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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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이다. 한 편의 시와 그 시를 둘러싼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방식의 산문집을 좋아한다. 읽었던 시는 기억을 더듬어 감상하고, 새로운 시는 읽고 바로 시인의 의도와 나의 감상을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기억이 부정확해 그의 시집이나 산문집을 얼마나 읽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시인 중에서 가장 많이 읽은 시인에 들어갈 것 같다. 그의 초기 시집도 한두 권 읽었지만 근래 시집들을 읽으면서 비교적 왕성한 활동을 하는 시인들 시집을 더 읽게 되었다. 그런 시인들 중에 정호승 시인이 포함된다.


이번 산문집은 일흔이 된 그의 ‘삶의 외로운 흔적’과 ‘그리운 편린들’을 담고 있다. 시를 풀어낸 산문 속에서 그런 감정들을 솔직하게 드러낼 때 나의 삶을 잠시 회상하거나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시인 등의 삶을 조금은 더 알게 되었다. 어떤 산문은 여행기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윤동주의 무덤을 찾아간 이야기나 백두산 정상을 올라가 소변을 본 이야기 등은 왠지 시보다 산문이 더 인상적이다. 어떤 면에서 이런 글들은 어딘가에서 연재된 듯한 느낌도 있다. 그가 직장에서 일하면서 얻은 기회를 잘 활용한 것 같은데 살짝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예전에 어디선가 동화작가 정채봉 이야기를 읽고 책을 몇 권 구해 놓은 적이 있다. 동화라 잘 읽지 않지만 그의 창작 동화에 대한 평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정채봉과의 인연을 풀어낸 시와 산문을 읽으니 다시 그의 동화에 관심이 생긴다. 물론 바로 읽겠다는 의지의 표현은 아니다. 이 산문집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인물 중 한 명이 정채봉이다. 어디에서는 형이란 호칭을, 또 다른 지면은 씨라는 호칭을 붙인 것을 보면 이 산문집이 지금 바로 모두 쓴 것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런 지엽적인 이야기보다 그의 병간호를 그렇게 열심히 한 부분이 내 심금을 더 울린다. 내가 가족 이외 이렇게 열심히 간호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그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기자 생활도, 출판사 대표도 맡았다. 현대문학북스란 출판사 대표 시절 선인세를 둘러싼 이야기는 인간관계의 미묘함을 잘 보여준다. 친한 사람들은 선인세를 돌려주지 않고 돌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돌려줬다. 서로 힘든 것은 마찬가지일 텐데 예상외의 결과에 그가 놀랐다. 언제나 그렇지만 인간관계에 돈이 엮이면 그들의 관계가 밑바닥이 드러난다. 천상병 시인에 대한 이야기는 그에 대한 피상적인 이야기에 조금은 실체를 더 할 수 있었다. 그의 시집을 사놓고 묵혀두고 있는데 언젠가 찾으면 몇 편 조용히 읽어보고 싶다.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에 대한 기억들은 나 또한 그 시대를 지나왔기에 가슴 속에서 작은 울림들이 계속 이어졌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 중 어머니보다 아버지에 눈길이 간 것은 내가 아버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은 마음이 나 자신도 있으니까.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추억을 회상하면 별로 없는 것은 조금 아쉽지만 같이 술 한 잔 하고 엄마에게 전화해 이야기하는 추억은 지금도 찡하다. 하지만 현실의 부딪힘은 어쩔 수 없다. 군 복무 중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도 수많은 시인과 작가들이 문단에 올라가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가.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문단이란 집단을 생각하면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 글들에서 그에게 도움을 준 스승들과 지인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나 자신도 배워야 할 부분이다.


60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내가 기억하는 시는 몇 편 없다. 읽지 않은 시집 속 시도 적지 않다. 워낙 외우는 것을 싫어나는 성격이라 짧은 시의 강렬한 인상만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풍경 달다>가 대표적이다. 물론 대표적인 시 몇 편은 읽은 기억이 남아 있다. 읽은 듯한 시도 당연히 몇 편 있다. 그렇지만 그 기억과 시인의 시 창작을 둘러싼 이야기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의 시에 대한 오독 이야기(<밥그릇>)도 나오는데 혹시 나도 그의 시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심을 지우는 방법 중 하나가 이 책을 읽는 것이다.


아마 10년 전에 내가 이 산문집을 읽었다면 많이 다른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시인이 그리워하고, 외로움을 다루고, 고마워하고, 뒤늦게 깨달은 몇 가지 감정들보다 다른 부분들에 시선이 더 갔을 것이다. 시간이 나에게 더 많은 인간관계를 맺고, 현실을 더 치열하게 살게 만들고, 이전 관계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면서 이 산문집을 받아들이는 폭이 더 넓어졌다. 나이듦이란 것이 주는 작은 선물 중 하나다. 그의 어린 시절 추억들을 읽으면서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비교하고 즐거워하고 무서워했던 순간들을 회상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나이 대에 따라 감상이 많이 갈릴 시가 있는 산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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