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아데나 할펀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스물아홉. 지금 생각하면 정신없이 일하던 시절이었다. 누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을 부르면서 다가오는 서른을 두려워할 때 나에게는 그냥 무덤덤한 일상의 하루였었다. 물론 지금과 비교하면 체력과 힘과 몸매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세월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누가 나에게 다시 돌아갈 나이가 몇 살이냐고 묻는데도 아마 이 나이는 아닐 것이다. 차라리 20대 초반이나 30대 초반 정도를 바란다. 20대는 무모함과 다양함을, 30대 초반은 약간의 사회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좀더 편안하게 삶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설 중 주인공은 자신의 스물아홉 살 때를 그리워하고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 소원이 이루어진 하루 동안의 이야기가 바로 이 소설이다.

일흔다섯 살 생일을 맞이한 엘리는 자유롭게 살아가는 손녀 루시를 보며 스물아홉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소원을 빈다. 그런데 다음 날 그녀는 스물아홉 살로 다시 태어난다. 젊어진 것이다. 안경 없이도 뚜렷하게 보이는 사물들과 단단한 가슴과 근육들, 오랫동안 걸어도 전혀 힘들지 않는 체력 등은 탱탱한 피부와 함께 이전에는 몰랐던 그녀의 매력을 깨닫게 만든다. 젊으면 하고 싶었던 일들이 있는 그녀이기에 이 놀라운 변신은 많은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리고 이 변신으로 인한 문제들도 같이 보여준다. 이 하루 동안의 여정을 통해 자신의 삶을 새롭게 돌아본다. 약간 뻔한 전개와 결말이지만 유쾌하고 즐겁고 가슴 속으로 여운이 파고든다.

다시 젊어진 나를 본다면 어떨까? 엘리는 깜짝 놀란다. 현실감이 없다. 이 변화를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린다. 친구 프리다의 전화를 받으면서 이 사실을 알게 되지만 놀랍고 두렵다. 변한 자신을 보고 놀랄 가족과 친구 때문이다. 실제 젊어진 그녀를 보고 손녀 루시가 얼마나 놀랐던가. 간단한 인증 절차를 거쳐 쉽게 할머니임을 믿지만. 이렇게 할머니와 손녀는 하루 동안 누릴 젊음을 위해 머리와 화장 등을 새롭게 한다. 이 과정을 거친 후 엘리는 젊을 때는 몰랐던 그녀의 미모를 깨닫고 남자들의 시선을 즐긴다.

엘리와 루시가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한다면 딸 바바라와 친구 프리다가 또 다른 축을 맡는다. 프리다가 엘리와의 통화와 엘리의 집에서 만난 젊은 엘리 덕분에 의문을 품게 된다. 당연히 그 딸인 바바라에게 전화한다. 바바라는 엄마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어하고 열정적이고 저돌적으로 상황에 부딪히는 인물이다. 반면 프리다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할머니다. 이 묘한 결합으로 인해 좌충우돌 만들어지는 사건들은 이 소설에 코미디 요소를 가져다준다. 영화로 만들어지면 가장 유쾌하고 재밌는 장면을 만들 사람들이 바로 이 둘일 것이다. 그리고 이 둘이 지닌 콤플렉스는 엘리의 모험으로 인한 자기 성찰 등으로 변한다. 강함 속에 숨겨진 연약함이나 조용하고 둔한 듯한 일상 속에 숨겨진 현명함이 밖으로 드러난다.

소년이나 소녀가 갑자기 어른이 되는 영화나 소설은 가끔 나온다. 그 반대의 경우는 그렇게 흔하지 않다. 나의 저질 기억력에 의하면 그렇다. 그러나 여기에 개성 강한 인물들을 넣어서 변신한 할머니와의 긴장감을 불어넣은 것은 비슷한 설정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소년이나 소녀는 성인이 되어 경험할 것을 미리 했다면 할머니의 지나간 시절에 경험하지 못한 것을 새롭게 한다는 것이다. 그 당시는 생각하지도 못한 일들을 말이다. 세대차나 변한 세상을 드러내기에 이보다 좋은 설정은 없을 것이다. 덕분에 예상하지 못한 미국의 수십 년 전 세태를 살짝 들여다보게 되었다. 또 양념처럼 곁들여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사랑에 대한 고민과 사연들은 잔잔하게 가슴 깊은 곳으로 스며들면서 조용한 울림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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