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함대 1 - 미중전쟁 가상 시나리오
피터 W. 싱어.오거스트 콜 지음, 원은주 옮김 / 살림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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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전쟁 가상 시나리오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부제처럼 이 소설은 미국과 중국의 전쟁을 다룬다. 가상의 미래를 배경으로 이 두 국가가 싸우는데 가상의 최첨단 무기와 해킹 등이 총 동원된다. 작가들의 풍부한 지식은 읽으면서 감탄하게 되지만 그 이미지가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지 않는 대목도 조금 많이 있다. 아마도 내가 그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현실과의 괴리 때문일 것이다. SF장르로 구분하는 것도 가능할 듯한데 보통 이런 소설은 그렇게 분류는 하지 않는다. 온갖 무기와 새로운 기술 등은 다가올 미래를 섬뜩하게 만들기도 한다.

 

모두 읽은 지금 머릿속에 한 작가가 떠올랐다. 테크노 스릴러의 창시자라고도 불렸던 톰 클랜시다. 개인적으로 평가한다면 톰 클랜시의 작품에 미치지 못한다. 무서울 정도로 현실을 그린 소설이라고 하지만 미래의 가상세계를 설정하고 있다. 몇 가지 기술들은 가까운 미래에 가능할 것 같지만 몇 가지는 시대를 더 많이 앞선 듯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나의 지식 부족일 수도 있지만 과학을 다루는 부분에서 드러나는 지식은 나를 완전히 압도한다. 다만 많은 인물들을 등장시켜 풀어내는 방식이 집중력을 중간중간 흐트려 놓는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후반부에 실제 해상 전투가 벌어지는 장면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볼 때 최고의 전투 장면이다.

 

전쟁이란 설정 때문에 하나나 몇 장면만 등장하고 사라지는 인물들이 많다. 반면에 끝까지 등장해서 그 존재감을 빛내는 인물도 있다. 특히 시먼스와 그의 아버지 마이크는 부자 갈등과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면서 진짜 주인공이란 느낌을 준다. 여기에 애인이 죽은 후 냉혹한 살인자로 변신한 캐리나 하와이에서 게릴라 활동을 하는 해병대 도일과 푸시킨의 시를 사랑하는 러시아 장교 마르코프 등은 상황을 입체적으로 만드는데 일등 공신들이다. 이들이 있어 전쟁이 벌어질 때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 중 몇 가지를 들여다볼 수 있다.

 

흥미로운 도입부에서 미국은 중국의 전격적인 공격에 의해 패배한다. 하와이를 빼앗기고, 인공위성들은 파괴된다. 여기에 인터넷도 해킹되어 힘의 추가 중국으로 넘어갔다. 기본 부품들을 중국에 의존하는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다루는데 어느 정도 공감한다. 너무나도 무력하게 미국이 무너졌다고 생각하는 와중에 빼앗긴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미국의 노력은 계속 되었다. 단지 작가가 이 부분을 자세하게 그려내지도 강조하지도 않았다. 이 부분까지 자세하게 그려내었다면 분량은 지금보다 훨씬 늘어났을 것이다.

 

우주정거장을 통해 지구를 관찰하고 감시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실제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다. 폐쇄적인 사이버 공간들을 어떻게 해킹하는지 보여주는 장면은 아주 기발하다. 개인의 통신기기를 매개로 삼았다는 설정에 깜짝 놀랐다. 이 기발함은 사이버 전쟁으로 한두 번 정도 이어질 것 같은데 어느 순간 무게 중심이 다른 곳으로 너무 넘어갔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부품들 때문에 완전히 무력화되어 있다. 기존의 테블릿 등에서 전자부품을 빼서 전자기기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까지 왔다. 인터넷으로 연결되면 중국의 해커가 들여다볼지 알 수 없다. 여기에 또 하나 중요한 전략무기로 드론이 사용된다. 원격 조정으로 원거리 타격을 하고, 비행기와도 전투를 치르는 장면은 새로운 전쟁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이 가상 전쟁 시나리오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역시 미국의 반격이다. 중국의 기습 공격 이후 세계를 손에 넣은 중국의 공격은 어떻게 보면 너무 안일하다. 전선이 하와이 쪽에서 멈춘 것은 완벽한 승리를 거둘 기회를 놓친 것이나 마찬가지다. 너무 자만했던 것일까? 이 때문에 게릴라와 정규군의 반격이 가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전면전이 아니다. 국지전이라는 사실이 조금은 아쉽다. 만약 전면전이었다면 훨씬 많은 분량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기습전으로 승리한 중국의 사후 모습은 그 시간에 비해 너무나도 무력해보인다. 마르코프가 보여준 통찰력을 보여주는 중국군이 없다는 것은, 혹은 다른 지역에만 있다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현실적인 전투 장면이 나오지만 엄청난 긴장감을 주지 못하는 것은 이런 설정 탓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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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보이 - 2018년 제14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박형근 지음 / 나무옆의자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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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상 열네 번째 대상 수상작이다. 개인적으로 최근에 가장 선호하는 문학상 중 하나다. 며칠 전 김별아의 에세이 한 편을 읽었는데 이번에는 세계문학상 수상작품이다. 단순히 수상작품이란 것만으로도 유혹적인데 더 끌리게 만드는 심사평이 있었다. “어깨에 힘을 빼고 어떤 '폼'도 잡지 않으면서 주제를 향해 빠르고 정확하게 나아간다”란 평이다. 어떤 글이길래 이런 평이 나올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렇게 받은 책은 생각보다 얇았고,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다만 주제에 대한 부분은 조금 머뭇거리게 된다.

