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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도 ㅣ 로망 컬렉션 Roman Collection 5
전아리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8월
평점 :
미인도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그림에 대한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림이 아닌 섬 이야기다. 이 섬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다. 아름다운 여인들이 살고 있는 이 섬은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어떻게 가는 지도 알 수 없는 곳이다. 갑자기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그곳으로 끌려간다. 이 놀라운 섬에 대한 비밀은 한 남자가 자신의 밥값 대신 들려준 이야기 속에서 드러난다. 물론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나오기 전 한 노인의 미스터리한 죽음이 뉴스를 통해 알려진다.
24시간 해장국집의 주인 김 노인은 텔레비전을 통해 어제 발생한 의문의 사망 사건을 본다. 백주대낮에 비쩍 여윈 노인이 숨을 거두었는데 놀라운 것은 이 노인의 신원이다. 1986년 생 남자의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신분증뿐이라면 큰일이 아닐 텐데 일주일 전 실종 신고된 황종민이라는 대학생의 지문과 일치한다. DNA 감정도 마찬가지다. 화학물질에 노출되었는지 검사했지만 깨끗하다. 신체 조직은 깨끗하고 자연스러운 노화현상에 의해 사망한 다른 사례와 다를 바가 없다. 김 노인은 이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때 한 노인이 밥값이 없다고 말한다. 자신이 황종민의 동창이고, 밥값 대신 그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한다. 그의 이름은 박성우다. 미인도(美人島)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박성우는 미대 학생이다. 노교수의 희귀한 미술품으로 가득한 집을 돌보기 위한 단기 아르바이트를 한다. 무료한 일상 중에 컴퓨터를 찾기 위해 다니다 이상한 여자를 힐끗 본다. 쫓아가지만 만나지 못하고 쓰러진다. 다른 방에서 깨어난다. 기억이 없다. 다른 날 친구와 함께 스키장에 간다. 둘이 번갈아 운전을 하는데 그의 차례에 이상한 일이 생긴다. 얼핏 잠들었는데 차는 벼랑에 부딪히며 추락한다. 안전벨트를 맸는데 몸이 앞 유리창을 뚫고 튕겨 나갔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다. 안간힘을 쓰다가 지쳐 기절한다. 비몽사몽 간에 이상한 경험을 한다. 다시 정신을 잃는다. 허기를 느끼며 깨어났을 때 옆에 앳된 여자아이가 있다. 소향이다. 그리고 이곳을 돌보는 수영을 만난다. 여인들이 사는 섬이라고 말한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섬의 시간은 현실 세계와 다르게 흐른다. 이곳에 오랫동안 머물러도 현실에서는 찰나다. 황종민의 사건을 감안하면 이 섬을 살다가 남자들은 모두 노인이 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성우도 그날 자신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잠들면서 그 시기를 놓친다. 이 섬의 몇 가지 규칙을 지키면 문제가 없는데 그것을 어기면 예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이 여인들만 사는 섬에도 권력을 둘러싼 음모가 진행된다. 수영이 다스리는 것을 반대하는 가희가 노파들과 그들이 키우는 동물들이 사는 숲을 베어 더 큰 집을 짓고 싶어한다. 비극은 언제나 비뚤어진 욕망에 의해 생긴다. 서로 다른 욕망이 결합할 때 그 비극은 더 커진다.
성우가 처음 이 섬에 왔을 때, 꿈을 꿀 때 얼굴이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한 여자가 그의 곁에 있었다. 그는 그녀를 찾고 싶다. 그러다 한 여자가 나타난다. 월화다. 그는 그녀가 비몽사몽과 꿈속에서 본 여자라고 생각한다. 그녀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싶다. 그런데 이미 다른 남자가 곁에 있다. 바로 황종민이다. 그는 그녀를 빼앗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이 계획을 지원하는 사람이 있다. 가희다. 가희는 성우의 그림을 통해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려고 한다. 성우는 다른 남녀의 성교를 보고 춘화도를 그렸는데 이것이 섬 여인들이 원하는 물품이 된 것이다. 이 결탁은 섬에 비극을 불러오고, 그 비극을 통해 섬의 비밀과 성우의 비밀이 알려진다.
전아리는 이 섬의 모습을 환상적으로 그려내었다. 섬 여인들의 대화체나 옷 등도 현실과 다르다. 조선 시대 이상의 시대를 닮은 것 같다. 처음에는 읽으면서 이질감이 생겼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졌다. 그렇게 길지 않은 분량이라 조금만 집중하면 단숨에 읽을 수 있다. 엇갈린 운명은 자신들의 욕심에 의해 뒤틀리는데 길지 않은 글 속에 잘 녹여내었다. 맹인 남자들과 노파들의 정체를 적절하게 숨긴 후 단계별로 드러내면서 이야기의 호기심을 부채질한다. 간결하고 빠르게 진행하면서 군더더기를 없앴다. 성우가 마지막에 하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김 노인도 그곳을 다녀왔을지 모른다는 말이다. 나도 혹시 다녀왔을까? 어쩌면 꿈속에서 잠시 다녀왔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