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
로라 데이브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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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간단한 책소개를 읽고 리안 모리아티의 <허즈번드 시크릿>을 떠올렸다. 남편의 비밀이란 키워드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펼쳐 읽자마자 다른 소설임을 알게 되었다. 남편의 비밀이 다를 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출근한 줄 알았던 남편 오언이 남긴 쪽지를 받았고, 남편의 딸 베일리는 학교에서 60만 불이 든 가방을 들고 나온다. 여기에 남편이 일하는 회사의 회계부정 문제가 터진다. 머릿속은 빠르게 오언의 잠적이 이 사건과 관계 있고, 그가 남긴 돈은 부정한 방법으로 아내와 딸에게 남긴 것으로 추측한다. 하지만 이 추측은 이야기가 더 진행되면서 하나씩 무너지고, 새롭게 밝혀지는 사실로 나를 혼란으로 몰아간다.


물론 내가 혼란스럽다고 해도 소설 속 주인공 해나와 딸 베일리만큼은 아닐 것이다. 남편의 상사가 FBI에 체포되었다는 소식은 오언을 오해하기 딱 좋은 수준의 이야기다. 실제 FBI 요원들이 그녀를 찾아오긴 한다. 그 흔한 수색영장 한 장 들지 않고 말이다. 그 이전에 텍사스 법원 직원이 찾아온다. 수상한 일 투성이다. 그의 잠적이 온갖 상상을 다 불러온다. 그리고 의붓딸 베일리와의 사이는 그렇게 좋지도 않다. 하지만 둘은 힘을 합쳐 이 상황을 헤쳐 나가야 한다. 그런데 베일리는 열여섯 살로 한참 예민한 소녀다. 자신의 아빠를 빼앗아 갔다는 생각도 한다. 그렇지만 유일하게 믿고 따라야 할 어른이다. 불안정한 둘의 여행이 시작한다.


그 여행의 시작은 베일리의 어릴 적 기억이다. 텍사스 오스틴에 있었던 결혼식 장면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둘은 오스틴으로 온다. 베일리의 기억을 따라 움직여야 하는데 아주 부정확하다. 성당에 가서 자료를 요청한다. 개인 정보이다 보니 거부가 먼저다. 그리고 둘은 오언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이 도시 곳곳을 뒤진다. 그러다 오언의 학창 시절 이야기 하나가 떠오른다. 너무 형편없는 성적 때문에 벌어진 이야기다. 그런데 해나의 전 남친이자 변호사에게서 오언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 온다. 오언의 공식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그가 말한 대학교나 고등학교나 학력 등이 모두 거짓이다. 이때 과거 그를 본 한 남자와 있었던 일이 펼쳐진다. 그의 정체는 무엇이고, 왜 공식 기록은 가짜이거나 없을까?


상당한 가독성을 가지고 있다. 잘 읽힌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사라진 남편의 과거를 좇아 그를 찾아내고자 한다. 하지만 그 실체를 찾아갈수록 더 알 수 없다. 베일리와의 작고 섬세한 갈등이 현실적으로 펼쳐진다. 둘은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이 감정들을 풀어놓고, 그가 잠적한 이유를 계속 생각하게 한다. 해나가 사랑했고, 결혼했던 남자는 과연 누굴까? 베일리의 아빠는 맞는 것일까? 작가는 여기에 과거 이야기를 중간중간 끼어 넣는다. 그런데 그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가 아닌 현재 시점에서 과거로 역행한다. 그리고 그 과거의 종점에서 오언이 진짜 감정이 드러난다. 이보다 더 뜨거운 부성애가 있을까! 뭉클하다.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은 잔잔하다. 놀라운 사실들이 계속 나오지만 장면들만 놓고 보면 자극성이 거의 없다. 살인이나 심리적 스릴을 강조하는 장면이 없다. 자극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조금 밋밋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천천히 풀어내는 진실과 잘 짠 구성은 계속 책에 눈길을 주게 한다. 화려한 연출은 아니지만 잔잔하게 가슴 한곳으로 파고드는 장면과 섬세한 심리 묘사는 아주 멋지다.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떠날 수밖에 없는 남자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 그림자의 일부를 잠시 보았을 때 그 마음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혀진다. 오언이 해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너무나도 많고 중요하지만 그 속에 담긴 그의 마음은 그 무엇보다 진솔하고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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