그래도 이 연인은 혼자 된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생존을 위해 둘은 협력한다.

 

‘이곳에서’는 극지에서 생존한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라는 이미지로 루이스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그녀를 심층취재하려는 기자가 있고, 그녀를 매니저하는 사람도 나온다. 하지만 가장 중심에 있는 인물은 루이스다. 혼자 살아남았다는 것에 혼란을 겪고 있다. 엄청난 죄책감이 시달리는 낌새도 크게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그녀가 보여준 몇 가지 행동은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을지 모르지만 한 개인의 생존을 생각하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극한 생존 경험이 주는 정신과 의지의 공백은 때로는 일상의 평범함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일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은 오히려 더 힘겹다. 연인의 부모에게 전화하는 것도 몇 번이나 망설이다 하게 되고, 갑자기 찾아온 죄책감에 휩싸인다. 삶의 의지조차 없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을 떠난 그녀가 일상을 벗어나면서 자신을 다시 되돌아보고,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경험한다. 개인적으로 이 과정이 시선을 끈다. 조금씩 감정이입하게 된다. 새로운 삶을 살길 바라면서 그녀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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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코너 방의강 시리즈
방진호 지음 /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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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쾌한 액션물이다. 거침없이 질주하는 주인공에 초점을 맞추었다. 무협의 현대물 버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이야기의 기본은 복수다. 아내를 죽인 자를 찾아서 복수한다는 줄거리인데 그 과정이 아주 단순하다. 물론 이 단순함에 복선을 깔고, 반전을 집어넣어 살짝 다른 느낌을 준다. 개인적으로 이 마지막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다. 빠르고 신나게 읽히는 부분에서 문제점이 많이 나오지만 장르의 특성상 그냥 넘어가야 할 부분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외국의 킬러물처럼 아주 꼼꼼하고 치밀한 조사가 있어야 한다. 한국 장르 특성 상 이런 경우는 흔하지 않다.

 

평온한 일상의 풍경으로 시작한다. 정체를 숨긴 전설적인 킬러는 자기 집에 머무는 고양이와 눈싸움을 한다. 이것을 본 아내가 한심한 듯 말한다. 아내가 밖으로 나간 후 자동차 사고 소리가 들린다. 아내가 차에 치인 것이다. 병원에 아내를 데리고 간다. 목숨이 위태롭다. 다행히 급한 것은 중단된 것 같은데 집에 설치한 CCTV를 확인하러 간 사이에 누군가가 아내를 죽이려고 한다. 이 장면을 본 그는 폭발한다. 범인을 잡고 그 윗단계를 하나씩 찾아올라간다. 그는 이 과정에서 결코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아내의 불륜이다.

 

사람을 죽여 모은 돈을 숨겨놓고 평범한 일상을 산다. 아내는 이 일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녀를 죽였다. 처음 든 생각은 그에 대한 복수였다. 그런데 아니다. 우연한 사고일까? 그렇다면 그의 집에 들어와 CCTV를 들고 간 사람은 왜 그런 것인가? 아내를 죽이려고 한 인물의 배후는 또 누군가? 이런 의문은 아내가 죽었다는 말에 그냥 사라진다. 이성은 사라지고, 폭발할 듯한 복수의 감정만 남아 불탄다. 첫 조사에서 마주한 배후의 일원에게서 가져온 핸드폰 자료와 함께 아내의 불륜도 드러난다. 하지만 이 불륜이 그의 복수심을 사라지게 만들지는 못한다.

 

그 다음은 복수를 위해 움직이는 그와 그를 돕는 사람과 그를 죽이려는 사람들의 대결이다. 시체를 처리하는 청소업자가 나오고, 청부업을 중개하는 사람도 나온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아내를 죽인 범인이다. 명확하게 이 부분을 정하지 않고 이야기는 진행된다. 누구일 것이란 추측만 하게 만든 상태에서 말이다. 항상 이런 부정확함은 살인 대상의 확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단계를 한 번 더 거쳐야 하고, 적도 이에 준비할 시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덕분에 더 많은 액션이 펼쳐지고, 시체는 더 늘어난다. 이 와중에 행운도 작용하고, 실력은 더욱 빛난다. 주저함이 없는 살인은 아마추어들이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가볍게 보기 좋다. 이런 살인물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별로일지 모른다. 무협을 앞에서 말한 것도 바로 가볍고 살인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조연들의 무의미한 죽음과 강력한 주인공의 액션과 적당한 수준의 악당들. 하지만 뭔가 치밀하고 정보가 풍부하면서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를 원한다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지만 그냥 먼치킨 같은 주인공의 활약을 보려고 한다면 권하고 싶다. 재벌 같은 권력자의 무책임하고 자극적인 행동에 대한 통쾌한 복수는 또 하나의 덤이다. 그리고 곳곳에 살짝 심어놓은 단서는 마지막에 분명하게 그 의미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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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증명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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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에서 변호사로 변한 작가의 첫 작품집이다. 이 단편집에 실린 단편들은 대부분 다른 책에 실렸던 적이 있다. 나에게 다행이라면 가지고 있지만 읽지 않은 단편집 속 작품들이란 것이다. 물론 <미스테리아> 같은 책은 현재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에 작가는 이 작품들에 대한 설명을 간단하게 덧붙여 놓았다. 개인적으로 모든 단편을 읽고 난 후 봤을 때 그렇게 많은 단서를 제공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이야기 속에 눈길을 끄는 이야기 하나가 있었다. 현실 사건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 있지만 발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보는 순간 무슨 사건일까? 언제쯤 나올까? 하는 호기심과 기대로 가득해졌다.