 

스페이스 보이. 한 지구인이 중력을 벗어나 우주로 나간다. 나가기 전에 수많은 훈련을 받는다. 무중력에 적응하고, 중력을 벗어날 때 생기는 더 강한 중력을 이겨내기 위해서다. 그런데 주인공이 지구를 벗어나자마자 눈을 뜬 곳은 아주 낯익은 풍경을 가진 곳이다. 우리가 흔히 영화에서 본 우주가 아닌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풍경들이다. 이것이 단순히 이미지뿐이라면 만지자마자 사라지겠지만 촉감과 후각에 그대로 반영된다. 그리고 칼 라거펠트를 닮은, 아니 똑같은 노인 한 명이 그 앞에 나타난다. 그가 바로 진짜 외계인이다.

 

이 공간은 외계인이 지구의 미적 기준으로 꾸며놓은 일종의 세트장이다. 저예산 영화의 세트장이 아니라 실제와 별 차이가 없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주인공 김신은 자신의 추억과 기억을 더듬는다. 외계인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김신의 마음을 읽고 그대로 세트장을 만든다. 그의 기억이 선명할수록 세트장은 더 세밀해진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잊고자 하는 기억 속으로 한 발을 내딛는다. 뇌 속을 탐험하는데 기억과 감정이 엮인 곳을 발견한다. 질척이는 이곳은 그가 없애고 싶은 기억들이 살고 있다. 물고기처럼 움직이는 이것들을 잡아 죽이면 된다. 하지만 실제 마음은 다르다.

 

김신이 우주에 머문 시간은 겨우 2주다. 실제 그가 산 곳은 세트장이지만 지구인들은 우주정거장 속에서 살고 있는 가짜를 영상으로 본다. 시간이 되어 다시 지구로 귀환해야 한다. 이때 외계인이 그에게 소원을 말하라고 말한다. 그들의 능력이라면 세계최고의 축구선수나 로또 당첨이나 최고의 미남 등도 가능하다. 정말 부러운 능력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 의식의 탐험을 더 부각시킨다. 개인적으로 마무리를 보기 전까지 외계인과 함께 의식과 기억을 더 깊이 파고들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뭐 그럼 훨씬 무거운 소설이 되었겠지만.

 

지구 귀환부터가 후반부다. 몇 년 전 이벤트로 위성궤도로 갔다가 돌아온 이소연처럼 그도 언론의 관심을 받는다. 그러다 기획사와 손을 잡고 연예인처럼 활동한다. 빡빡한 인기 연예인의 일정을 소화하고, 베스트셀러를 내고, 인지도와 인기를 높인다. 사실 이 장면들을 읽으면서 앞에 말한 우주에서의 체류를 더 깊이 파고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인기인으로 바뀌기 위한 일정들이 현실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도, 그의 능력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본다고 해도, 그가 우주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 추억이 무엇인지 안다고 해도 말이다. 이 생각은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바뀌지만.

