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간단한
최예지 지음 / 프로젝트A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삶은 어쩌면 의외로 간단한 것인지 모른다. 삶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들이다. 물론 이 말을 알고 이해한다고 해도 실제 삶에서 간단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엮이고 꼬이고 풀리는 현실을 단숨에 간단하게 만드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머리가 이것을 이해한다고 해도 몸과 마음과 관계들이 이것을 결코 놓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을 늘 의식하고 산다면 어떨까? 쉽지는 않겠지만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이 책의 저자가 쓴 글들을 읽다 보면 의외로 간단하게 풀어놓은 글들에 이상한 감정을 집어넣는 나의 모습들이 보인다. 나보다 한참 어린 작가의 삶이 살짝 부럽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한 장의 비행기 티켓이다. 그 유명한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갈 수 있는 비행기 티켓이다. 조건은 나중에 석 장의 산티아고 행 티켓을 다른 사람에게 공짜로 주는 것이다. 그냥 단순한 백수라면 좋구나 하고 가겠지만 그녀는 인턴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다. 대학 졸업 후 취직을 해야 하는 그녀의 입장에서 이 선택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산티아고 행 비행기에 몸을 실고 떠난다. 이 순례자의 길이 보통의 형식적인 말처럼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자신의 삶을 새롭게 보고 마음이 가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든 것은 사실이다.

 

이 책에 담긴 글들이 모두 산티아고 길에서 경험한 것을 다루지는 않는다. 약 3분의 1 정도는 산티아고를 걸었던 경험과 느낌과 생각들을 적었다면 나머지는 돌아온 후에 몇 개월 산 제주도와 그와 관련된 자신의 감정들이다.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은 그녀에게 내일이 아닌, 오늘도 아닌, 지금, 여기를 살도록 만들어주었다. 지금이 모여 오늘이 되고, 이것이 과거로 변한다. 내일은 오늘이 지나야만 오는 것이다. 이 단순한 사실을 우리는 잊고 살고 있다. 그녀가 산티아고 길을 자신의 길이 아닌 다른 사람의 길로 걸었을 때 다른 사람이 들려준 그 말들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힘든 그 길을 한 발 한 발 내딛게 만들었다. 어쩌면 지금, 여기를 살려고 했기에 무사히 그 긴 길을 마무리했는지 모른다. 물론 그녀는 말한다. 이 순례길이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했다고. 다시 돌아와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고.

 

스물다섯. 이 나이라면 누구나 취직을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돌아온 그녀가 선택한 것은 제주도 게스트하수 무보수 아르바이트생이다. 6인실에서 살면서 밥을 해결하지만 블로그를 관리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녀가 만난 제주도가 펼쳐진다. 작년에 내가 다녀온 제주도가 아닌 오랫동안 머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제주도가 하나씩 나온다. 올해도 갈 예정인 제주도에 새로운 갈 곳이 생겼다고 해야 하나. 작년 여행이 제주도 일주였다면 이번에 간다면 조금은 다른 여행을 하고 싶은데 이 책 속 장소들이 강하게 유혹의 손길을 벋친다. 단순 여행객이라면 그 매력을 충분히 누리지 못할지 모르지만 눈과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작가의 글은 솔직하다. 그냥 간단하게 쓴 글들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후 추억과 기억을 더듬어 솔직하게 적었다. 물론 이것은 그녀가 쓴 글과 사진으로 추측할 뿐이다. 하지만 자신을 숨기려고 하지 않고 내보여주려 한다. 첫 사랑, 두 번째 사랑, 그리고 아쉬운 이별 등을 그대로 적어놓았다. 그때의 감정도 역시. 자신만 보는 블로그라면 그럴 수 있지만 책으로 나온다면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기억들과 함께 사람들을 만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그녀를 투명하다고 한 것도 바로 이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이 솔직함이 처음에는 부담되었지만 지금은 좋다. 앞으로 그녀의 삶에 어떤 힘든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녀의 힘과 좋은 주변사람들이 그것을 이겨내는데 많은 도움을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일들이 의외로 간단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면 더 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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