 

전직 판사였지만 그가 법정극을 그렇게 많이 쓰지는 않았다. 그가 쓴다면 가장 잘 아는 부분이 될 텐데 그는 먼길을 돌아갔다. 이 작품집 속에서도 법정극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작품은 두 편 정도다. 표제작인 <악마의 증명>과 다른 작품의 이름을 빌린 <구석의 노인>이다. <악마의 증명>은 그 유명한 모리우치 세이치의 <인간의 증명>을 자연스럽게 떠올려준다. 하지만 이야기의 기본은 그것과 다르다. 악마의 증명은 살인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트릭으로 이용한 것을 두고 말한다. 같은 사건으로 두 번 기소할 수 없다는 그 법칙 말이다. 작가는 미묘한 서술 트릭을 사용하여 이 악마의 증명을 깨트리는데 조금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구선의 노인>은 하나의 살인사건을 변론하는 젊고 패기만만한 변호사를 통해 이야기한다. 자신의 논리로 사건을 잘 해결해나가는 그의 모습은 멋지다. 하지만 그가 놓치는 것이 있다. 이것을 지켜본 한 노부인의 모습은 안락의자 탐정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변론하는 동안 본 동영상과 자료와 피의자의 머리와 반지 등을 가지고 그녀가 추론해낸 사실은 인생의 다양한 경험이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다. 물론 이 추론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심정적으로 더 납득할만한 내용인 것은 분명하다. 재미난 것 하나는 이 할머니의 이름이 진짜 작가 어머니의 이름이란 것이다.

 

호러물로 구분할 수도 있는 작품도 두 편 있다. <외딴집에서>와 <죽음이 갈라놓을 때>다. <외딴집에서>는 시점을 이용해 반전처럼 공포를 극대화시킨다. 짧은 분량이지만 자극적인 장면과 연출로 예상을 빗나간 모습을 보여준다. <죽음이 갈라놓을 때>는 한 살인자의 수기 형식인데 친구와 친구의 애인을 살해한 자의 이야기에 몰입하는 정도에 따라 그 서늘함이 달라진다. 눈에 보이는 객관적 사실보다 무당이나 귀신이 씌였다는 등의 초자연적인 현상에 집중하면 사건의 핵심이 완전히 바뀐다. 이런 불안감과 서늘함을 도입부와 마무리를 맡은 판사의 심리와 행동이 배가시킨다.

 

판타지로 분류해도 큰 무리가 없을 두 편이 있다. <정글의 꿈>과 <시간의 뫼비우스>다. 사실 <정글의 꿈>을 읽을 때는 연쇄살인을 기대했다. 추리소설이란 장르와 분위기를 보았을 때 이전에 읽었던 작품과 같은 것이 아닐까 미리 짐작한 탓이다. 이 기대를 넘어선 것은 좋은데 다른 설정으로 바뀐 것은 조금 아쉽다. <시간의 뫼비우스>는 가장 길고 자전적인 요소가 많지 않나 생각한다. 같은 시간의 삶을 백여덟 번이나 산 남자의 이야기다. 판사였지만 너무 꼿꼿해서 혹은 여유가 없어 피의자 신분으로 떨어진 그의 이야기는 눈여겨 볼 대목이 많다. 판사를 하면서 친구가 한 명씩 떨어져나갔다고 할 때 제대로 된 판사란 이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사랑의 블랙홀>이 하루가 반복된다면 이 소설은 30년이란 것이 다르고, 자신이 변화를 만들어낼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단순히 같은 경험을 다시 할 뿐이다.

 

<선택>과 <킬러퀸의 킬러>는 다른 작품들보다 추리적 요소가 강하다. <선택>의 변호사는 <악마의 증명> 속에서 기발한 발상을 한 호연정 검사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더 많은 작품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자신의 내면 속 모습이 부족해서 아쉬게 많은 출현을 못했다고 한다. 폭우와 고속으로 달리는 차, 단숨에 왼손목의 동맥을 자른 것과 추락한 것들이 엮어 내놓는 이야기는 법리 문제가 아니다. 강한 모성애와 추론의 영역이다.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도 법정이 아니다. 감성의 영역이다. <킬러퀸의 킬러>는 좀 더 큰 스케일을 생각했다가 반전에 놀란 작품이다. 액션을 기대했는데 추리작가의 놀라운 추리 때문에 그 기대가 사라졌다. 현실 속 살인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대부분 우발적이고 감정적인 순간에 의해 발생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더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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