 

전반부가 조금 무거웠다면 후반부는 조금 가벼웠다. 그 포문을 여는 첫 부분은 귀환 후 방송에서 한 여성 엠씨가 그의 혈액형을 말하고 질문을 던지는 장면이다. “그제야 느꼈지. 아, 드디어 빌어먹을 지구에 돌아왔구나.” 이것과 함께 허세와 자의식 부족 등으로 흐르는 대로 따라갔던 그가 마지막 장면에서 “그래, 이제야 인간다워졌군.”이란 말을 들을 때 왜 두 부분으로 나누었는지 조금 이해가 되었다. 그 앞에 나온 뜬금없는 과거의 사실 하나는 또 다른 재미다. 작가가 더 나아가지 않고 겨울의 문턱에서 멈춘 것은 좋은 선택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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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걷는 시간 - 소설가 김별아, 시간의 길을 거슬러 걷다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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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몸이 게을러져서 잘 걷지 않지만 한때는 어지간한 거리는 걸어 다녔다. 한때는 종로와 광화문과 을지로를 두 발로 얼마나 자주, 열심히 걸어 다녔던가. 어느 순간 이 발걸음은 탈 것으로 바뀌었다. 몸이 무거워진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걸으면서 볼 것이 없어진 것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높은 빌딩이 많아지면서 도시를 걷는 사람들의 시선은 빌딩 숲과 차량으로 옮겨갔다. 바쁜 발걸음에 여유는 사라지고, 만남의 장소였던 서점은 조금씩 없어졌다. 노포들은 사라지거나 빌딩 속으로 들어가면서 그 정취를 잃었고, 사람들은 이제 그곳을 돌아다니지 않는다. 이런 장소를 작가는 표석으로 새롭게 되살렸다. 최소한 나에게는 말이다.

 

20년대와 30대를 보낸 종로와 광화문에서 제대로 한 번 눈길 주지 않은 것들 중 하나가 표석이다. 지나가다 본 적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머릿속에 담아놓지는 않았다. 아마 이 책에 나오는 몇 개의 표석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여행 가서 본 수많은 표지처럼 순간의 알림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런데 작가는 이 표석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엮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을 간략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곳에 있던 건물들은 사라졌지만 기록으로 남고 이야기로 남아 작은 표석으로 변했다. 뚜벅이의 발길은 그 흔적 속에서 사람을 찾아내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길러낸다.

 

조선의 수도였던 서울은 예전에 비해 엄청 영역이 넓어졌다. 사대문 밖의 일부만 한양이었던 것이 서울의 성장과 더불어 더 커진 것이다. 이 커지는 과정 속에 옛 건물들은 하나씩 사라지고 흔적만 살짝 남았다. 이 흔적 중 일부가 표석으로 표시되었는데 작가는 월간지에 연재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찾아간다. 19개월 동안 연재한 것이니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다. 이 시간의 변화는 글과 내용에도 조금씩 반영되어 있다. 모두 읽은 지금 가끔 책속에 나왔던 작가의 아들은 군대 제대를 했을 것이다. 이런 일상의 작은 변화들이 시간 속에서 쌓여 있다. 그 중 일부를 표석과 표석을 찾는 과정 속에서 찾아내어 이야기로 만들어내었다. 그 중에서 가장 와 닿는 것은 당연히 어머니 이야기다.

 

50년 왕도였던 고도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한 외국인이 가이드북을 들고 와서 문화재를 찾는다고 했을 때 주변에 이런 것이 있나? 하고 놀랐던 적이 있다. 표석도 마찬가지다. 총 다섯 장으로 나눠 풀어낸 이야기는 고도의 흔적을 사료와 소설과 영화 등으로 연결되어 풀려나온다. 조금은 충격적인 백정들의 탈조선 행위는 ‘왜?’라는 물음보다 그 현실에 더 눈길이 갔다. 명성황후, 민비 등으로 불렸던 한 인물의 우상화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우리가 경계해야할 역사의 사실이다. 사도세자 부분에서 한때 내가 열광했던 음모론을 넘어 어머니로 다가간 것은 인간의 가장 본성을 건드린다. 모성. 아들을 둔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읽으면서 낯선 지명을 너무 많이 보았다. 지금도 지나가는 곳이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을 읽었다고 내가 그곳을 찾아가지 않을 것이란 것 정도는 안다. 다만 우연히 지나가다가 그 표석을 보면 이전과 다른 생각으로 잠시나마 역사와 그 시대의 삶을 떠올릴 것 같다. 삶과 한 도시를 다른 시각으로 본다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신선하다. 무심한 일상을 깨운다는 문구처럼 최소한 읽는 동안은 일상을 다른 시각으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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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은 내게 도와 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신은
한스 라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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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은’ 시리즈 3번째 작품이다. 첫 작품은 읽었고, 두 번째 작품 <악마도 때론 인간일 뿐이다>는 아직 읽지 않았다. 한 작품을 건너뛰었지만 이 작품의 재미를 누리는 데는 아무 지장 없다. 오히려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두 번째 작품에 대한 관심이 더 생겼다. 첫 작품의 만족도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은데 이 작품은 나로 하여금 정신없이 읽게 만들었다. 스스로 신이라고 부르는 아벨과 평범한 심리 치료사 야콥 야코비의 행동들이 언제나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바꾸기 때문이다.

