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은수를 텍스트T 3
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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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레이코란 이름은 아주 낯설다. 하지만 이 작가가 쓴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은 아주 낯익다. 처음 전천당 시리즈를 TV에서 잠깐 볼 때만 해도 한국 작가의 동화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가 학교에서 빌려온 책을 보고 일본 작가의 소설이란 것을 알았다. 그후 가끔 ‘전천당’ 애니를 볼 때면 그냥 무심코 본 그림에서 일본의 흔적들이 보였다. 나의 이 둔감함이란…. 어린이 소설을 쓴 작가의 소설이란 점에서 솔직히 약간 주저했다. 내 취향에 맞을지, 아니면 이 이야기를 나중에 아이에게 들려주어도 될지 생각하면서. 결론만 먼저 말하면 이 소설은 나의 기대를 뛰어넘었다. 읽으면서 감탄사를 터트렸다.


세 편이 실려 있다. 분량만 놓고 보면 중편 정도다. 표제작 <어떤 은수를>을 읽고, 일러스트를 보면서 왠지 모르게 <십이국기> 시리즈가 떠올랐다. <십이국기> 시리즈를 다 읽지도 않았는데 예전에 본 애니와 그림을 보고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다른 두 편도 나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판타지를 인간의 욕망과 엮어서 풀어내는 솜씨가 대단하다. 작가 목록을 찾아보면서 무심코 지나간 소설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야 할 책들이 더 늘어난 것만 같아 걱정이다. 가장 먼저는 이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인데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소설은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은수를>은 은수란 신비로운 생명체와 거부 세이잔의 재산을 둘러싼 경쟁을 다룬다. 세이잔은 자신이 죽은 후 전 재산을 한 사람에게 넘기겠다고 말한다. 단 전제 조건이 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은수를 키워 온 사람에게 상속하겠다는 것이다. 세이잔은 결혼을 두 번 했지만 자식이 없다. 그와 인연이 있는 친지들이 그 재산을 탐내지만 일단 그의 선택을 먼저 받아야 한다. 이렇게 선택받은 다섯 명은 각가의 은수 이야기를 한 명씩 풀어놓는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은수를 가지고 있었는데 쌍을 맞추려다 망하거나 은수의 알에 대한 관심을 가지거나 자신의 세계를 처음 깨닫거나 등등의 이유가 은밀한 음모와 함께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에 밝혀지는 세이잔의 의도와 진실은 반전의 연속이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다.


<히나와 히나>는 열두 제도의 귀족 아들을 때려 등대섬에 유배 온 요키의 이야기다. 그에게는 히나라는 연인이 있었다. 자신이 사는 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다. 그녀는 욕심이 아주 많은데 사랑에 빠진 그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날 밤에 생긴 사건도 그 때문이다. 열여덟 살 요키는 등대의 불을 밝히면서 5년의 시간이 지나길 바란다. 어촌에서 산 그에게 섬 생활은 힘든 일이 아니다. 문제는 외로운 그의 마음에 파고드는 어둠이다. 히나가 알려진 진실이 그의 마음 속에서 어둠을 키웠다. 그러다 실수로 히나를 죽이기 위해 만든 칼이 발등에 떨어져 상처를 입는다. 그날 밤 등대불을 켜지 못한다. 다음 날 아침 파손된 배의 흔적이 섬에 오고, 절망한 그에게 한 소녀가 나타난다. 파편 속에서 겨우 살아난 그녀의 이름도 히나다. 한정된 공간, 서로의 감정을 숨긴 채 살아가는 불안한 상황, 그리고 결국 말하게 되는 진실.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터트렸다. 한정된 공간과 적은 사람들로 이렇게 이야기를 확장하다니 대단하다.


<마녀의 딸들>은 마을에 종이 올릴 때 무슨 일이 생기는지 먼저 알려준다. 그리고 키아란 소녀가 정원에서 즐겁게 생활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살아간다. 그러다 우연히 한 그림을 발견한다. 어떤 소녀와 엄마를 그린 그림이다. 화난 얼굴이 그려져 있다. 그날 밤 카이는 꿈을 꾼다. 꿈속에서 그림 속 소녀는 자신이 일곱 번째 카이라고 소개한다. 그녀가 왜 죽었는지, 이 집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 그녀 앞에 존재했던 카이들의 흔적을 찾아야 한다. 위험한 보물찾기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전의 카이들이 죽은 이유가 하나씩 밝혀지면서 마녀의 정체도 조금씩 알게 된다. 진짜 비밀을 알기 위해 여덟 명의 카이들은 여덟 번째 카이의 몸속에 함께 거주한다. 어떻게 보면 다중인격을 다룬 소설처럼 보인다. 진실이 밝혀진 후 세상으로 나가는 그녀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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