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거탑 - 소설 방송국 기업소설 시리즈 4
이마이 아키라 지음, 김효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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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한때 우리나라를 강타했던 드라마의 원작 소설인 <하얀 거탑>이 연상된다. <하얀 거탑>이 대학병원 내부의 권력 다툼을 실감나게 묘사했다면 이 <유리 거탑>은 일본 최대의 공영방송 NHK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실제로 작가는 NHK방송 간판 프로듀서였고, 시청률 20%대인 <프로젝트 X>란 프로그램을 제작했었다고 한다. 한국도 요즘은 20%대 방송이 드문데 일본의 경우는 더 힘든 것으로 알고 있다. 드라마 히트작의 경우도 계속해서 20% 이상 유지하는 작품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다큐멘터리로 몇 년 간 이 시청률을 유지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 이 대단한 프로그램의 프로듀서가 방송국을 나와 쓴 자전적인 글이 바로 이 소설이다.

 

쉽게 생각하면 이런 프로그램을 만든 프로듀서라면 승승장구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조직이 점점 거대화되고 관료화되다보면 정상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비정상적으로 흘러가는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 그것의 가장 핵심은 바로 권력을 둘러싼 파벌 전쟁이고, 다른 사람의 성공을 시기하는 사람들의 등장 때문이다. 여기에 황색저널리즘이 가세하게 되면 사실보다 거짓이 더 큰 목소리를 내게 되고, 여론은 순식간에 변하게 된다. 작년의 세월호 사건이나 올해의 메르스 사태를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는 몇 가지 상황은 이것을 아주 잘 보여준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진실을 호도하고, 사실을 은폐하고 왜곡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생기는 것이다.

 

자전적인 소설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야기가 일방적으로 니시의 입장에서 풀려나온다. 작가가 퇴사한 후 어느 정도까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자료 조사를 한 후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했는지 모르겠지만 글 속에 사건이 일어났던 당시의 감정들이 곳곳에 묻어난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다가 이런 부분이 나오면 과연 그런 일만 가지고 이런 방해가 가능할까? 혹은 너무 과장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물론 세상은 현실이 상상을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약간의 반감이 생기기도 하지만 빠르게 진행되는 이야기는 충분히 흥미롭고 니시를 응원하게 만든다.

 

니시는 거대한 방송국에서 그냥 흔한 지방 출신 PD 중 한 명이었다. 열정적으로 일하는 PD지만 누구도 그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런데 이때 한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 그것은 이라크 전쟁이다. 누구도 가길 원하지 않는 출장을 그는 손을 들고 간다. 그가 간 곳은 이라크 군 포로가 된 미군 장교 더든 소령의 부모가 살고 있는 집이다. 그곳에서 니시는 더든 소령의 부모들의 마음을 얻고, 그들의 일상을 찍는다. 자식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부모의 일상을 섬세하게 포착한 것이다. 이것을 위해 본부와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타기도 한다. 그리고 이 촬영 필름을 들고 와서 멋진 시사를 한다. 그를 미국으로 보냈던 프로듀서는 직감한다. 10년에 한 번 있을 작품이라고. 이제 그는 본사에서 프로듀서로 자리를 잡는다. 시간이 흘러 밀레니엄이 되었다.

 

니시는 9시대 방송을 하나 맡는다. 제목은 <챌린저 X>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으로 경기가 하강한 상태에서 국민들의 자존감은 바닥인 상태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의 일본을 만들게 하는데 자신의 인생과 열정을 다한 일반 사람들을 조명한 프로그램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제품에서 시작하여 자그만 학교의 성공담까지 일반 사람들의 삶을 극적으로 끌어낸 작품이다. 서서히 시청률이 올라가면서 대중들은 이 프로그램에 빠져든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대중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 방송국의 위상도 올라간다. 하지만 이것을 질투하는 사람이 생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니시를 질투하는 것이다. 능력보다 관료적인 시스템에 의해 승진했던 사람들이 권력의 핵심인 방송국 사장이자 천황으로 불리던 도도의 총애를 받는 그를 질투한다. 조그만 방해공작도 펼친다. 이런 장애 요인을 니시는 천황의 힘을 빌려 무너트린다. 그들과 니시의 골은 더 깊어진다.

 

권불십년이라고 했던가. 도도의 권력도 조그만 사건에서 시작하여 점점 커진다. 한 프로듀서의 비리가 방송국의 사장을 물러나게 만든다. 강력한 방어막이자 버팀목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니시의 적들은 황색저널리즘과 손을 잡고 니시의 주택을 호화주택이라고 왜곡하고 거짓으로 공격한다. 호화주택이란 말에 고 노무현의 집과 요트가 생각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연상작용이다. 자신의 프로그램을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사랑하는 니시는 어떻게 하던지 계속하고 싶어한다. 그러다 실수가 일어나고 적들의 공격은 더 강해진다. 관료적인 조직에서 자신들의 자리만 보전된다면 그들은 방송이 어떻게 되던지 상관없다. 분노하게 되지만 현실이다. 바뀐 권력의 힘은 그를 막아줄 생각이 없다. 아니 관심도 없다.

 

단지 몇 년 정도의 시간만을 다루는 소설이 아니다. 크게 두 프로그램이 중심이지만 그 시간은 거의 20년의 기간이다. 니시를 방송국의 프로듀서를 끌어당긴 것이 더든 소령의 방송이었다면 대중의 엄청난 관심의 대상으로 만든 것은 <챌린저 X>다. 여기에 또 재미난 일본의 모습이 있는데 바로 시청료 납부 거부 운동이다. 한국의 경우 공용방송 시청료를 전기요금과 함께 걷어가지만 일본은 아닌 모양이다. 시청료 납부 거부자가 늘어나면서 천황이라고 불렸던 도도 회장이 물러날 정도니 말이다. 이 부분은 읽으면서 일본이 굉장히 부러웠다. 왜냐고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화려한 재미나 짧은 시간 안에 벌어지는 긴박감은 없지만 한 인간의 열정과 도전 그리고 관료화된 조직 내부의 파벌 권력 투쟁이 잘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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