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혼자였다
미리암 케이틴 지음,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이상빈 추천 / 이숲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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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끊임없이 2차 대전 당시 유대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혹자는 이것을 두고 홀로코스트 산업이라고까지 표현한다. 하지만 역사적 기록이나 그 당시 사진 등을 보면 홀로코스트 혹은 쇼어 등이 일어난 장소의 참혹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산업이란 표현을 사용할 정도라면 그 이후 얼마나 많이 다루어졌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세계적으로 이슈화된 것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럼 우리의 상황은 어떨까? 일제나 친일에 대해 이 만큼 다루어졌을까? 우리는 이제 그만 과거는 잊고 앞으로 나가자고 말한다. 좋다. 맞다. 앞으로 나가야 한다. 용서해야 한다. 그럼 과연 누가 이 과거를 진솔하게 진심을 담아 참회하고 용서를 구했나? 용서 이전에 필요한 것이 빠진 상태를 생각할 때 ‘과거는 미래를 향해 울리는 경종’이란 말의 의미를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역사의 반복을 생각할 때 더욱더.

 

이 만화는 기존 홀로코스트나 2차 대전 당시 유대인 이야기와 조금 궤를 달리한다. 헝가리 유대인 엄마 에스텔과 딸 리사의 참혹한 여정을 다룬다. 이 여정의 시작은 그렇게 나쁘지 않지만 독일군이 그 마을에 오게 되고 그녀의 미모를 탐한 장교가 등장하면서 바뀌기 시작한다. 여기에 독일군을 쫓아내고 진주한 러시아군까지 가세하면서 그녀는 생존을 위해 몸을 내던질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러시아군이 갑자기 죽으면서 눈보라치는 상황에서 달아나야 한다. 이런 여정을 거친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낸 고마운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녀의 약점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도 등장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작가는 단순한 흑백과 컬러라는 색의 구성으로 어둡고 아픈 과거와 밝은 현재를 대비시킨다. 이 구성을 금방 이해하게 된 것은 색뿐만 아니라 윤곽에서도 차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많지 않은 분량이다. 단숨에 읽힌다. 기존의 2차 대전 유대인과 다른 이야기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자신들의 삶의 바탕인 신마저 의심하게 만든다. 신들이 와인통에 산다고 말할 때 그것은 단순한 은유지만 가슴 한 곳을 파고들어 그들이 느낀 절망이 와 닿는다. 생존을 위해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보여줄 때 그 현실에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읽다가 느낀 점 중 하나는 리사가 아이와 함께 낯선 사람의 집 문을 두드릴 때 그녀를 흔쾌히 모녀를 받아들인 것은 남자다. 왜일까? 그녀의 미모 때문이라면 다른 수작을 부렸을 텐데 그것은 없다. 열악한 환경에서 여자들이 좀더 현실적이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그녀가 만난 사람들 때문일까? 이것은 다시 앞으로 돌아가면 바뀐다. 그녀의 재산을 노리는 인물은 집주인 남자고 그녀를 도와주는 주변 사람은 여자다.

 

내 눈이 맞다면 연필로 그린 만화다. 선으로 표현된 감정은 분명하고 풍경은 섬세하다. 수많은 학살의 와중에 생존했다는 것은 단순히 운이 좋았다 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그녀가 생존을 위해 그 마을과 집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녀의 정체를 알거나 정복자로 온 군인에게 어떤 비참함을 당했는지 보여줄 때 그녀의 강인한 생존력과 희망이 드러난다. 작가는 이 과정과 풍경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더욱 여운을 남기면서 가슴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해설에서도 나왔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가 보여준 행동은 큰 충격이다. 평화가 찾아온 가정에서 잊고 있던 폭력의 기억이 아이를 통해 드러날 때 그 섬뜩함은 정말 대단하다. 작가와 엄마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린 만화임을 생각할 때 그 기억을 벗어났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해본다. 물론 프리모 레비 같은 경우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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