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과거
은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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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출간작이다. 7년 만의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이 소설을 모두 읽고 작가의 작품들을 돌아보니 생각보다 장편을 거의 읽지 않았다.

작가의 대표작인 <새의 선물>을 제외하면 솔직히 기억이 가물가물한다.

기억에 의지하면 주로 단편들을 읽었다. 대부분 무슨 무슨 문학상을 통해서.

한때 한국 소설을 멀리하는데 일조한 작가 중 한 명이다.

너무 여성 작가들의 소설이 인기를 얻고, 문학상을 수상하고, 수많은 주례사 비평에 질렸었다.

내가 공감할 수 없는 내용들이거나 취향에 맞지 않았던 탓이다.

이런 취향이 바뀐 것이 다양한 분야를 작가들이 풀어내면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희경을 비롯한 그 당시 인기 작가들의 소설을 사 모은 것은 나의 허영이 한몫했다.

2010년대에 다시 만난 한국 소설은 예전과 달랐다.

어쩌면 문학이 바뀌었다기 보다 내가 더 변했을 것이다.

새로운 작가들의 작품에 호의를 표하고, 기존 작가도 새롭게 다가왔다.

몇 년 전 오랜만에 읽었던 전경린은 소설은 과거 작가들에 대한 호의를 불러왔다.

<빛의 과거>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 책을 받고 상당히 묵혀 두었다.

하지만 펼쳐 읽으면서 내가 잘 모르는 1977년 여자대학교 기숙사 속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대학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위치 등이나 작가의 출신 학교를 감안하면 숙명여대다.

소설은 1977년을 기본으로 2017년 현재의 모습을 그려낸다.

현재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현재로 오간다. 그 중심에는 화자가 있고, 그녀의 친구인 작가 김희진이 있다.

김희진의 소설<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는 화자 김유경이 과거를 회상하게 하는 기폭제다.

유신의 칼날이 시퍼런 시절 사감의 권위가 하늘을 찌르던 그 시절 말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 또한 하숙할 때 만났던 선배 형들이 생각났다.

그 시절 청춘들이 얼마나 많은 허세를 부렸는지, 미숙한 감정에 휘둘렸는지 엿볼 수 있다.

당연히 이 장면들을 보면서 내 학창시절, 아니 불과 몇 년 전 내 모습을 발견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개성 강한 여대생들의 모습은 흥미롭다.

그들의 후일담을 간결하게 보여주는 마지막을 보면서 누군가에게 나도 저런 식으로 요약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소설 곳곳에 그려지는 그 시대의 풍경은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다.

작가가 소설 속 작가 김희진을 통해 소설가 주변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윤색되는지 알려준다.

불과 몇 년 전 지인의 이야기를 너무 노골적으로 소설 속에 풀어놓아 문제가 된 적이 있지 않은가.

김희진이 자신의 소설 때문에 동창들을 잘 만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 소설의 독자들 대부분은 소설을 읽으면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볼 것이다.

삶의 한 순간, 그 중에서도 일 년의 기록은 동창의 소설에서 비롯한 회상이다.

이후 삶의 궤적은 사람마다 다르고, 그 흔적도 제각각이다.

빠르고 간결하게 요약된 김유경과 김희진의 과거는 현재 우리 삶의 요약이다.

그 시절 가슴 속에 품고 있던 순수한 열정과 감정은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현실만 남은 현재를 돌아보면 그 당시 그들의 열정 등은 어쩌면 시대의 유행을 따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현실과 욕망에 충실한 김희진을 보면서 나와 주변 사람들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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