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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미궁
티타니아 하디 지음, 이원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천천히 읽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 팩션이란 사실에 빨리 읽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환경이 그런 시간을 주지 않았고 덕분에 끝까지 읽는데 긴 시간이 걸렸다. 비교적 긴 시간이 걸렸지만 읽을 때면 그 매력적인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긴박한 전개도, 살 떨리는 긴장감도, 천지를 뒤엎는 비밀도 없지만 놀라운 이야기 솜씨로 사람을 끌어당겼다. 모두 읽고 난 지금은 좀더 천천히 읽었다면 더 재미있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도입부와 저자의 약력을 보면서 백마술과 관련된 팩션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했다. 그리고 당연히 주인공으로 생각한 윌이 죽으면서 당혹감마저 심어주었다. 이 대목에선 히치콕의 걸작 영화 ‘사이코’가 떠오르기도 했다. 윌은 죽었지만 그가 남긴 단서와 인연은 계속 이어진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학문적으로 의문이 있는 세포기억을 다루면서 자신의 장점과 은밀하게 손을 잡는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저자는 이성과 역사를 바탕으로 세밀하고 점차적인 순서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 과정이 너무 더딘 것이 아닌가 생각들 정도다.
책을 모두 읽고 난 지금 어떻게 이 소설을 평가해야할지 조금은 난감하다. 매력 있는 이야기와 문장은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하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풍부한 역사 자료와 신비한 수비학은 미스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루시와 알렉스의 로맨스는 약간 더딘 발걸음이지만 점점 더 강하게 이어지고, 이 둘을 둘러싼 음모와 협박은 뒤로 가면서 더욱 재미있어진다. 하지만 작가는 의도적인지는 모르지만 빠른 장면 전환이나 긴박한 상황으로 몰고 가지 않는다. 덕분에 약간 느슨한 느낌도 있지만 한 발자국 물러나 이야기를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수많은 단서와 사실과 전설의 인용은 전체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약간 걸림돌이 된다. 몰입을 방해하고 이야기의 가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하기 때문이다. 뭐 이것이 이 책의 매력인 것은 분명하지만 가끔은 생략되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있다.
처음부터 소설은 적들이 원하는 것을 드러내지 않는다. 나중에 휴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한때 전 세계에 휴거 열풍이 불었던 것을 생각하면 약간은 생뚱맞다. 아직도 이 허황된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고. 하지만 작가는 말한다. 수많은 근본주의자와 현 미국의 대통령이 강하게 이것을 믿고 있다고. 그리고 악당으로 등장하는 근본주의자들의 대화는 끔찍한 부분이 있다. 잘못된 종교관과 광신이 어떤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과연 그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얼마나 무서운 위험 속에 놓여있는지 알 수 있다.
신화와 전설과 역사를 바탕으로 미스터리하고 환상적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문장은 잘 다듬어져 있고, 억지스런 긴장감과 속도를 위한 장면들을 배제함으로서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뭐 이 때문에 빠른 진행이 돋보이는 소설과 차별화가 되기는 한다. 그러나 하나의 전설과 사실이 불과 하루 이틀 만에 풀리는 다른 팩션을 생각하면 굉장히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이런 장점과 비교해 단점도 몇몇 눈에 들어온다.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변하고, 복선처럼 깔아놓은 장면이 아무 설명도 없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캘빈에게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악당들의 약간은 연약한 폭력과 더불어 긴장감을 사라지게 만드는 요인이다. 또 에필로그에서 보여주는 상황들은 생략되거나 좀더 신비하게 만들어놓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