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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늑대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3
쓰시마 유코 지음, 김훈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제는 역사 속에만 남은 일본 늑대 이야기로 문을 연다. 그렇게 길지 않는 분량에 작가가 풀어낸 늑대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롭다. 물론 이미 늑대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기에 왜곡되어지고, 과장된 늑대의 이미지를 상당히 지워내었다. 그렇지만 통계자료와 역사 속에 있는 늑대를 그리워하고, 간략하게 정리된 이야기 속에 살려낸 늑대들은 주변에서 늘 보는 개처럼 친숙한 느낌을 준다. 이 이야기가 소설 속에서 시대 현실과 맞물리면서 한 편의 소설로 탈바꿈한다.
17살 소년이 있다. 그는 네 살 때 아버지와 함께 길에서 생활한다. 아버지는 묘지를 좋아했고, 그들은 늘 굶주렸다. 이 방랑의 시절에 아이는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이 장면은 아이가 소년이 된 뒤에도 강한 영향을 미친다. 고아원에서 자란 소년은 몇 년 후 그 죽음의 현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여자를 찾아간다. 반갑지 않은 방문이다. 그로부터 다시 5년이 흐른 후 다시 그 집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한 소녀를 만난다. 그와 그 소녀는 너무나도 쉽게 긴 여행을 떠난다. 그들에겐 즐겁거나 재미있거나 흥미로운 여행이지만 그녀의 엄마나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유괴거나 행방불명이다.
소녀 유키코는 12살이다. 중학교 1학년이다. 그녀의 엄마는 좋지 않는 과거가 있고, 그 과거 때문에 그녀에겐 아버지가 없다. 위로 한 명 있던 오빠는 몸과 정신에 장애가 있었고, 죽었다. 이런 그녀에게 다가온 것이 바로 미쓰오다. 이 이름은 본명이 아니다. 그가 그녀에게 다가와 시베리아를 말하고, 야간 기차 여행을 말했을 때 쉽게 승낙한 것은 왜 일까? 이후 이 둘이 함께한 여행은 미숙한 소년과 소녀의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이자 일본의 현실을 풀어내는 도구이기도 하다.
처음 소년이 유키코에게 말한 것이 <정글북>이다. 소년은 늑대 아켈라, 소녀는 모글리로 정한다. 이 이름은 기억이 가물가물한 책 속 장면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책 내용의 인용과 이 둘의 여행은 함께 나아간다. 소년은 결코 아켈라처럼 현명하지도 용감하지도 않다. 소녀와 그의 여행은 <정글북>처럼 모험과 도전으로 가득하다. 이 부분들을 읽으면서 다시 <정글북>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졌다. 하지만 이 둘의 이름이 중간에 다시 바뀐다. 그것은 <집 없는 아이>의 레미와 카피다. 여기서 다시 이야기의 분위기와 진행은 바뀌게 된다.
이 소설은 두 편의 다른 소설에서 영감을 받고, 이름을 빌려왔지만 그 소설들을 따라가지는 않는다. 이 둘이 가는 길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사고가 바로 전후 일본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신문 기사를 인용한 듯한 내용이 나왔을 때는 그냥 그때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는 단순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뒤로 가면서 이 둘의 여행이 이 신문 기사의 구체적 실현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엄마 없이 자란 소년에겐 잊지 못하던 과거를 소녀와의 여행으로 씻어내고, 부족한 여성성을 채워가고, 한 명의 성인으로 한 사람을 책임지는 성장을 나타낸다. 아빠 없이 자란 소녀에겐 오빠가 있었지만 정상이지 못함으로써 결코 보지도 느끼지도 못한 아빠와 오빠를 배우고 느끼는 시간이다.
읽다가 갑자기 분위기와 장면이 바뀌어 혼란스러웠다. 중반 이후 이런 비약이 이어지는데 이 둘의 여행이 단순한 가출이나 유괴 사건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 둘은 바로 시대의 비극을 실현하는 연기자이가 희생자다. 소년이 현실을 부정하고 자신의 우월감을 부르짖지만 결코 현실을 넘지 못하고, 소녀는 여행이 주는 자유와 일탈의 즐거움을 버리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이 둘은 ‘우리는 같은 피!’라고 외친 것처럼 나이는 다르지만 피보다 더 강한 유대감으로 이어져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