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주르 뉴욕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보경 옮김 / 학고재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프랑수아즈 사강의 여행 에세이다. 분량이 많을 것 같은데 실제 주석을 빼면 130쪽도 되지 않는다. 보통의 여행 에세이라면 한 시간도 걸리지 않을 분량이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달려들었다. 오래 전에 사강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기에 더욱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언제나 빗나간다. 열네 편에 그렇게 길지 않은 분량을 담은 에세이들이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긴 호흡의 문장들이 잠시도 집중력을 흩트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내가 아는 곳의 여행기는 나도 모르게 기억을 더듬게 만들었다. 물론 그곳도 가본 곳은 아니다. 책과 영화와 텔레비전로 본 곳들이다.

 

앞에 봉주르란 제목을 단 이야기가 네 편 있다. 뉴욕, 나폴리, 카프리, 베네치아 등이다. 이 연작들은 잡지 엘르의 편집장 청탁을 받아서 쓴 글이다. 요즘 흔히 보게 되는 여행 에세이와 달리 단 한 장의 사진도 없다. 간략하게 그린 그림 한 장이 있을 뿐이다. 만약 그 에세이를 읽지 않는다면 과연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그림이다. 못 그렸다기보다 지역적 특성을 알 수 있는 특별한 상징이 없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그녀가 들려주는 각 지역은 사강의 멋진 묘사와 설명 덕분에 순간적으로 생명력을 얻어 나의 시선을 끌어당기고, 여행에 대한 환상을 살짝 불러온다.

 

대부분 젊을 때 쓴 에세이지만 몇 편은 만년에 쓴 것 같다. 특히 ‘나의 애마 이야기’는 말년의 그녀 삶을 요약해서 들려주는 느낌이다. 도박과 약물 중독을 살짝 다루는데 이 책을 출간한 아들의 모습이 잠시 겹쳐서 떠올랐다. 어머니의 엄청난 부채를 상속받은 후 빚을 모두 갚고 다시 사강의 책들을 내놓았다는 부분에서는 ‘얼마나’, ‘어떻게’와 같은 호기심과 함께 ‘대단하다’는 감탄까지 자아내게 되었다. 말에 대한 그녀의 첫 경험과 애정은 글 곳곳에 너무 강하게 심어져 있어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다. 아마도 봉주르 시리즈를 제외하면 가장 재미있지 않나 생각한다.

 

흥미롭고 놀라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은 카스트로가 등장하는 ‘쿠바’ 편이다. 쿠바 혁명 기념일에 전 세계에서 50명 정도의 기자를 뽑아서 혁명 후 상황을 알리려고 하는데 이것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카스트로가 연설하는 곳으로 가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뜨거운 열기를 그대로 받아야 한다. 연설 후에 돌아오는 것은 더 고역이다. 꽉 막힌 그 길을 100만 명의 시민들이 채우고 있는 것이다. 돌아온 후 그가 쓴 글에서 쿠바 경제에 대한 부분이 있다. 경제 회생이 요원할 것 같다고 했는데 이것은 사실이 된다. 미국의 경제 봉쇄는 쿠바인들을 힘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자생적으로 뭔가를 발견하고 발명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그 부족함이 가시지 않지만.

 

짧은 글이지만 사강이 어린 시절 고향 이야기는 강렬함이나 신기함이나 재미는 부족하지만 진한 여운을 남긴다. 평화로운 고향의 풍경을 이야기하면서 마지막에 짧게 쓴 글 때문이다. “내일도 오늘과 같은 날이 될 것이다.” 여행 에세이에는 어울리지 않는 문장이지만 어린 시절 고향 이야기라면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은 너무 바뀌어 그 기억이 흐릿하지만 바뀐 그곳을 뚫고 과거의 추억과 기억이 뛰어노는 장면을 잠시 볼 때가 있다. 그 아련한 그리움이라니. 잘 생각해보면 수많은 일상의 반복 중 한 장면일 수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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