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플린, 채플린
염승숙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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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소설이다. 여덟 편의 단편들이 낯설다. 기존 작가들이 보여준 환상이 이 소설에선 다른 모습을 띈다. 소설 속에 벌어지는 사건과 환상들에 대한 설명도 없고, 끝도 없다. 처음 그 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럴수록 그 환상의 세계는 모호해졌다.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환상들이 이 소설 속에선 힘을 잃는다. 물론 가끔은 옛 소설의 향수가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느낌도 읽는 순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읽고 난 후 한참 후에 깨닫게 된다.  

 

 그녀의 처녀작이자 첫 작품인 <뱀꼬리왕쥐>부터 난해하다. 꼬리뼈를 둘러싼 대화와 현실과 환상의 교차는 모호함을 더 강하게 만든다. 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상의 변화는 현실의 경계를 너무 쉽게 무너트린다. 그 변화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처럼 다가온다. 꼬리뼈를 내어준 사람들의 부재가 그를 공포에 물들게 하기보다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도전인지도 모르겠다.  

 

 <수의 세계>는 숫자를 몸에 지닌 한 사람의 일대기다. 이름은 공영, 몸의 각 부위에 1부터 9까지 숫자가 새겨져있다. 아버지는 수학교사다. 영(零)이란 이름을 지은 것은 그 숫자가 몸에 없기 때문이다. 이 아이의 성장기는 전혀 특별하지 않다. 작가는 이 아이의 성장기와 모험기를 녹여내면서 환상의 세계를 수의 세계로 변환시킨다. 앞의 소설 때문인지 조금 더 쉽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의 모험은 재미있다.   

 

 <거인이 온다>도 비현실적인 설정이다. 사랑니가 아파 치과에 갔는데 괴상한 공룡의 이빨이라면서 학계에 보고 할 생각만 한다. 공무원인 주인공은 민원 때문에 고생이 많다. 그런 중에 그의 아내는 거인증으로 고통 받고 있다. 눈이 오지만 눈은 쌓이지는 않는 이변이 발생한다. 이런 일련의 괴변이 하나로 이어지면서 비일상적인 환상이 현실에 자리잡아간다.   

 

 

 <춤추는 핀업걸>은 읽을 당시는 떠올리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이외수의 소설이나 다른 작가의 작품에서 가끔 본 설정이다. 물론 그들의 작품에선 한 번 들어간 후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은 반면에 이 소설에서 들락거린다. 그리고 주인공의 몸 상태도 이상하다. 반쪽은 조로증으로 30년이나 먼저 늙고 있다. 이런 비대칭은 포스트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한 몸에 구현한 것이다.   

 

 <채플린, 채플린> 연작 두 편은 여봇씨요 사나이를 둘러싼 해프닝과 사건을 다룬다. 첫 편이 모철수란 하객 아르바이트를 통해 현실에서 발생한 채플린 증후군을 설명한다. 여봇씨요 사나이의 이 말에 반응하여 돌아보면 채플린 같은 자세를 하고 동작이 멈춘다. 이 증후군을 나열하면서 작가는 유머스러운 문장과 진행으로 재미를 만들어낸다. 두 번째 이야기에선 전편에서 모철수 사건 이후 사라진 채플린 증후군을 다룬다. 왜? 라는 의문과 그는 누군가? 하는 의문이 대두되고, 그의 정체를 밝힌다. 하지만 그것을 믿고 안 믿고는 개인의 문제다. 이번 소설에선 언어유희가 극에 달하고, 재미난 상황을 연출하면서 농담을 멋지게 만들어낸다.  

 

 <지도에 없는>은 지도에 존재하지 않는 지번인 1-173번지에 살았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이야기다. 중개경력 29년의 베테랑인 자신이 기억하고, 기록한 지번이지만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이 실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여행은 오디세이의 방랑과도 같다. 결국 집으로 현실로 돌아오기 위한 과정이다. 오년 동안 살았던 다섯 남자의 일상은 현대인의 삶을 희극적으로 풀어내었고, 웃음을 자아낸다.  

 

 <피에로 행진곡>에서 비일상적인 사건은 우산을 들고 하늘로 사라진 사람들이다. 이 괴상한 사건이 공포를 자아내기보다 사람들은 그냥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채플린, 채플린>에서 채플린 증후군을 두려워하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특이한 반응이다. 공무원 조사맨은 주민등록말소 신청자를 조사한다. 하늘로 우산을 들고 사라진 사람들과 주민등록말소를 신청한 화자에 조사맨의 조화는 그 설정 자체가 현실의 경계를 넘었다. 조사맨이 반복해서 말하는 “재미있는 이야기 해줄까?”는 어쩌면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기 위한 바람과 읽는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즐기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말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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