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문이 있었다
태극문 20주년 기념위원회 엮음 /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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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무협의 시작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좌백의 <대도오>를 꼽는다. 그런데 이 <태극문>을 효시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 용대운은 구무협 시대의 작가였다. 야설록이란 이름으로 몇 권의 무협을 내었고, 본인의 필명의 몇 권을 낸 후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공장무협 시대의 내막을 잘 몰랐던 사람들에게 이것은 하나의 일상처럼 다가왔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태극문>이란 무협으로 돌아왔다. 이전처럼 만화방용이 아닌 서점용으로 말이다. 그때 많은 무협 팬들은 열광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몇 년 동안 이어진 출판사 뫼의 성공은 바로 이때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때 출판사 뫼에서 나온 무협은 믿고 보는 책이었다. 기존 무협과 다른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그 당시 PC통신을 달구었다. 하이텔 무림동은 그 중에서 최고였다. 나도 이때 여기서 많은 정보를 얻었고, 이 당시 출간된 뫼의 무협을 열심히 모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뫼도 몰락했다. 작품의 질이 떨어지고, 공장무협처럼 하나의 필명으로 여러 작가들이 소설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공장무협의 대명사였던 사마달처럼 말이다. 무협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가들에게 이것은 배신과 다름없는 일이다. 그렇게 하나의 무협 대명사가 사라졌다. 이 책은 좌백의 글을 통해 그 이면의 역사를 짧고 간략하면서도 핵심적으로 알려준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반가운 대목이다.

 

미친 듯이 읽은 <태극문>이지만 이 책은 고룡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때 고룡 작품의 표절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실제 고룡의 작품을 읽었을 때 세부적인 묘사는 다르지만 기본 줄거리는 크게 변함이 없어 표절을 주장한 사람의 말에 공감했다. 그 당시 무림동에서 작가와 독자들이 다투면서 탈퇴하고 절필 등을 선언한 사건도 있었다. 그 영향인지 지금도 문피아에서는 작품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요즘은 거의 들어가지 않지만 GO무림 시절에는 이 규칙이 상당히 황당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도 표절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만약 표절이 아니라면 명확하게 이 부분을 집고 넘어가야 한다. 이 책에 글을 쓴 작가들의 관계를 생각하면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용대운, 좌백, 이재일 등은 모두 좋아하는 작가다. 이들의 작품은 모두 보려고 한다. 그런데 이 세 작가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십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완성하지 않고 있는 작품들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다시 이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후속작들을 내고 있지만 팬들로 하여금 절필로 인한 주화입마를 수차례 경험하게 한 전력들이 있다. 부디 글을 계속 써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주길 바란다. 최근에 다시 중간부터 읽고 있는 <군림천하>가 28권까지 나왔는데 아껴가면서 읽고 있다. 나머지 둘도 마찬가지다. 이들 외에 전성기 뫼의 작가들이 판타지 등으로 전업해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도 있는 모양인데 최근 무협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신작을 잘 모른다. 언젠가 한 번 리스트를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을 단숨에 읽으면서 가장 반가웠고 재미있었던 것은 역시 뫼의 전성기 시절 이야기다. 잘 몰랐던 이야기와 반가운 작가들의 글이다. <태극문>에 헌정한 진산의 <태극비전>은 재밌었고 반가웠다. 그녀가 얼마나 무협에서 멀어진 삶을 살았던가. 그리고 하이텔 무림동 이야기는 아련한 기억 속 추억을 불러왔다. 미친 듯이 텍스트 파일을 다운 받아 읽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록새록 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 당시 게시판에 올라온 수많은 글들이다. 감상이다. 90년대 이 글들은 이전 무협에 대한 수많은 애증을 담고 있다. 오랫동안 무협을 읽었던 고수들의 감상과 비판이다. 만화방에서 도서대여점을 거쳐 이제 이북으로 변하고 있는 시장을 생각할 때 용대운의 대담에서 나왔듯이 좋은 글을 위해 많이 고민하고 노력하는 작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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