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대로도 충분해
빌 시누누 지음, 유윤한 옮김 / 지식너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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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 표지에 ‘여행 중에 깨달은 내 인생의 소중한 것들’이란 글이 있다. 내가 관심을 둔 것은 앞에 나온 ‘여행’이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은 ‘내 인생의 소중한 것들’이다. 그리고 이 저자의 업무 중 하나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문화 분쟁 조정가, 그는 전 세계를 누비며 각기 다른 문화를 연결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한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었다. 그가 문화의 충돌에서 생긴 것을 어떤 식으로 풀어내었는지 말이다. 역시 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그가 다닌 수많은 여행에서 배우고 깨달은 것들이 나의 이해와 경험과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고 해도 많은 부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어떤 부분에서는 너무 도식적이고 표면적이라 신선함이 떨어지기도 했다.

 

모두 아홉 장으로 나누어 이야기를 풀어낸다. 공간도 시간도 하나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자신이 여행하면서, 살면서 듣고 경험했던 일들을 주제별로 엮었다.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기, 재생의 시간, 가족의 유대감, 건강, 사랑, 당신의 성, 슬픔, 삶의 안전지대, 나의 손님 등으로 구분한다. 이 이야기들은 그렇게 길지 않다. 길어도 몇 쪽 되지 않는다. 어떤 이야기는 두 쪽도 되지 않는다. 이 간결한 이야기가 가슴 한 곳에 파고드는 순간도 있지만 가끔은 겉돌기도 한다. 저자의 경험이 일반적이지 않다고 느낄 때는 더욱 그렇다. 개인적으로 대한항공의 괌 착륙 사건을 다룬 부분에서 어색함을 많이 느꼈던 것도 바로 이런 부분이다.

 

저자의 직업이 항공사 직원이었다는 것과 세계 여러 곳을 여행했다는 것이 이 책과 같은 결과물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열린 마음과 친화력과 긍정적인 생각 등이 있어야 가능하다. 여행 중에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여러 사람이 앉는 자리 한 가운데 앉는다거나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한다는 등의 노력이 이어진다. 아니면 자신이 실수했을 때 상대방이 지적한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바로 그것을 고치는 모습은 쉬운 듯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이런 부분이 여행 속에서 그를 깨닫게 하고, 다양한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덕분에 나도 다양한 문화를 만나게 되었다.

 

저자는 미국인이다. 이 국적이 그로 하여금 다른 나라의 여유를 낯설게 받아들이게 한다. 프랑스의 의료보험을 보고 놀라는 것을 읽고는 얼마 전 한동안 인터넷에 떠돌았던 미국 맹장수술 비용이 떠올랐다. 알코올 중독에 대한 것도 문화적으로 접근해서 풀어낸 것을 보고 나의 학창시절과 비교해보았다. 너무 단순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절제에 대한 부분에 도달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스페인의 시에스타는 어떤 신문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한 것을 읽은 적이 있는데 작년에 스페인 여행을 한 직원의 이야기에 의하면 아직도 그대로라고 한다. 졸리는 오후 잠깐 동안의 낮잠은 정말 업무의 효율을 높여준다.

 

세계에서 가장 잔인한 영화를 만들지만 성은 억압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가 섹스 박물관을 방문한 후 느낀 감상은 엄숙주의 속에서 살던 한국인이 유럽에 가서 반드시 가보는 곳 중 한 곳이라는 사실과 연결된다. 가족을 위해 무엇이 최선인지 고민하는 사람들 이야기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 장애물을 처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그리고 가장 먼저 나오는 단순과 소박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 유행하고 있는 북유럽 스타일의 인테리어와 이어지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현재의 삶에 대한 만족이다. 매일 매순간을 즐기고, 나를 들여다보며 호흡을 고르고, 원하는 일을 하면서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휴일도 필요하다. 이런 것들은 현재 나의 삶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들이다. 나에게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정리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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