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킬
아밀 지음 / 비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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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로 더 낯익은 이름이다. ‘아밀소설집’란 표지를 보고 김지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작가 김지현을 처음 만난 것은 에세이 <생강빵과 진저브레드>였다. 이 에세이를 상당히 재밌게 읽었지만 소설을 쓴다는 생각은 못했다. 번역가로 인식한 작가들이 소설을 내는 경우를 가끔 본다. 대부분의 경우 생계용으로 알고 있는데 어느 순간 소설보다 번역에 더 치중하는 듯한 작가들을 보게 된다. 아쉬운 부분이지만 이런 번역가의 번역은 상당히 좋은 경우가 많아 믿을 수 있다. 어떤 경우는 번역가의 이름을 보고 책을 선택할 때도 있다.


표제작의 제목을 보고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국도나 고속도로에서 차에 치여 죽은 동물들이다. 내가 본 동물들은 거의 대부분 작은 동물이지만 사슴 같이 큰 동물들도 죽는다고 들었다. 이런 동물들이 도로 밑으로 다니게 하기 위해 통로도 만들어 두었다는 것 정도는 안다. 하지만 이 단편 속 ‘로드킬’은 다르다. 인간들이 과학의 힘으로 죽음을 어느 정도 극복한 미래의 이야기다. 유전자 변형을 거치지 않은 여자들을 소수 인종이라고 부르고, 가둔 채 관리한다. 남자들이 그녀들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온다. 처음에는 보호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상품 관리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이 보호소를 탈출한 소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화장실에서 듣는데 이때 로드킬이란 단어가 나온다. 처음 듣는 단어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이 소수 인종과 고라니를 대비해서 보여주는데 씁쓸하고 작은 희망을 엿보게 한다.


<라비>는 왜 읽으면서 아프리카 소수민족을 떠올렸는지 모르겠다. 선입견이 작용한 것일까? 아니면 이야기 속에서 그런 분위기를 읽은 것일까? 라비는 마지막 주술사다. 주술사 할머니 손에서 원시성을 유지한 채 살기를 강요받는다. 공용어를 배우지도 못하게 하고, 과거의 기록을 외우게 한다. 문자가 없는 곳에서 구술 전승은 특별한 권력이다. 하지만 현대로 넘어오면 바뀐다. 바뀐 세상을 본 라비가 구습을 좋아할 리 없다. 이 부족에 민속학자 등이 오면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그리고 구전 전설이 펼쳐진다. 인간의 탐욕과 새로운 나무의 탄생이 엮인다. 마지막 장면을 읽으면서 작가의 의도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오세요, 알프스 대공원으로>는 미세먼지가 심해진 가상의 미래를 다룬다. 시점을 한 사람에게 고정시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한 명씩 등장시키면서 이 세계를 설명하게 한다. 현실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고, 시점의 변화가 이야기에 입체감을 부여한다. 화자의 구분이 명확해 쉽게 읽을 수 있는데 <몽타주>에 오면 나의 오독인지 모르겠지만 슬며시 바뀐다. 긴 독백을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것으로 이해했는데 잘못일까? 도입부의 서늘함이 뒤로 가면서 집중력이 흐트러져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 같다. 언제 다시 한달음에 읽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외시경>을 읽으면서 심리 스릴러의 서늘함을 느꼈다. 비어 있는 앞집을 늦은 밤 들어가는 여자의 모습과 주인공의 과거가 엮이면서 기존에 읽었던 스릴러의 기억을 불러왔다. 그 존재에 대해 분명하게 알려주지 않지만 마지막 장면이 주는 서늘함은 그것을 덮기에 충분하다. <공희>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전설이나 동화가 가장 떠올랐다. 바다 괴물의 제물이 될 여자를 구해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것에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간다. 인간의 탐욕, 집착, 오해 등이 펼쳐지고 마지막 장면을 읽다 보면 왠지 모르게 시간의 순환 고리 속에 갇힌 느낌도 든다. 하지만 가장 강렬한 것은 변질된 제의 방식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 원래의 의미는 사라지고, 덧붙여진 욕망과 형식을 간결한 문장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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