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임당의 뜰
탁현규 지음 / 안그라픽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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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간송미술관 연구원이다. 간송미술관에 대한 이야기는 워낙 많이 들었지만 한 번도 다녀온 적이 없다. 하지만 명성이란 것이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는 하나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처음 이 책을 봤을 때는 드라마 때문에 약간의 왜곡된 시선도 있었지만 책소개를 읽으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특히 ‘현모양처로 알려졌던 사임당의 생애를 말하는 대신 화가이자 예술가로서 사임당이 남긴 화첩 속 그림이 전하는 생명의 메시지를 이야기한다’고 했을 때. 그리고 이것이 나의 머릿속에 율곡 이이의 어머니가 아닌 화가 사임당을 떠올려주었다.

 

사임당의 뜰이란 제목처럼 뜰 속에서 볼 수 있는 풀과 꽃과 벌레 등을 그린 화첩을 해석한 책이다. 저자는 “뜰은 마당으로 들어온 작은 산수이다.”란 말로 이 시대의 한계와 의미를 동시에 부여한다. 한계는 유람이 자유롭지 못했던 행동의 제약이고, 의미는 이 때문에 조선 시대의 뜰을 우리가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이 없던 시절 화가가 남긴 그림 한 점은 그 시대의 풍경을 아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림 속 정보가 많을수록 관련분야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현재 잘 보이지 않아서 잘못 알고 있는 것도 가끔 생긴다.

 

책의 구성은 간단하다. 사임당의 화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부수적으로 매창의 화첩과 저자의 가상 인터뷰가 덧붙여졌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책의 첫머리를 차지하는 그림은 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묵포도와 쏘가리를 말한다. 그리고 같이 달린 해석은 앞으로 펼쳐질 화첩에 대한 이야기 방향을 보여준다. 그림의 도상학적 의미도 같이 넣어 왜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궐(鱖)이란 한자의 발음이 궁궐의 궐과 같아 급제하여 궁궐에 들어가는 것의 의미한다고. 이것은 나중에 다산과 풍요의 의미로 사용되는 과일 등과 이어진다.

 

사임당의 그림은 모두 세 곳에 보관되어 있다. 간송미술과, 국립중앙박물관, 오죽헌시립박물관 등이다. 저자는 보관된 곳 기준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런데 제목을 보면 사임당초충화첩, 신사임당필초충도, 신사임당초충도병 등으로 이름이 조금씩 다르다. 어떤 기준으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알려주는 설명이 없는 것은 조금 아쉽다. 그림의 크기를 알 수 없다보니 화첩과 도병이란 말로 추측할 수밖에 없다. 사임당의 사후 왜란으로 많은 작품이 사라진 것을 감안하면 이 정도라도 남아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사임당의 그림을 모사한 것을 둘러싸고 내린 저자의 해석은 깊이 생각할 바를 전한다. 논의가 더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하나의 그림을 보여주고 이 그림 속 화초와 벌레 등을 알려주면서 그 구도와 구성과 의미를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자를 우리말로 모두 풀어서 제목을 붙였는데 가끔 낯선 단어도 한둘 정도 보인다. 서양화의 기준으로 보면 정물화라고 하기도, 풍경화라고 하기도 그런 모습이지만 차분하게 들여다 보면 참 많은 것들이 들어 있다. 그냥 힐끔 한 번 본 것으로 부족하다. 수박의 크기나 위치나 색의 의미를 말하고, 나비의 개수와 방향이나 날개의 모습까지 다룬다. 개구리가 등장할 때는 먹이사슬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 오이, 수박, 가지 등이 자주 다루어진 것은 이 열매들이 의미하는 바 때문이다.

 

신사임당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사실 만들어진 것이다. 현모양처란 단어 자체도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것이란 설이 있다. 한국에 이 단어가 등장한 것이 1906년이라고 하니 후대에 의해 그 이미지가 고정된 것이다. 이런 그녀의 삶을 다른 방향에서 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큰 의미가 있다. 화가로서의 그녀의 삶을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자료의 부족 등으로 상상력으로 채워야 하는 부분이 많은 것은 아쉽지만 이 그림으로 인한 변화를 알려주는 대목은 머릿속에 담아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부끄러운 나의 무식함 하나를 말하면 매창을 기생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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