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짐승아시아하기 문지 에크리
김혜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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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 에크리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에크리는 프랑스어로 씌어진 것 혹은 ‘쓰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책은 시인 김혜순의 아시아 여행기다. 그런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읽는 여행기와 많이 다르다.

흔히 여행기하면 어느 곳인지 지명 등이 명확하게 드러나는데 이 여행기는 장소가 대부분 불명이다.

목차에 나온 티베트, 인도, 실크로드, 산동성, 운남성, 산서성, 청해성, 미얀마, 캄보디아, 고비사막, 타클라마칸 사막, 몽골 등도 내용 속에서는 구분되지 않고 있다.

티베트만 해도, 인도만 해도 그 광대한 지역에 수많은 마을이나 도시가 있는데 표시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디인지 알려면 책 내용에 나오는 장소나 상황이나 전설 등을 참고해서 찾아야 한다.

솔직히 말해 읽으면서 많이 궁금했지만 그 곳이 어디인지 찾고자 하는 노력은 없었다.

작가에게 그 장소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바리공주. 내용을 잘 모르겠다. 어릴 때 동화 등으로 만났을 텐데 말이다.

책머리에 우리가 제일 모르는 것을 말한다. 아시아인, 짐승, 여자. 이것을 붙이면 책 제목이 된다.

작가는 “나의 시는 한사코 나이면서 나와 다른 것, 나 아닌 것, 낮은 것, 분열된 것, 작은 사람들을 향해 가는 하기의 작용이다.”라고 말한다.

시인의 시집을 한 권도 읽지 않은 나에게 이 문장은 낯설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처음 이 글을 읽을 때 난해함에 헤맸다. 천천히 글에 집중하니 생각보다 매력적인 내용들이 나왔다.

그런데 전체적인 윤곽을 잡으려고 하니 그 실체가 보이지 않는다.

여행기에 매몰된 나의 독서법이 장벽에 부딪힌 것이다.

<눈의 여자>와 <쥐>를 읽을 때 심리적 흐름 한 줄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생각은 딴 곳으로 흘렀다.

그 글들 속에 나오는 그 지역의 문화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삶은 우리에게 사라진 것 같지만 은연중에 흘러다니는 것들이다.

많은 글들에서 그 지역의 문화를 보여주지만 어딘지 모르다 보니 검색해서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

‘붉음’을 다룬 38편의 짧은 글들은 어떤 대목에서는 사진 한 컷을 해설하는 것 같고, 어느 편은 시 한 편을 읽는 느낌이다.

글 곳곳에 군과 제국주의의 폭력이, 남녀 성차별이 담겨 있다.

그래서 <밤에 만나서 새벽에 헤어지는 부부> 이야기는 강한 인상을 남긴다. 다만 관광상품으로 변하는 현실은 아쉽다.

루비 이야기를 다룬 곳이 궁금해 찾아보니 미얀마다.

독재자가 어떻게 종교를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지 보여주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많은 이야기가, 현실이, 문화가 담겨 있는데 그것을 찾아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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