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탐정 실패하다
죠 메노 지음, 김현섭 옮김 / 늘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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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읽은 <유령 비행기> 작가의 작품이다. 그때는 단편집이었는데 이번에는 장편이다. 그 당시 쓴 서평을 찾아보니 흥미롭게 읽은 단편들이 꽤 많았던 반면에 문체에 대해 아쉬움이 있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소년탐정 빌리가 풀어내는 미스터리는 흥미롭고 재미있지만 전체적인 문장의 리듬 등은 가독성을 떨어트린다. 아마 내가 좋아하는 단문이 아니고 문체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덕분에 더 집중해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도 평소보다 더 걸렸다.

 

H.L.멘켄의 “천재성은 유년기를 연장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라는 인용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제목도 소년탐정이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빌리가 열 살 생일 선물로 ‘트루라이프 주니어용 탐정도구 세트’를 받으면서부터다. 이 세트를 통해 빌리 아고의 천재성이 빛을 발한다. 그리고 그와 그의 동생 캐롤라인과 친구 펜튼이 탐정단을 꾸리고 어른들이 풀지 못하던 미스터리를 푼다. 당연히 이 소년탐정단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그들의 실적이 오를수록 더 심해진다. 대단한 업적을 쌓은 후 빌리는 범죄학을 연구하러 대학에 들어가고 동생과 친구는 평범하게 성장한다. 그러다 캐롤라인이 자살한다. 이 자살은 빌리를 흔들고 켄튼을 원망하고 그 자신마저 자살하게 만들 정도다.

 

이 자살 소동으로 그는 정신병원에 갇힌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 병원에서 나온다. 우울증 약을 달고 산다. 그의 삶은 너무나도 무력하다. 세상으로 나오고 싶지 않았던 그이기에 더 그렇다. 그가 살고 있는 기숙사는 놀랍게도 그의 숙적들이 살고 있다. 그가 나이든 만큼 늙은 적수지만. 그리고 도시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이 나온다. 그중에서 시선을 끄는 것은 건물이 사라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기이한 세상에서 벌어지는 자연현상 중 하나인가 생각했다. 아니다. 도시를 좌지우지하는 범죄단의 작품이다.

 

처음에는 이 범죄단을 깨부수는 빌리를 생각했다. 약간 비정상적인 삶을 살지만 그의 이력을 생각할 때 너무 당연했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기대를 산산조각낸다. 정작 빌리가 알고 싶어 하면서도 두려워 풀지 않았던 캐롤라인의 자살 원인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것은 빌리가 실패한 탐정 활동과도 관련성이 있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소년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보여준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이 아니라 숨고 피하는 것이다. 심리치료사가 캐롤라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빌리가 보여주는 행동이 이것을 잘 보여준다.

 

작가가 작품을 시작한 것이 2001년 9월 11일 사건이 있고 몇 달 후였다고 한다. 이 테러 사건의 본질에 대한 몇 가지 의문을 풀어내기 위한 방편으로 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소설 속에 벌어지는 악당들의 행위에 어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심리적 분석도 전혀 없다. 그냥 일어난다. 고담으로 불리는 뉴욕에서 사라지는 빌딩에 대한 공포를 느끼지만 이 사건에 대한 의문을 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상황을 그려내면서 일상에 대한 풍경을 보여준다. 놀랍고 기이한 장면들인데 이를 대하는 사람들이 너무 무덤덤하다. 어쩌면 프로그램화된 기계같다고 해야 할까.

 

희망에 대한 소설이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소년에서 성인으로의 성장을 다룬 소설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현실과 어느 정도 타협하고 모험도 미스터리도 비밀도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빌리가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큰 미스터리를 모두 푼 후 탐정을 그만두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 미스터리를 푼 후 그의 상상력이 어쩌면 고갈되었는지 모르겠다. 그가 아직 소년탐정으로 불릴 때 그와 함께 활약한 소년탐정들이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여주는 장면들은 삶과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유년기를 연장시키지 못한 빌리에게서 천재성이 사라진 것일지도 모른다.

 

빌리 남매와 같은 에피와 거스 멤포드 남매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자연스레 비교된다. 새로운 가능성도 열어놓는다. 이 남매가 사건 하나를 해결하는 장면은 열정과 상상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이들의 활약을 보면 빌리가 어떤 과정을 통해 사건의 핵심에 다가갔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미 사라진 나의 상상력을 떠올려본다. 너무나도 메말라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이 있다. 시작하는 장이 1장이 아니라 31장이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미스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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