 

시작은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야콥이 강도를 당하면서다. 이 모습을 본 노숙인은 음모론을 강하게 말한다. 그날 만나기로 한 전처 엘렌이 준 시계는 그의 예상을 벗어난 고가의 제품이다. 이 일련의 사건들 속에 그는 낯선 한 인물을 본다. 바로 전작에서 스스로 신이라고 말한 아벨 바우만이다. 야콥은 아벨이 묻히는 것을 직접 봤다. 그런 인물을 두 번이나 본 것이다. 단순한 환상이라고 하기에는 두 번의 경험은 너무 강하다. 전작에서도 알고 있었지만 아벨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 이번에는 부활한 설정으로 나온다. 그리고 야콥에게 자신의 메시아가 되어 달라고 요청한다.

 

예수와 같은 인물이 되길 바라는 신과 달리 야콥은 그냥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이다. 한 사람이 두들겨 맞고 있는데 말로 이 난관을 헤쳐나가는데 이것을 본 한 여자가 다가온다. 아주 예쁜 그녀는 그의 마음을 흔들고, 자신들의 채식주의자 모임에 와달라고 요청한다. 야니카와의 만남은 그를 또 다른 세계로 이끌고, 그의 삶에 모험을 던져준다. 처음에는 대농장의 닭 여섯 마리를 풀어주는 것이었지만 나중에는 실험 대상인 원숭이를 구출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 아벨이 메시아의 사도로 세 사람을 데리고 온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은 야콥의 물건을 훔친 2인조와 노숙인이다. 갈 곳이 없는 이들은 모두 야콥의 집에서 살게 된다.

 

아벨은 새로운 십계명을 만들겠다고 말하고, 예수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고통을 받았는지 말한다. 이 모든 것들은 야콥이 원하는 일이 아니다. 오래 전 계획한 휴가를 가려고 한다. 그런데 이 아벨이란 인물이 그의 휴가 여행을 가로챈다. 동물보호단체의 질비아와 함께 떠난다. 아니 이런 무책임하고 자기 이익에 밝은 신이 있나. 자칭 신이 휴가를 떠나고, 남은 메시아 후보와 그 사도는 이웃을 방문한다. 이 방문을 통해 그들 주변에 관심을 받지 못하고, 삶의 희망이 사라진 이웃을 발견한다. 야콥이 아이들에게 선의로 내민 돈을 어떤 대가성으로 판단하는 장면은 우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이 작은 일은 야콥의 선한 의지를 일깨운다.

 

현실에서 선행은 돈이 필요하다. 육체적 활동만으로 현대인을 만족시킬 수 없다. 불우한 가정환경과 미래가 없는 삶에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역시 돈이다. 다음에 생기는 큰 에피소드도 바로 이 돈 때문에 일어난다. 현대는 착한 마음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적다. 나중에 아벨이 십계명도 너무 많다고 말하면서 하나만을 강조한다. ‘무관심하지 말자.’ 우리와 주변과 관계와 사물에 대한 관심을 말한다. 이것은 작가가 현대인들의 삶에서 찾아낸 하나의 계명이다. 관심이 너무 많으면 오지랖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무관심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사회의 부작용을 생각하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작은 관심일지도 모른다.

 

아벨의 보여주는 능력이 다른 사람들이 볼 때 확연한 기적으로 발전하는 경우는 없다. 이민자를 도와주려고 한 야콥이 깡패에게 당하는 장면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기적은 우리의 노력이 동반되어야 가능하고, 영화 속 초능력처럼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중요한 하나의 전제를 다시 한 번 말한다. 신은 사람들의 믿음으로 그 힘을 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벨이 가끔 보여주는 몇 가지 능력이 그가 신일 수도 있다고 믿게 만들지만 이 모든 상황과 난관을 돌파하면서 우리 사회를 비춰주는 인물은 평범한 심리치료사 야콥이다. 다음 편도 나온다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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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뉴스
안형준 지음 / 새움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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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들이 기레기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전부터다. 교과서에서 봤던 언론의 모습이 사라진 것은 수십 년이 되었지만 진실을 지키기 위한 기자들의 노력은 면면히 이어져 왔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한국의 언론은 엄청난 퇴보를 했다. 늘 이런 현상의 선두에는 권력의 시녀가 된 그 무리의 일부가 있다. 이런 현상이 비단 기자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예전 보았던 언론인을 생각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대담함과 끈질김과 뒤끝 있는 실행력은 오히려 이전 군사독재 시절을 능가한다. 이 소설은 그 시대를 겪은 기자들 삶의 일부를 빠르게 진행한다.

