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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수로 투명인간을 죽였다
경민선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10월
평점 :
제1회 K-콘텐츠 공모전 미스터리 부문 최우수상 수상작이다.
경민선 작가는 제8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장편 우수상 <연옥의 수리공>으로 만난 적이 있다.
두 번째 만나는데 왠지 낯설다. 재밌는 소설을 쓰지만 나의 저질 기억력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미안하고 아쉬운 부분이지만 수많은 작가들에게 반복되고 있는 일이다.
계속해서 이 정도로 재밌는 소설들을 내준다면 아마도 분명히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가끔 이름이 너무 헷갈려 하는 작가들이 있는데 이 작가의 이름은 헷갈릴 가능성이 낮다,
투명인간을 죽이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를 죽였다는 것을 어떻게 알지? 의문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작가는 투명인간들은 투명인간을 볼 수 있다고 설정했다.
그리고 이 투명인간은 적외선으로도 확인되지 않는다. 손으로 만지면 확인할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 한수가 오랜만에 온 친구 기영의 연락을 받고 갔을 때 그렇게 확인할 수 있었다.
보이지 않지만 만질 수 있고, 부피와 무게가 있는 둘러싸면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그냥 집에 두면 되지 않아 하고 말 할 수 있지만 투명인간의 시체가 부패하면 냄새가 난다.
둘이 함께 이 보이지 않는 시체를 사람이 오지 않는 산에 묻으러 간다.
한수는 좋은 부모 밑에서 잘 자랐지만 공부에 열중하지 않고 백수처럼 살아간다.
부모의 지원이 끊어진 후 알바를 뛰면서 생활비를 벌고 있다.
자신의 목소리가 좋다는 말에 배우 수업을 받는데 운 좋게 CF에 마임하는 인물로 잠시 얼굴을 비춘다.
고등학교 동창들이 모이는 곳에 가서 성공한 친구들의 헛소리를 듣고 술을 얻어 마신다.
기영은 학창 시절 전교 1등이었지만 의대에 가지 않았다.
친구들은 집이 가난해서 못 갔다고 말하지만 기영이 나무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한수는 알고 있다.
기영이 트럭을 몰고 다니는 것을 봤다는 친구들의 말에는 뒤바뀐 현실에 대한 자랑과 조롱으로 가득하다.
이 모임에 온 친구들 부모들은 모두 빵빵하다. 병원장이거나 정부의 고위관료다.
투명인간들이 있고, 그 시체를 치웠다는 조금 황당한 설정만 나왔다면 단편으로 충분하다.
기영의 죽음을 넣고, 투명인간이 있다는 것을 아는 한수가 친구에 대한 부채감을 갖게 하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기영이 남긴 단서를 찾아가면서 결국 마주한 것이 새로운 투명인간이다.
죽음 직전까지 몰렸지만 기영의 친구라는 사실을 증명한 후에 겨우 살아난다.
내가 투명인간이 아니란 사실이 조금 아쉽지만 내 동료가 투명인간이 되면 할 수 있는 것이 많다.
물론 양심을 살짝 내려놓아야 한다. 실제 이 투명인간은 호텔에 거주하면서 돈 등을 훔쳐온다.
그리고 투명인간은 자신들을 묵인이라고 말한다. 이름은 없고 번호로 불린다.
숫자로 불린다는 것은 개성을 말살하는 것이다. 묵인들은 정부 조직의 관리 아래 운영되고 있다.
적외선에도 잡히지 않으니 최고의 암살자다. 권력자라면 누구나 쥐고 싶은 패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까? 내부 협력자를 두면 가능하다.
물론 이 묵인을 보는 다른 방법이 하나 있다. 한수는 이 방법으로 묵인을 본다.
보이지 않는 상대를 상대하는 것에서 보이는 적으로 바뀌면서 대처 방법도 달라진다.
그렇다고 한수가 바로 무술의 고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분명한 한계가 있다.
작가는 이 한계를 이용하고, 앞에 깔아 둔 설정들을 같이 녹여내었다.
영화로 만들면 아주 재밌는 장면이 될 것이다. 아! 이 소설도 영화로 만들면 좋을 것 같다.
뛰어난 가독성과 꼼꼼한 설정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가볍게 읽기에도 좋다.
액션이 펼쳐지고, 쫓고 쫓기는 추격과 멀리서 보면 이상한 행동이지만 치열한 싸움이 나온다.
이 소설의 백미 중 하나는 자신만 보는 묵인과의 대결이다. 남들이 보기엔 마임 같다.
혼자 날아가고, 피가 튀고, 상처가 난다. 당사자는 목숨이 걸려 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그런데 남들이 보기엔 미친 놈이 지랄하는 것 같다. 이 장면을 은유로 풀어내는 것이 가능하다.
묵인이 소외된 이들을 빗대었다면 이 처절한 싸움은 그들만의 생존 경쟁이다.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에 조금도 관심을 주지 않는 우리의 현실 말이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이 소설을 시리즈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