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회상록
뀌도 미나 디 쏘스피로 지음, 조세형 옮김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구름에서 태어난 빗방울이 지상으로 떨어진다. 그는 빙하 녹은 물과 합쳐져 강이 된다. 여기서 ‘그’라는 남성 명칭을 사용한 것은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강이 남성으로 자신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사랑을 나누었던 존재들이 여성성을 가진 것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강이 된 그는 엄청난 세월을 거치면서 현재에 이르게 된다. 그 긴 역사를 강은 수많은 신화와 역사를 섞어서 한 편의 장대한 서사시로 만들어 놓았다.  

 

 전작 <나무 회상록>에 비해 쉽고 빠르게 읽었다. 강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이미 전작에서 경험한 구성인 점도 있지만 낯익은 것도 크다. 인류의 역사를 큰 줄기에서 다루며 도도하게 흘러가는데 역사에 조그마한 지식만 있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의 이행을 보여주는 장면에선 그 잔혹함에 놀라기도 하지만 이후 펼쳐지는 폭력과 학살의 역사를 보면 그것은 아주 작은 살인으로 다가온다. 그렇지만 이 전환이 역사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 대표 인물이 전사인 쿠르칸이다. 그의 후손들로 아틸라, 샤를마뉴 대제, 나폴레옹, 히틀러 등을 꼽는다. 역사 속에서 그들이 벌인 전쟁과 그 참혹한 현장을 생각하면 남성 중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처럼 보인다.  

 

 작가는 강을 신으로 만들면서 사실주의의 무거움을 벗었다. 강이라는 명사로 부르지만 그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추상적인 존재를 화자로 내세우면서 유럽의 신화 속 존재들을 부담 없이 등장시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인간의 역사를 말하는 동시에 환상세계도 같이 그려내고 있다. 재미난 점은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강과 노움과 님프 등에게 인간의 감정을 부여한 것이다. 그들은 사랑을 나누고, 그리워하고, 고통스러워한다. 특히 물의 님프 살마키스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 때문에 홍수를 불러오는 강의 모습은 의인화와 역사의 멋진 만남이다.  

 

 많은 문장 속에 인간이 지닌 약점을 그대로 드러낸 부분이 있다. “그들의 시각은 왜곡되어 있기 때문에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어. (중략) 인간은 우리와 달리 세상이 몇몇 정해진 색으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세상이 매 순간 다채로운 색으로 모습을 바꾼다고는 생각하지 못하지.”(24쪽)란 문장이다. 교육이나 삶의 경험에 의해 시각이 왜곡되고 고정되면서 쉼 없이 변화는 세상에 우리의 적응과 발전은 더기기만 하다. 

  

 

 이미 전작에서 남성성의 파괴적인 성향과 여성성의 부드러움과 조화로움을 강하게 주장했다. 이번에도 역시 남성 중심 사회로의 이행으로 인한 분쟁과 문제들을 긴 시간 속에 보여주고, 인간의 탐욕이 불러온 강의 변화를 통해 현대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특히 치수를 위해 둑을 쌓으면서 물의 흐름을 직선으로 만들어 숨겨진 재앙을 암시하는 부분에선 빨리빨리로 대변되는 한국사회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이 직선과 관련된 부분별한 개발과 현재만을 생각하면서 일어나는 환경오염은 현재도 문제지만 미래를 더욱 암울하게 만든다. 하지만 강은 말한다. 하늘로 증발해도 다시 인간이 신호를 보내면 지상으로 내려와 강으로서의 나를 되찾을 것이라고 말이다. 전작처럼 희망으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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