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방
구소은 지음 / ㈜소미미디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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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은 작가의 전작들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 기억이 이 책을 선택하게 했다. 여전히 잘 읽힌다. 그런데 다루고 있는 소재는 매번 바뀐다. 이것의 작가의 발전으로 봐야할까? 아니면 다르게 해석해야 할까? 아직은 이 판단을 유보하고 싶다. 이전 작품들의 무대가 외국이었다면 이번에는 한국이다.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위해 떠나야했던 사람들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자 한 네 남녀의 이야기를 다룬다. 각각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다른 경험을 한 네 남녀의 우연이면서 필연적인 만남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각 인물의 이야기 첫 부분에 인생의 어떤 순간을 지울 수 있는 지우개를 말한다. 그 시간을 지운다고 과연 자신의 삶이 자신이 바라는 대로 흘러갔을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이 그들의 이야기다.


네 남녀는 은채, 윤, 희경, 주오 등이다. 각각 다른 직업을 가졌고, 살아온 환경도 다르다. 은채와 주오가 유복한 환경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다면 윤과 희경은 조금 평범한 환경에서 자랐다. 경제적 환경의 차이는 비슷하지만 경험의 차이는 서로 다르다. 이 소설 속에서 그 경험의 하나로 성을 내세운다. 작가는 성과 몸에 대해 노골적이면서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환상을 지운다. 그 환상을 지운 곳에 욕망과 그 욕망의 결핍을 넣어 그 삶의 한 축을 그려낸다. 이 네 사람을 이어지는 중심 인물은 화가인 윤이다. 은채는 윤의 애인이고, 희경은 그의 누드모델이고, 주오는 같은 건물의 성형외과의사다. 시작의 문을 여는 것은 개인전을 열려고 한 윤의 그림들이 난도질당한 일이다. 누가 그런 만행을 저질렀을까? 소설 속 작은 미스터리다.


은채. 큰 유치원의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다. 힘든 일도 겪어 보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벽화 그림을 그리는 윤에게 반한다. 부모는 반대하지만 그녀는 그를 원한다. 그녀는 처녀다. 자위를 하지만 남자와 자 본 적이 없다. 윤과 첫경험을 하고 싶지만 윤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욕망을 자위로 달랜다. 그리고 자신의 성기와 자위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장치 중 하나다. 성형의 힘으로 예쁜 얼굴을 가졌고, 집 배경도 좋은 소위 말하는 일등 신부감이지만 그녀는 윤을 원한다. 윤이 개인전을 열기 위해 누드모델을 고용한다. 희경이다. 누드모델과 예술가의 결합을 의심하고 두려워한다. 자신이 누드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윤이 적록색맹이란 사실을 알고 있다.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다. 질투와 작은 배려가 관계를 파국으로 이끈다.


윤. 미대생이 아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재능도 있다. 그의 그림은 사실적이다. 적록색맹인데 이 사실을 속이고 있다. 빨강과 녹색을 구분하지 못하면서 그의 그림에 파란 색이 더 강해졌다. 이 색이 그림의 매력이다. 그는 연상의 미대생이자 연인을 도와주면서 데생 실력을 키웠고, 여자를 알게 되었다. 이 경험은 그녀가 떠난 후 그녀와 닮은 매춘 여성에게 집착하게 한다. 전문화가의 길로 들어선 것은 우연히 캐리커쳐를 그리는 화가 대신 인물화를 그리면서다. 은채와의 만남은 그에게 안정적인 화가 생활을 보장해주었다. 몇 년의 강렬한 성 경험 뒤 그는 그 욕망에 거세된 듯한 모습이다. 이런 그를 희경은 유혹하려다 실패한다. 은채가 생일 선물로 준 안경은 그의 삶을 뒤흔든다.


희경은 유부남의 친절과 유혹에 넘어갔다. 순진한 나이였고, 우연히 모델 일을 하면서 점점 더 성에 대담해진다. 난교 파티에도 참여해서 쾌락을 맛보지만 그녀가 바라는 것은 그런 감정이 아니다. 그녀는 전문 누드모델로 계속 활동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림의 대상이 된다는 일은 육체를 한계까지 밀고 가는 것 같다. 은채가 이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다. 그녀가 살아온 인생과 성 경험을 나란히 풀어낸다. 대단하다고 생각한 것은 꾸준히 돈을 모아 자신의 집을 산 것이다. 작은 빌라이지만. 늘 그렇듯이 자신만 잘 산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 동생이 사고를 친다. 합의금 문제가 생기는데 이것을 해결해주는 인물이 은채다. 뒤틀린 욕망과 오해가 만들어낸 상황이다. 그리고 그는 자동차 접촉 사고 대상인 주오를 만나고 그에게 끌린다. 그녀의 욕망과 그의 행동이 엇갈린다. 이야기는 주오로 넘어간다.


주오. 성형외과 의사로 잘 나간다.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 아내 집에 많은 돈을 지원했고, 그녀도 풍족하게 살 수 있게 했다. 뭐가 문제일까? 그 문제를 그의 과거와 현재 행동 속에서 하나씩 드러낸다. 어릴 때 자위하다가 아버지에게 들켜 온가족이 다 알게 된 사실, 형과 누나와 달리 성적이 조금 떨어진 것 등의 과거사. 열심히 일해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내지만 과거의 트라우마는 아직도 작용한다. 이런 그에게 친구 따라 온 아내는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가능성이 실패한다. 정상적인 성생활이 불가능하다. 이 불능이 그의 삶을 뒤흔들고, 허위로 채운다. 그는 주변 친구들에게 자신의 문제점을 드러내지 못한다. 희경의 향기에 끌려 그녀를 만나지만 더 나아가지 못한다. 희경이 발견한 USB속 동영상에는 뭐가 담겨 있을까? 솔직하고 자극적인 행위는 뒤틀린 욕망의 발산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낯익다. 그 솔직한 설명과 묘사는 아직은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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