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
찰스 부코스키 지음, 공민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0년 10월
평점 :
일시품절


1969년 찰스 부코스키가 존 브라이언이 창간한 지하신문 <오픈 시티>에 14개월 동안 연재한 칼럼을 엮은 산문집이다. 이 에세이는 일주일에 한 번씩 칼럼을 써달라는 요청을 수락한 결과다. 어떻게 보면 14개월 동안 한 신문에 칼럼을 연재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하지만 돈은 그를 꾸준히 이런 일을 하게 만들었다. 그의 연보를 자세하게 살펴보지 않아 이런 경우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에세이 속에서 만난 그를 떠올리면 이 성실함이 조금 낯설다. 그리고 바로 앞에 읽었던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신문에 연재한 칼럼이라 그런지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보다 조금 쉽게 읽었다. 물론 비속어와 음탕하고 거친 언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조금 익숙해졌다고 하면 과장된 표현일 것이다. 이번 에세이도 읽으면서 한 편의 단편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날개 달린 선수가 나와 야구를 하는 이야기가 현실에서 일어날 수는 없지 않은가. 그의 이름 약자가 JC라는 것도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뒤로 넘어가면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미 다른 책에서 읽었지만 조금 다른 부분이 있어 그때 느낀 의문을 푸는데 도움을 준다.


다른 에세이처럼 이번에도 직설적인 단어 사용은 십대의 욕설처럼 품어져 나온다. 하지만 그 뒤에, 그 밑에 깔린 감성과 비판의식 등은 그 단순함을 뛰어넘었다. 내가 부코스키의 글을 계속 읽게 되는 이유도 바로 이런 부분들 때문이다. 물론 그 시대 문화와 작가의 뒤틀린 삶을 좀 더 알게 된다면 광고처럼 부코스키의 글에 빠져 더 열심히 찾아 읽을지 모르겠다. 사실 이번에 읽은 두 작품처럼 거침없이 멋대로 쏟아 낸 단어와 문장들로 가득한 책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이 산문집의 가장 큰 매력도 바로 이런 점이다.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이야기를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 되는 부분도 많지만 내가 그 현실을 제대로 알기는 역시 어렵다.


음탕하고 무겁고 황당한 이야기 속에서도 웃음은 찾아온다. 한 술꾼을 골목으로 유인해 방망이로 기절시켜 돈을 갈취하려고 하는 이야기의 결말이나 유명한 작가의 집에 가서 나오면서 갈취당하는 이야기 등은 지금 당장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재밌는 에피소드다. 그리고 질펀한 섹스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뒤섞이며 누가 누군지, 현실인지 망상인지 헷갈린다. 밑바닥에 떨어진 술꾼이 벌이는 행동과 이야기는 이성의 잣대를 가져다대면 말이 되지 않는다. 아마 한창 순수에 집착하는 청소년기였다면 내 입에서 쌍욕이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 음탕한 이야기에 헤롱거리거나. 물론 그가 찬양한 작가들을 찾아 읽고, 아는 채 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솔직한 글이 나의 글과 잘 맞지는 않지만 배울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언제 부코스키의 시집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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