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 세상
캐런 러셀 지음, 권민정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스티븐 킹의 추천과 판타지라는 소개글이 이 소설을 선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막내딸 에바가 유령과 사랑에 빠진 언니 오시올라를 구하기 위해 유령들의 세계인 지하계로 위험천만한 모험을 떠난다고 했을 때 킹의 추천사와 더불어 기존에 가지고 있던 판타지 세계를 떠올렸다. 하지만 계속해서 읽어도 판타지의 공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현실이라는 높은 벽만 계속 나타났다. 예상과 전혀 다른 이야기 전개다. 킹의 추천사에서 킹이 만들어 보여줬던 세계를 미리 짐작하는 잘못을 범했다. 그래도 흡입력 있는 문장과 개성 강한 등장인물로 재미있게 읽었다.

늪세상이란 제목을 보면서 이곳이 바로 판타지가 펼쳐지는 공간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늪세상은 이 소설의 주인공 가족 빅트리 일가가 운영하는 늪지대 테마파크다. 최고 인기 프로그램은 엄마의 악어 레슬링이다. 이 공연을 보기 위해 먼 늪지대까지 사람들이 온다. 그리고 이 가족들은 악어를 세스라고 부른다. 그들은 늪지대에서 아흔아홉 마리의 악어들과 살고 있다. 그러다 가장 큰 흥행 요소가 갑자기 사라진다. 그것은 엄마의 암과 그로인한 죽음이다. 흥행 요소가 사라진 늪세상은 부채가 증가하고 경제적 문제 등으로 인해 가족해체의 수순을 밟아간다.

그 전에 노망든 할아버지가 먼저 요양원으로 떠나고, 큰 아들 키위가 그 다음에 떠난다. 집에 있던 돈 3백 달러와 함께. 곧이어 인디언인척 하는 추장 아버지가 떠나고, 늪세상에는 두 딸만 살게 된다. 큰딸 오시올라는 유령과 대화한다는 환상 혹은 영적 세계에 빠져 있고, 막내딸 에바는 이제 겨우 열세 살이다. 이 두 딸이 섬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별로 없다. 악어들을 돌보거나 그냥 자신들의 환상과 세계 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언니 오시올라가 준설선의 유령 루이스와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사라진다. 섬에는 에바 혼자 남았다. 언니를 찾기 위해 섬의 새 문제를 해결했던 들새 아저씨와 함께 지하계로 모험을 떠난다.

에바를 통해 펼쳐지는 늪세상의 현실과 모험이 하나의 중요한 축이라면 키위의 육지 생활은 또 다른 축이다. 이 가족은 늪지대에 살면서 정규 교육과정을 밟지 못했다. 통신 교육으로 어느 정도 과정을 이수한다고 하지만 현실과 거리가 있다. 키위가 육지로 올라와서 하버드를 꿈꾸는데 현실과의 거리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것은 막내 에바의 행동이나 심리 등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키위는 가족 최대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또 다른 테마파크 암흑세계에 취직한다. 이것은 정규 교육도 받지 못했고 제대로 된 사회경험을 쌓지 못한 그가 할 수 있는 몇 가지 일 중 하나일 뿐이다. 변한 환경 속에서 힘든 적응기를 거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판타지를 다루는 것 같지만 지독한 현실을 그 속에 품고 그대로 보여준다. 에바를 통해 소녀의 환상이 어떻게 깨어지는지, 키위를 통해 알고 있던 현실 뒤의 또 다른 삶을 보여준다. 이 과정은 성장소설로 읽어도 큰 탈이 없을 것 같다. 자신들의 세계가 깨어지고 현실을 하나씩 깨달아 가기 때문이다. 비록 소녀에게는 너무 가혹하고, 소년에게는 헛된 명성을 잠시 주지만 말이다. 이 가족들은 하나의 희망을 품고 있다. 그것은 공연을 계속하고 늪세상을 살리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 그렇다고 그렇게 암울하지만은 않다. 단지 현실 적응의 문제일 뿐이다. 그들은 가슴 한 편에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