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즐거움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선민 옮김 / 문학테라피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17편의 에세이가 쉽게 읽히는 와중에 깊은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잠시 딴 생각을 하면 에세이 한 편이 후딱 지나갈 정도의 분량이다. 하지만 읽는 동안, 음미하는 동안에는 잠시 시간이 조용히 흘러간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모두 읽은 지금 표지의 푸른 색 외는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왜일까? 집중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공감하지 못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이해력 부족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중에 다시 책을 펼쳐본다. 어둠과 문장을 엮은 글이 보인다. 보통 간단하게 표현되는 이 문장이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명확함을 뒤로 하고 은유가 더 부각되니 문장들이 낯설다. 아마 이것이 이유가 아닐까? 낯선 표현과 문장이 쉽게 가슴에 와 닿지 못한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조금만 집중하면 문장이 주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빠르게 읽을 수 있지만 왠지 모르게 다시 읽고 싶어지는 책들이 있는데 이 책이 그렇다. 그냥 아무 곳이나 펼쳐도 음미할 문장이 나온다. “우리는 모두 한 줌의 빵 부스러기로 돌아간다.”(138쪽)는 문장도 방금 펼친 곳에서 발견했다. 보통 한 줌의 흙이란 표현을 사용하는데 빵 부스러기라니 낯설다. 낯선 표현은 한 번 더 집중하게 만든다. 아마 이 책은 처음 읽을 때보다 두 번 세 번 읽을 때 더 가치가 빛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에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가 사랑하면서 느끼는 고통 역시 사랑이며, 그 고통은 말도 안 되는 위로로 사랑이 어둠 속으로 밀려들어 가듯 우리의 사랑이 어둠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막아준다.”(76쪽) 이 사랑에 대한 문장은 사랑의 고통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조금 과장된 표현인지 모르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살은 결코 하지 못할 것이란 말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감정과 감성이 엮이고 이것이 행동으로 표현될 때 그 사랑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작가의 경험이 녹아 있는 문장일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어떤 글은 작품이나 연주자 등에 대한 감상을 풀어낸다. 그 평가가 너무 시적이고 현학적이면서 깊게 다루어져 도저히 작가의 감상에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내용은 읽는 내내 부러웠다. 어떻게 이런 평가와 감상을 쓸 수 있지 하고 말이다. 일상의 기적을 말할 때 그 평범한 듯한 일상이 왜 그렇게 성스럽고 중요한지 알려준다. “우리의 영혼은 그 성스러운 눈으로 보았던 순간을 차곡차곡 담아 우리의 일상을 버티게 한다.”(103쪽)는 문장이 바로 그것이다. 나의 일상이 무료하고 지루하다면 아마도 이런 성스러운 눈을 상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섬세한 문장과 통찰이 만들어낸 이 책은 사유의 깊이와 상관없이 마음에 와 닿는다. 그것을 해석하고 이해하고 행동하는 것은 개인의 역량에 달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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