 

딥뉴스는 하나의 사건을 추적 보도하는 시사 고발 프로그램 이름이다. 사회 곳곳에 자리 잡은 부정부패를 찾아내 집중 취재한 후 보도한다. 화려한 보도 이력은 그 프로그램이 어떤 영향력을 끼치는지 알려준다. 원양어선에서 받은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이 전화가 의미하는 바가 밝혀지는 것은 거의 끝 무렵이다. 그리고 파랑새라고 불리는 유흥업소로 장면이 바뀐다. 속칭 텐프로 룸살롱이다. 한 여기자가 위장취업해서 탈세한 부유층의 비리를 파헤친다. 이 과정에서 하나의 정보를 얻고, 이것이 나중에 하나의 큰 줄기로 바뀐다. 바로 대권유력후보인 조경혜 의원의 비밀 출산설이다. 출판사는 은연중에 조윤선, 나경원, 박근혜 이 세 사람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고 알린다.

 

시사 고발 방송이 승승장구할 때 무엇이 방송될지 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정보다. 내부자가 흘리지 않는다면 알 수 없지만 어디에나 권력지향의 인물이 한 명씩 있다. 그리고 이 정보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인물들은 그 대상의 수족이 된다. 아직 방송국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이라면 이런 시도가 어느 정도 막아지겠지만 독립성은 언제나 멀고 먼 일이다. 이들이 파고드는 소재가 현실과 더 밀착되고, 권력과 가까워질수록 반대쪽의 저항은 더 강하다. 결국 딥뉴스의 폐지가 결정되고, 그 프로그램에 소속되었던 기자들과 방송작가들은 흩어진다. 하지만 투철한 기자의식을 가진 이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앞부분이 딥뉴스의 성공을 다루면서 방송국 내부 권력 변화를 다루었다면 후반부는 한 정치인의 숨겨진 과거를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바로 조경혜의 비밀출산이다. 개인사로 치부할 수 있는데 유력 정치인이다보니 문제가 된다. 흔히 말하는 검증이다. 여기에 최고위층의 비밀 쇼핑과 외환거래법 위반과 로비 등이 엮이면서 단순한 기사의 수준을 넘어선다. 후반부에 이것을 파헤치는 과정은 한 편의 멋진 스릴러 영화처럼 이어지는데 어떻게 보면 너무 쉽게 이루어진다. 정해진 수순을 따라 그대로 흘러간다고 해야 할까. 누군가의 말처럼 우주의 기운이 이들을 돕는 것처럼 보인다. 긴장감이 떨어지는 부분이다.

 

이 시사 고발 이야기 속에 로맨스가 빠질 수 없다. 사내커플로 썸을 타는 두 기자가 나온다. 이세진과 김다혜다. 이들의 썸은 왠지 80년대 로맨스처럼 다가온다. 눈치를 보고, 감정을 알아채고, 관계의 거리를 어느 정도 유지하려는 모습이 요즘과 조금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쉽게 사귀고 헤어지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지만 왠지 현실성이 없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반면에 해직방송기자의 삶을 다루고, 고뇌를 보여주고, 현실의 참담함을 드러낼 때 조금 더 깊이 들어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과정에서 이탈한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어떤 이유와 변명이 있었는지 등도.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들을 많이 넣으려다보니 전체적으로 균형이 무너진 느낌이다. 재밌고, 빠르게 읽히지만 조직과 개인의 고뇌와 문제가 많이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것은 각 인물을 평면적으로 밖에 드러낼 수 없는 한계가 된다. 읽으면서 누군가에게 몰입하거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적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간결하고 빠른 전개와 사실을 많이 다루려고 한 부분은 지난 시간 동안 한 방송국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어떻게 언론이 망가지게 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MBC의 숨겨진 이야기나 권력의 방송국 장악에 관심이 있다면 재밌는 참고 자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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