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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 정태남의 유럽 문화 기행
정태남 글.사진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7월
평점 :
해외여행을 그렇게 고깝게 보지 않을 때도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두 곳 있었다. 그리스와 로마다. 한창 서양문화에 관심을 두고 있을 때라 그 발상지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은 아는 것도 많아지면서 좀더 유연해졌지만 해외여행의 대미를 장식하고 싶은 곳임은 변함없다. 이 멋진 책에서 만난 로마의 과거와 현재는 일상의 힘겨움에 점점 사그라지는 로마에 대한 열정을 다시 되살려준다. 약간은 투박해 보이는 표지지만 그 내용은 결코 투박하지 않다.
모두 열여섯 곳이 나온다. 대부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거나 텔레비전을 통해 본 곳들이다. 그 익숙함이 바로 로마의 유명세와 매력을 나타내는 징표가 아닌가 생각한다. 비록 가끔은 영화 속에서 상상에 의해 부풀려진 건축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유적만으로도 충분히 과거의 모습을 재현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인지 저자가 찍어서 보여주는 사진들은 현재와 과거를 동시에 보여주는 매력이 있다.
직업이 건축가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로마에 있는 유적들이 너무나도 멋지기 때문일까? 저자는 대부분 건축물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고, 상상하게 만든다. 오랜 시간 로마에 살았고, 애정이 가득하기에 유적이나 건축물을 설명할 때 묻어나오는 애정과 부러움이 절절히 느껴진다. 제국의 거대한 유적이 주는 황폐함과 역사는 영원한 권력은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생각하게 만들고, 새롭게 인식되어지는 로마 황제들에 대한 이해와 관련 이야기들은 피상적인 지식이 아닌 경험과 삶에서 우러나온 것 같다.
이 책은 일반 여행서가 아니다. 어떻게 찾아가고, 그곳에서 맛있는 것이 무엇이고 등의 피상적인 관광지 감상기가 실려 있지 않다. 아마 그런 내용이 실려 있었다면 짧은 여행 일정을 짜는데 도움을 줄지 모르지만 로마가 지닌 매력을 알게 하는 데는 많이 부족했을 것이다. 문화기행이란 표현이 탁 맞는 책이다. 저자가 말한 곳 중 몇 곳은 영화나 전설 등으로 인해 유명해져 세계 각지에서 찾아오지만 실제로 와서 많은 이가 실망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를 헤아리게 되면 보이는 것 이상이 드러난다.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로마 관광지의 사진이 많이 실려 있다. 덕분에 쉽게 빠르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차분하고 잘 정돈된 문장과 풍부한 사실과 역사가 담겨있다 보니 생각보다 더디게 진도가 나갔다. 재미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보통의 여행서가 그냥 휙하고 한 번에 지나가는 것에 반해 이 책은 곱씹으면서 음미하게 되는 부분이 많다는 의미다. 그래서인지 매력과 마력의 도시라는 그 말에 더욱 공감하게 된다. 만약 멀지 않은 시간에 로마로 여행을 가게 된다면 나의 손엔 이 책이 들려있을 것이다. 맛있는 집 안내서나 약도도 같이 가지고 가겠지만 그 관광지와 유적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고 다른 각도에서 로마를 보게 만들어 줄 것이기에 손에서 놓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