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등에 베이다 - 당신과 내가 책을 꺼내드는 순간
이로 지음, 박진영 사진 / 이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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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독특한 책이다. 제목부터 시선을 끈다. 책등에 베이다니 그게 가능할까? 물론 이것은 저자의 수사다. 뻔한 과장이다. 하지만 저자의 글에 귀를 기울이면 이것이 꼭 과장된 수사가 아님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가 말한 책등이 서점에서 나를 매혹시켰던 수많은 책등을 떠올려준다. 표지와 제목과 저자와 출판사 이름 등이 함께 어우러져 책에 대한 열망과 환상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지금은 이 열정이 많이 사그라들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연소한 것은 아니다. 자주 서점에 가지 않음으로 인한 일시적인 휴식기다.

 

분명 저자는 책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책이 주인은 아니다. 이 책에 실린 스물다섯 권의 책들은 저자의 기억 속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물론 책 속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 부분도 많다. 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부분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자신을 베고 지나간 책등에 대한 추억과 이해 등에 집중한다. 그래서 읽다 보면 책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자주 만난다. 처음에는 이것을 보고 뭐지? 하는 의문이 생겼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이야기에 집중한다.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어떤 점에서 신선하고 재밌다. 곱씹어 생각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그냥 웃으면서 지나가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놀랍게도 실제 책 속에는 책등 사진이 없다. 책등이란 외양에 매달리면 저자가 보여주는 작품과 단상의 깊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다. 추억 뒤에 자리 잡은 깊은 이해와 사유는 어느 순간 번뜩이는 재치를 보여준다. 그가 지어낸 콩트는 간결하지만 재밌다. 현실을 뛰어넘었지만 그 속 깊은 곳에는 변함없이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단지 우리가 눈감고 귀 닫고 있으면서 놓친 것들이다. “우리 무조건 행복하자고 외치는 불행에 대하여. 가족의 고통을 촬영하는 환희에 대하여.”(171쪽) 말할 때 가장 슬픈 노래의 세계를 살짝 엿본 느낌이다.

 

에세이는 태생적으로 개인의 추억과 기억과 감상을 먹고 산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이 간결한 책은 독특함이 많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기존에 읽은 문장이 그대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나의 경우도 서평을 많이 써다보니 어느 때는 그대로 붙여넣기한 느낌을 주는 문장이나 단어가 그대로 흘러나온다. 하지만 그가 걸러낸 문장과 이야기는 책과 어우러져 새로운 재미와 감각으로 다가온다. 살짝 비튼 곳에서는 웃게 된다. 마지막 장에서 글을 써야겠다고 했을 때 “글을 쓰기보다 누군가의 글을 옮겨 적는 일을 잘하면 어떻게 해야 하죠?”(219쪽)라고 되물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때 나온 답 중 하나가 필경사와 인용의 창고다. 띠지에 나오는 한 번도 인용된 적이 없는 문장은 바로 여기서 나왔다.

 

각각의 분량이 다르다. 문장은 간결하다. 인용도 적지 않다. 빠르게 읽힌다. 긴 호흡의 글보다 짧은 글을 선호하는 저자의 취향이 그대로 묻어있다. 개인적으로 아주 흥미로웠던 것은 ‘낭독’에 대한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책은 눈으로 읽고 소리는 사라졌다. 가끔 의미가 분명하게 다가오지 않을 때 소리 내어 읽어본다. 몇 번 그렇게 읽다보면 문장이 분해되고 그 의미가 새롭게 이해된다. “이 문장들은 이제 나와 함께 합니다!”(95쪽)란 선포에 공감한다. 이 짧은 책이 매력있게 다가온 것은 바로 이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글들이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가끔 무작정 펼쳐서 아무 곳이나 한 번 읽어보면 어떨까 궁금하다. 물론 이것은 이 책에 대한 기억이 좀더 흐려진 후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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