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 역사
자크 엘리제 르클뤼 지음, 정진국 옮김 / 파람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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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작가는 무정부주의자다. 처음 시작하는 부분에서 그가 감옥에서 풀려나 시골에 내려가 목동과 함께 생활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때부터 그는 산에 관심을 둔 것 같다. 그의 인생 역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 책 곳곳에서 군주제와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의 급진적인 사상은 산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 산을 신성시하고 숭배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바뀌는 모습 등은 잘 포착해서 들려준다. 처음에는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는데 생각보다 더 집중해서 읽어야 했다. 간결하지만 생략된 부분이 있어 방심하면 문맥을 놓치는 경우도 자주 있다. 그때마다 앞으로 돌아가 문장을 천천히 읽었다.


산과 그곳에 사는 동식물과 광물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어떤 대목은 읽으면서 산에 대한 에세이인지 광물에 대한 에세이인지 헷갈리는 경우도 있다. 낯선 명사와 단어들이 집중력을 방해한다. 얼마 전에 읽은 <언더랜드>에서도 이런 경험을 했다. 솔직히 돌의 결정이나 화석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하지만 숲으로 들어가고, 산의 풍경과 산사태 등으로 이어지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다르다. 벌목과 산사태의 관계가 나오고, 조그만 산골마을은 벌목으로 산사태 등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제방을 쌓기엔 자본이 너무 부족하다. 한 에피소드에서 눈에 파묻힌 산골동네가 며칠 후 이웃의 노력으로 구출된 이야기가 나온다. 주변의 도움이 없다면, 산사태 등을 대비하지 않으면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높은 산은 만년설이 쌓여 있다. 날이 더워지면 빙하가 녹는다. 이 녹은 물이 작은 내를 타고 내려가면서 많은 일들을 한다. 우리가 무심코 보고 지나간 수많은 초목들이 높이에 따라, 지리적 환경에 따라 바뀐다. 기후는 또 어떤가. 밑에서 볼 때는 구름이 산을 뒤덮고 있지만 높은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구름만 내려다보일 뿐이다. 산을 내려가면서 비 등을 맞는 작가의 모습을 보면서 ‘왜?’라는 의문이 들지만 계속 정상에 머물 수는 없다. 해의 운행 방향에 따라 자라는 나무의 품종이 달라지는 부분도 우리가 쉽게 놓치는 풍경이다. 산에 대한 애정과 세심한 관찰과 공부가 함께 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갈 수밖에 없는 정보다.


산에 대한 인간의 숭배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도 백두산을 성산으로 부르지 않는가. 작가는 중국의 태산, 히말라야의 높은 산들과 그리스의 올림포스 산을 이야기한다. 특히 올림포스 산에 대한 부분은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부분인데 기억을 새롭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종교와 인간의 숭배에 대한 부분이기도 하다. 권력은 신의 권위를 빌려 자신의 위치를 견고하게 만든다.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비극들 중 하나가 정복욕이고, 그 결과 중 하나가 피 튀기는 전쟁이다. 그의 말처럼 산이 안식처가 되어야 하는데 탐욕이 그 산을 파헤치고 헤집는다.


읽으면서 의문을 품게 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늑대 이야기다. 최근 연구나 관찰에 의하면 늑대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는 왜곡되고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비열하고 못된, 피비린내 나는 온갖 만행을 저지르는 늑대”란 문장을 읽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유럽 동화 속에서 자주 본 모습이다. 작가는 또 인간이 특이하게 비열하다고 말한다. 육식동물에 감탄하며 찬양한다고. 대표적으로 독수리를 말한다. 목동과 독수리가 싸워 수리종이 희귀해질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 부분도 의미심장하다. 19세기 말에 출간되었지만 지금 읽어도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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